▲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베리타스 DB |
시인 정호승은 최근에 펴낸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 마디>에서 이 고사를 소개하며 ‘활쏘기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두 개의 화살을 갖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왜냐하면, 활쏘기는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인데, 하나 남은 두 번째 화살 때문에 첫 번째 화살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과녁을 맞히지 못해도 또 하나가 남아있다는 생각이 첫 번째 화살에 최고의 집중력을 모으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이광이 바위를 호랑이로 착각하고 활을 쏘았을 때의 심정이 바로 그랬을 것입니다. 호랑이에게 활을 두 번 쏠 기회는 영영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 한 발에 호랑이를 죽이지 못하면 도리어 내가 호랑이의 밥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위기감과 비장한 마음으로 활시위를 당겼을 것입니다. 그 마음이 바위를 뚫은 것입니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우리가 익히 알고 자주 쓰는 말입니다.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많은 일을 도모하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일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 일에 우리가 온 마음과 정신을 하나로 쏟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마귀를 뜻하는 라틴어 ‘디아볼로스(Diabolus)’는 ‘두 마음을 품은 자’를 뜻합니다. 마귀의 유혹이란 다름 아닌 ‘두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선악과범죄 이야기를 봐도 그렇습니다. 하와가 선악과에 대해 가진 첫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창3:3) 그런데 뱀의 형상으로 나타난 마귀는 하와에게 전혀 새로운 마음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 하와가 뱀이 넣어준 새 마음을 가지고 선악과를 다시 보니 선악과가 달리 보였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3:6) 하와가 두 마음을 품은 순간 하와의 운명은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두 마음을 품는 것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는 일이요 하나님이 주신 에덴의 축복을 잃어버리는 길입니다.
때문에 성경은 곳곳에서 두 마음을 품지 말라고 말합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4:8)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시119:113)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습1:5)을 하나님은 멸절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9:62)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일이든 하나님의 일이든 온 마음과 정신을 하나로 모아 힘을 쓰면 화살이 바위를 뚫는 중석몰촉(中石沒鏃)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도록 하는 마귀의 유혹과 훼방을 지혜롭게 뿌리치고 한 마음, 한 정신으로 집중하고 몰두하면 오늘 우리 앞에 놓인 바위도 얼마든지 뚫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