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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칼럼] 자연, 정신, 영혼

전철·한신대 외래교수


출처 : 전철의 신학동네<바로가기 클릭>



정신과 자연에 관한 에세이편  

 
 

▲전철 한신대 외래교수 ⓒ베리타스 DB

우리에게 자연은 두 성격으로 존재한다. 하나는 정신과 관련된 자연, 다른 하나는 정신과 관련되지 않은 자연. 여기에서의 정신은 어떠한 실체적이고 인격적인 개념은 아니다. 단지 자연을 관찰가능한 최소한의 조건과 지점으로서의 정신을 의미한다. 이렇다면 모든 개체는 환경을 자기방식으로 파악한다는 의미에서 정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모든 자연은 정신에 의해 파악된 자연이다.

그렇다면 정신과 관계없는 자연은 무엇을 뜻하나. 이것은 현재의 정신을 통해서 파악되지 않는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며, 사실 이 자연의 유무에 대해서 정신과 섞여있는 우리의 처지로는 알 바가 없다. 정신과 자연을 흔히들 유한과 무한의 관계로 이해해온 면이 있다. 즉 정신이 말하는 자연은 유한과 결부된 무한이며, 정신을 넘어선 자연은 전적으로 유한과 결부되지 않은 무한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언어, 관념, 사고, 관찰에 있어서 이러한 유한과 결부되지 않은 무한으로서의 자연을 포착하고 접근할 길이 없다.1) 이러한 차원에 대하여 칸트는 '물자체의 접근불가능성'을 통하여 이미 주장하였다고 본다. 그것은 정당한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쉘링도 정신은 자연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분명히 파악할 수 없는 자연은, 그 정신과 관련된 자연이 아니라 정신을 탄생시키고 정신을 품고 있는 자연일 것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우리가 계를 잡을 수 있다. 우리는 frame of reference를 동원하여 자연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지금의 논의로 돌아오면 관찰주체와 관찰대상이 바로 '정신'과 '자연'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1) 관찰주체의 탄생은 작위적인가? 작위적이다. 작위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작위성 없이는 우리는 정신에 대해서, 그리고 자연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상실된다. 그러므로 관찰주체는 작위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작위성이 없이는 우리는 대상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여하한의 채널도 상실되어 버린다.

2) 그렇다면 관찰주체와 관찰대상을 모두 품는 자연은 어떠한 성격을 지니는가? 바로 이러한 정신과 자연 모두를 품고 있는 원자연에 대한 논의가 소위 위에서 말한 '순수무한으로서의 자연'인 것이다. 정신을 잉태하지만 정신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 이 자연에 대해서, 정신과 얽혀있는 우리는 어떠한 방식의 서술도 불가능하다. 모든 사변과 이론은 이 문 앞에 서 있으며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 이러한, 매개를 잉태하지만 매개적으로 파악이 불가능하고 소통불가능한 문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논의가 종교와 신앙과 신비의 문제이다.

우리의 근본적인 관심인, 자연, 정신, 영혼의 문제로 돌아오자.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더 이상의 근거를 따질 수 없으며 우리의 생생한 체험을 품고, 생생한 체험을 가능하게 하며, 생생한 체험 안에도 거하는 자연이 있다.

둘째 이 자연의 체험 안에서 우리는 정신이라는 계를 매개로 자연을 파악한다. 여기에서는 '정신'과 '자연'이 등장한다. 이 정신은 순수하게 안이며, 자연은 저 순수무한적 자연을 정신으로 물들인 산물이기 때문에, 밖이긴 하지만 변형된 밖이다. 그것은 정신의 또 다른 영상이다.

셋째 영혼이 존재한다. 영혼은 이러한 정신의 자연에 대한 파악과 그 영상이 누적되어감에 의해 구현되는 일종의 존속의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은 그러므로 대단히 역사적이며 인격적이다.

