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앙 에세이] 4.19 혁명을 맞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며

글/ 권헌일(연세대 신과대 4학년)·객원기자

1. 4.19 혁명 53주기를 맞이하여

 
정신없이 대학교 마지막 중간고사를 준비하다보니 어느새 4.19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었을 때만 해도 4.19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만 합니다. 4.19 혁명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며, 이를 통해 독재정권을 물러나게 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벌써 4.19 혁명이 53주기가 되었습니다. 반 세기가 지났네요. 이쯤되어 우리는 한 번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나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게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기독교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말이지요. 아니, 우리 뿐 아니라 저 또한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2. 2013년의 대한민국 - 공의와 정의는 어디로 갔습니까?
 
저는 구약성서에서 예언서를 참으로 좋아합니다. 그래도 그 중에서 몇 권을 꼽으라면 단연, 예레미야와 아모스, 하박국을 꼽고 싶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새번역, 암 5:24) 이러한 아모스의 선포는 단순히 이스라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는 지금 이 세계에도 당연히 해당되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2013년의 대한민국, 특히 2013년, 4.19의 53주기를 맞이하는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공의와 정의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같이 살자는 말에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며 펄쩍펄쩍 뛰는 것이 대한민국입니다. 철저하게 '을'이 되어서 이용당하다가 갈 곳 없이 쫓겨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입니다. 안보라는 이유 하나로, 여러 의혹이 있던 말건 독재자의 딸을 대권에 올려주는 것이 대한민국입니다. 어느 곳에 정의가 있으며, 공의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도리어 지금 이 나라에는 끝없는 경쟁과 그에 따른 이기주의만이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3. 2013년의 한국교회 그리고 나 - 부끄러운 자화상
 
하나님은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너희는 너희에게 몸 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 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너희는 과부나 고아를 괴롭히면 안 된다. 너희가 그들을 괴롭혀서,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반드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겠다."(출 22:21-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인생을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였던 우리가 탈출하는 것과 유사한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세계가 올 것이라는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것이고, 그것이 이미 시작되었다라는 선포는 '복음'이 되는 것이겠죠.
 
따라서 우리 한국 교회 또한 나그네였던 사람들입니다. 목사님들이 강단에서 종종 이렇게 외치시지 않습니까? '이 민족을 하나님이 택하셔서 여기까지 이끌어주셨다'고 말이죠. 네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유는 우리 민족이 잘나서가 아니라, 매번 전쟁의 수렁에 치이고, 일제를 비롯한 열강에게 휘둘리고 억눌리면서 신음하던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 아래서 노예로 학대당하듯이, 우리도 이 좁은 땅 덩어리에서 숨 한 번 쉬지 못하고 살아온 세계에서 가장 비극적인 민족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나그네와 고아, 과부.. 즉 사회적 약자에 대한 더욱 철저한 책임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국 교회, 그리고 교회에 소속된 저는 어떨까요? 참으로 부끄럽지만, 이와 같은 예언자적 역할은 커녕 되려 이 나라를 계속해서 공의와 정의에게서 멀어지게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모 목사님의 성추행 파문 이후 곧바로 개척을 한 것도 그랬고, 최근 모 목사님의 논문 표절은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교회가 주차장이나 건물을 짓겠답시고 땅 투기를 하는 것은 물론, 잘 살고 있던 세입자들을 내쫓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그 뿐인가요? 사회적 문제가 터졌을 때, 강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위해 살아가는 이들을 비난할 뿐만 아니라, 때론 비겁하게 모르겠다고 침묵만 해왔던 것도 마찬가지로 교회였지요.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라고 다를 것은 없습니다. 내가 살아가기 바빠서 이웃이 죽어가는 소리를 지나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해가 가면 갈수록 무뎌지기만 하는 귀는 약자의 신음을 듣기에는 무뎌지고, 들은 소리는 빨리 빨리 잊어갑니다. 말만 많아지고 행동은 무뎌집니다. 색을 빼라는 주변의 장난스런 충고에 '그래야죠'라고 능글맞게 대답하기나 합니다. 교회에서 쓴소리를 하지 않는 것도 그들을 존중하거나 아끼는 마음이 아니라, 제가 교회에 정착하고 살아가기 위한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삶과 형편의 어려움에서 저를 꺼내주셨음에도 저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받들고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걸음 하나를 떼는 것도 괴로움만이 묻어날 뿐입니다.
 
4. 그래도 내일의 희망을 주시니 걷습니다.
 
이렇게 부끄럽기 그지없는 저이고 우리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우리와 다른 것이 있었나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았던 그 사회에서도 언제나 가난한 자는 당하는 사람들이었고, 가진 자는 횡포부리는 이들이었습니다.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가 서글픈 것은 지금이나 그 때나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항상 예언자를 보내시고, 심판하심으로 우리를 일깨우셨습니다. 예수님의 선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하늘의 권좌 위치나 생각하고, 예수 재림에 따른 이스라엘 재건만 꿈꾸던 제자들은 어떠했나요? 그런 한심하기까지 한 이들에게도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을 주심으로 주님 안에 있는 우리가 이전의 이기적인 삶의 자세에서 벗어나 자신의 소유를 모두 내어주고 약자를 돌보는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저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예언자적 사명을 다 할 수 있기를 기대하십니다. 아니, 되려 한심한 우리이기에 하나님은 들어서 길을 걷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쓰지 않으시면 갈 곳이 없는 우리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그 길을 걷기가 어려운 우리임에도 성령님이 앞에서 손짓하시기에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렇기에 마냥 좌절하고 있을 순 없습니다. 저는, 우리는 내일의 하나님 나라가 오늘이 되도록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야만 합니다.
 
네.. 저 오늘까지만 부끄러워하고 싶습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성령님의 손짓과 예수님의 동행을 따라 이 땅의 약자, 억눌린 사람들에게 당신의 복음을 이야기하며 당신의 정의와 공의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제 목소리는 작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쓰시는 하나님은 너무나도 광대하시기에, 저는 희망을 가지렵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절망에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뻐하겠다고 다짐했던 하박국처럼 말이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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