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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칼럼] 분노의 정치가 두렵다

김성 목사·예수원교회(www.jesusone.kr)

▲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베리타스 DB
페르시아의 캄비세스왕은 엄청난 애주가로 거의 매일같이 술에 절어 살았다. 이를 딱하게 여긴 왕의 친구 프렉사스페스가 하루는 캄비세스에게 술을 줄이라고 충고하면서 왕이 술에 절어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백성들에게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친구의 충고를 들은 캄비세스는 평소보다 더 큰 잔을 가져오게 해서 보란 듯이 술을 퍼마시며 친구에게 이렇게 대꾸했다. “내가 술을 줄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네가 확신할 수 있도록 내가 직접 눈으로 보여주지. 아무리 술에 취해도 내 손과 눈이 직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다는 걸 똑똑히 보여 주겠네” 그리고선 친구의 아들에게 왼 손을 머리에 올리고 문밖으로 나가 서 보라고 말했다. 그리곤 친구 아들의 심장을 향해 활을 쏘았다. 화살은 가련한 젊은이의 심장을 꿰뚫었다. 캄비세스는 젊은이의 가슴을 갈라 화살이 박힌 심장을 꺼내 친구에게 보여주며 이 정도면 술에 취해도 자기의 손이 한 치도 틀림없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영화 <300>에 그리스를 침공하는 페르시아왕으로 나오는 크세르크세스왕은 성경에 에스더왕후의 남편으로 나오는 아하수에르왕이다.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를 정벌하러 나설 때 아들 다섯을 둔 신복 피티우스가 왕에게 간청했다. 다섯 아들 중 제발 한 명만 전쟁에 나가지 않게 해달라고. 크세르크세스는 어느 아들을 전쟁에서 빼줄지를 고르라고 한 다음, 피티우스가 장남을 고르자 그 가련한 젊은이를 두 쪽으로 찢어서 군대가 행군하는 길 양쪽에 매달아 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군대를 지나가게 하며 승리를 기원했다.

이 이야기들은 고대 로마의 스토아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자신의 분노를 권력으로 행사한 사람들의 예다. 세네카는 클라우디우스황제 시절 음모에 연루되어 코르시카 섬에서 8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그 때 평소 화를 잘 내는 동생 노바투스에게 <어떻게 하면 화를 진정시킬 수 있는가> 그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편지글 형식의 논문을 썼는데 <화에 대하여>가 바로 그것이다. <화에 대하여>는 화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화를 이기는 구체적인 치료법을 담고 있다.

세네카에 의하면 <화>는 인간의 격정 가운데 가장 사악하고 파괴적인 격정이다. 화는 인간을 광기로 내몬다. <화보다 빨리 인간을 광기로 이끄는 길은 없다>고 세네카는 잘라 말했다. 화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분별력을 잃게 만든다. 역사상 그 어떤 역병(疫病)도 화보다 치명적인 것은 없다고 세네카는 말했다. 인간은 화를 참지 못해 서로를 살육하고 전쟁을 일삼으며 끔찍한 학살과 파괴로 도시를 잿더미로 만든다. 악행의 미끄러운 비탈길로 가장 빨리 인간을 굴러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화다. 상대를 파멸시키기 위해 자신의 파멸조차도 불사하는 것이 바로 화다. <너 죽고 나 죽자>

왜 이토록 사악하고 파괴적인 격정에 인간은 그렇게 쉽게 휩싸이는 걸까? 세네카에 따르면 화를 불러  일으키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자신이 해를 입었다는 느낌이고 두 번째는 부당하게 그런 일을 당했다는 느낌이다. 부당하게 위해를 당했다고 느낄 때 인간은 화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일단 불붙은 화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되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의 기능을 초토화시키고 광기와 파국을 향해 치닫게 만든다. 특히 화의 화염에 싸인 자가 권력을 쥐고 있을 때는 그 폐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세네카가 예로 든 끔찍한 이야기들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취임 일주일 만에 대국민담화를 한 대통령의 분노한 얼굴이 국민들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뜻대로 정부조직법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며 분노를 터뜨린 대통령의 얼굴을 본 국민들은 그 분노 가득한 표독스런 얼굴에서 모두가 무서움을 느꼈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현대통령이 권좌에 오르는 것을 우려했다. 그녀가 단지 독재자의 딸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유신독재의 몸통이 부활하는 것은 분명 역사의 퇴행으로 여겨질 우려할만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내게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그녀가 분노를 안고 살아온 정치인이라는 사실이다. 권좌에 오르기 전 그녀의 말을 빌면 그녀는 <양 부모 모두를 흉탄에 잃었다> 그리고 <자식 하나 두지 못하고 살아왔다> 양 부모 모두를 잃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하지만 양 부모 모두가 <흉탄에> 살해당하는 경험은 아무나 경험하기 힘든 흔치않은 비극적인 경험이다. 그녀는 22살에 어머니가, 27살에 아버지가 총에 맞아 살해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리고 그 후, 자신의 아버지가 이루었다고 자부한 위대한 업적이 역사에서 송두리째 부인되는 꼴을 지켜보아야 했다.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일으킨 구국의 결단 5.16은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은 군부쿠데타로, 조국 근대화의 위대한 영웅 아버지는 일제(日帝)의 주구(走狗), 독재 권력의 화신으로 역사책에 기록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부모의 삶과 부모와 자신이 함께 했던 세월마저 역사에서 부정당하는 그 시간들을 그녀는 가슴에 분노를 삭이며 살아야 했다. 1998년, 아버지의 정치적 고향 대구에서 정치의 한복판으로 돌아온 지 15년 만에, 그녀는 아버지가 앉았던 권좌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그녀가 임명한 새 정부의 장관후보자들은 5.16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입을 닫았다. 권력의 꿀을 입안 가득히 물려줘서일까 모두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5.16을 쿠데타로 기술한 교과서의 운명이 앞으로 위태로울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과 부모가 해를 입었고,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평가가 부당하다는 인식을 변함없이 가져 왔다. 세네카가 말한 화를 일으키는 두 가지 조건 모두를 가진 셈이다. 그동안 그녀는 미소 뒤에 분노를 숨겨 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권좌에 앉았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분노는, 아니 분노한 권력자는 치명적인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분노를 안고 살아온 정치인이 최고의 권좌에 앉는 것을 내가 우려한 이유다.

이제 권력자의 비위나 맞추려는 아첨꾼들의 입에는 침이 마르고, 권력자를 비판하는 자들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지는 세상이 다시 올까 두렵다. 권력자의 싸늘한 눈빛 하나에 오금이 저려 제 스스로 입부터 닫고 허리만 꺾는 모습이 벌써부터 권력주변에서 보인다. 역대 어느 정부도 새 대통령 입맛대로 정부조직법을 만들어 출범한 경우는 없다. 자신의 뜻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고 취임 일주일 만에 자신을 뽑아준 국민들 앞에 작심한 듯 주먹을 흔들어대며 분노를 터뜨리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앞으로 그녀가 펼칠 신원(伸寃)의 정치가 두렵다. 로마의 철학자 섹스티우스는 화가 날 때는 화난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는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할 때의 자신의 얼굴을 신문에서 한 번 보았으면 한다. <화는 통제되는 것을 싫어한다. 만일 진실이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 같으면 진실 자체에 점점 더 분노하게 된다> 세네카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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