여기서 정신이라 함은 영혼이 지니는 어떠한 고양된 사회성과 인격성보다 더 근원적인 차원의 본성을 지닌다. 사실 정신은 끌어들이는 것의 속성이기도 하다. 환경을 자기화 하거나 환경이 잉태한 어떠한 점과도 같다. 그러므로 정신성은 모든 존재의 특성이기도 할 것이다. 말하자면 저기 살랑거리는 꽃에게도 정신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분명히 환경을 자신의 방식으로 파악하고 구축해내며 환경을 '측정'한다.

영혼은 이러한 정신성의 다양한 층위들이 어떠한 깊이를 통해서 구현된 산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대단히 창발적이며 역사적이고 연속적이다. 어찌 보면 영혼은 매개적 사태들에서 창발된 연속성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매개적 사태들을 관통하면서 그를 통해서 구현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영혼은 사건 속에서 구현된 피조사태이기도 하지만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자발적으로 구현해 낸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매개적 세계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 실재를 접근하는 과학적 탐구에서 영혼은 사건을 통해 구현된다고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며, 그것은 진화론, 유물론, 영혼소멸설로 가는 관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순수하게 내밀한 관점에서 실재를 접근하는 종교적 탐구 일각에서는 영혼이 매개성을 동원해서 출현한다는 '현상적 관찰'을 넘어서서 영혼은 변화할 수 없으며 태초부터 영원까지 어떠한 일관된 존속이 가능할 수 있음을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리적, 매개적 세계에서 사유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는 대단히 어려운 가설이기도 하며 영원히 가설로만 남는 가설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의 확인 여부는 우리가 이 매개의 세계를 넘어서야만 가능한 지점인지도 모른다. 즉 우리가 죽기 전까지 그것은 영원히 우리에게 이해되지 않고 믿음이나 추측으로만 제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변은 이 닫힌 문 앞에서 주저앉고 믿음은 닫힌 문을 넘어선 그 영혼불멸의 연속성에 대하여 무언가를 지시받는다.

최소한 우리는 그 충실한 자연 그 자체를 이성으로 관찰로,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그 자연 안에 지금 존재하며, 정신성이 복합적으로 각인된 생명은 그 정신성을 매개로 저 실재의 자연을 측정한다. 그리고 그 측정의 결과로 우리는 자연을 이렇게 시각화 한다. 물론 여기에서의 시각화는 매개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이러한 매개적 관찰들의 중층적이고 연속적인 산물이며 존속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자연은 우리에게 '정신'과 '영혼'과 '자연'을 계시2)한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소유한 것이다. 우리의 사유는 영혼의 불멸을 고민한다. 시공간과 매개의 학문인 과학은 이러한 매개성 안에서 영혼의 운명을 매개적으로 파편화 한다. 그러므로 영혼은 거기에 없다. 그러나 비매개성을 바탕으로 실재를 접근하는 종교는 영혼이 꼭 시공간을 통하여 구현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혼의 탄생으로만 제한되는 주장은 아니라고 강변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증명불가능한 지점에 관한 가설이자 믿음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사변속에서 대답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1) 신이 인간이 되고 우리에게 현시되었다는 기독교의 기본적인 사상은 이 모든 이 정신과 저 자연 사이의 해리가 돌파되었다는 데에 가장 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사변으로는 뚫지 못하는 저 저 자연과 초월과 심연에서부터 직접 우리 인간에게 화육되었다는 관점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독특하고 근본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2) 우리를 근거짓는 저 자연과 신이 우리와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기독교신학 안에서 형이상학적으로 조명한 것이 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개념이다. 이러한 삼위일체는 기독교가 당대의 철학적 사고와 플라톤적 관념론이 근본적으로 품고 있는 사고, 즉 세계의 근원과 기원이 되는 신과, 피조물 사이의 궁극적 이질성을 극복하고 전혀 새롭게 이 둘을 관계시키는 사고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위해 자신이 의지적으로 계시하셨고, 세상에 나타나셨다"라는 기독교신학의 명제는 다른 철학적 사변과 명제를 넘어서는 성서적 전통의 독특한 관점이며 이에 대한 구체적 정립이 삼위일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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