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심광섭의 미술산책] 하나님의 놀음

심광섭·감신대 교수(조직신학)

▲베로네제, <이삭의 희생>, c.1585. 

해괴망측하고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비가 곧 아들 목을 따려하고 아들은 목을 길게 뻗은 채 눈은 하늘을 바라보고서는 재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몸과 목숨이 지극한 위험에 처해지는 이러한 일이 하나님에 의해 저질러지는 일이라는 것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여 루터도 창세기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이런 엉뚱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가보다. “하나님이 신심 깊은 자들을 가지고 죽이고 되살리고 하는 이 놀음을 하시는 것은 당신 자신과 천사들에게 흥겨운 구경거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베로네제(Paolo Veronese, 1528-1588)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파의 화가다. 그의 <이삭의 희생>(c.1585)은 땅의 제단이 대각선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다. 화가는 이삭의 눈높이에서 위를 향하여 그렸다. 화가는 하나님의 놀음일지라도 심오한 믿음, 깊은 경건함으로 그려낸다. 그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의 감정”(슐라이어마허)의 표현이다.
 
이삭은 체념한 듯, 
아버지의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듯,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듯, 
아버지의 행동을 무조건 믿는 듯 
우리들이 과거에 기도하던 방식으로 얌전히
제단 위에 알몸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밑으로 떨구고 있다. 
이삭이 묶이지 않을 것을 보면
이삭이 달아나거나 저항하지 않고 
순종과 기도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삭은 경건의 화신이다.
이는 동방 전통의 도상의 특징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은 왼손으로 아들의 어깨를 잡고
오른 팔을 높이 쳐들었다.
허리춤에 꽃아 두었던 칼이 오른 손에 잡히자 
하늘에서 칼춤을 춘다.
칼날이 수직으로 내려 꽂히려는 순간
천사가 가파르게 고꾸라지듯 나타나
아브라함의 필목을 낚아챈다.
 
동방전통에서는 아들의 목에 칼을 대는 아브라함의 위협적인 자세가 우세했고,
서방전통에서는 팔을 들어 칼을 크게 휘두르는 과시적 동작을 선호했다 한다.
 
왼쪽 덤불에는 다소곳이 어린양이 이삭을 바라보고 있다. 2세기 사르데스의 주교 멜리토는 ‘이삭의 희생’ 주제에서 숫양을 예수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성경이 알래고리적으로 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양을 가둔 덤불은 예수의 십자가요, 제단이 차려진 곳은 예루살렘이다.
 
하늘빛이 마지막 순간을 태우는 노을처럼 온통 금빛이다.
그 노란 빛은 이삭의 어깨 위에서 더욱 밝고 투명하게 빛난다.
하느님의 놀이에 초대된 아브라함의 믿음에 이삭의 순종이 더해지지 않았더라면
그 빛어림은 이처럼 아름답지 않았을 것이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