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이란을 입에 올릴 때 꼭 '빌어먹을(fucking)'이란 욕설을 붙일 정도로 이란에 대한 적대감이 강하다. 이 같은 적대감은 1979년 이란 미 대사관 인질사건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이란인들이 왜 미국 대사관에 난입해 자국민들을 볼모로 인질극을 벌였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인질극 직전 극적으로 대사관을 빠져나와 CIA와 캐나다 정부의 협조로 탈출에 성공한 6명의 대사관 직원들도 이란인들이 자신들을 적대시했는지 몰랐다고 증언했다.
인질극 직전의 미국-이란 관계를 감안해 볼 때 더 분노해야 할 당사자는 이란인들이다. 미국은 쿠데타를 사주해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을 축출하고 팔레비 국왕을 앉혔다. 이는 중동의 패권 국가이자 산유국인 이란을 장악하기 위한 미국의 정치공작이었다. 미국을 등에 업고 권좌에 오른 팔레비 국왕은 호사를 누렸다. 반면 이란 국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이란 국민들의 분노는 1979년 폭발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아야툴라 호메이니의 지도하에 민중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미국은 이때 또 한 번 실책을 저질렀다. 민중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팔레비 국왕은 미국에 망명을 기도했다. 미국은 그의 망명을 허락했다. 이 같은 조처는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셈이었다. 이란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연일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결국 이란 미 대사관 인질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의 잘못된 외교정책이었던 것이다.
이란 인질사태가 벌어진지 30여년이 넘었지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이란 인질사태를 불러온 원인이 미국에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오히려 CIA 요원이 이란에 잠입해 미국인들을 안전하게 구출한다는 영웅담을 그린 영화 ‘아르고’를 보고 쾌감을 느낄 뿐이다. 이 작품은 올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았는데 중요한 이유는 이 영화 속엔 미국의 아픈 기억을 치유해 줄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4월 15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렸던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폭탄테러가 벌어졌다. CNN 등 미국 주요 언론에 따르면 이번 테러로 3명이 사망하고 141명이 다쳤고 이 가운데 17명은 중태라고 전해진다.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무고한 민간인을 상대로 한 테러에 공분을 표시했다. 테러 용의자는 체첸인으로 밝혀졌다. 현재 미국 수사당국은 이슬람 테러조직과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벌써부터 이슬람에 대한 적대감이 꿈틀거리는 양상이다.
이 시점에서 미국은 9.11테러의 교훈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군사적 침략정책을 최우선에 놓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차례로 침공했다. 아프가니스탄은 9.11테러를 획책한 알 카에다의 은신처였기에 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일정 정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은 미국의 군사적 일방주의 외에는 아무런 명분이 없었다. 이라크는 9.11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을 뿐 아니라 미국이 전쟁 명분으로 주장했던 대량살상무기도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거꾸로 이슬람권에서 반미감정을 부채질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마저 약화시켰다.
미국인들이 테러에 분노하는 건 정당하다. 하지만 감정적인 대응은 금물이다. 그보다 미국인들은 자국 영토에서 왜 끔찍한 테러가 계속해서 벌어져 상시적인 테러 위험에 시달려야 하는지, 미국의 대외정책에 혹시 잘못은 없었는지, 미국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 이제까지 어떠했으며 이제 앞으로는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런 고민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미국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상시적인 테러 공포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글/ 지유석(시사매거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