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 San Callisto Catacomb, 3세기경 |
▲<선한목자>, 4세기, 피오 크리스천 뮤지엄 |
▲<선한목자>, Catacomb of Priscilla, 3c |
▲Good Shepherd, 3c |
▲<선한목자>, Mosaic, 5th century |
▲<선한목자>, Orpheus |
하나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말씀으로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선한 목자는 약한 혹은 늑대나 사자와 같은 맹수의 위협 앞에서 일신의 목숨을 위해 양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고 양의 목숨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목자이다.
또 하나는 누가 15장의 비유로서 양 100마리 중 잃은 양 한 마리라도 발견되면 주인이 그 잃은 양을 찾아 밖으로 나가지 않겠느냐는 말씀이다.(눅 15:4-6)
산칼리스토 카타콤에서 발견된 선한목자상은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찾아서 어깨에 메고 나오는 장면이 실감나게 그려졌다. 이 목자는 왼손으로 양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우유통을 들고 있다. 물론 어린 양에게 먹일 양식이다. 이 그림을 보면 찾아 돌보고 사랑을 베푸는 목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환조의 상은 등신대의 크기로 양을 메고 있는 자세와 어깨에 멘 가방에서 젊은 목 자의 생기와 발랄함을 엿볼 수 있다.
프리실라 카타콤에서 보는 또 다른 도상은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 도상으로 선한 목자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초대교회의 미술이 그리스, 로마 미술의 형식을 이어받으면서 그 의미를 그리스도교적으로 변형시킨 전형을 엿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는 음악의 신으로 하프를 연주하고 여러 동물들을 감화시켜 맹수성과 야수성을 버리면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를 에워싼다. 이 선한 목자 상은 양을 잘 먹이고 다스리는 시편 23편의 평화의 푸른 초장을 연상케 한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왕이나 우주의 통치자 혹은 지적인 인도자의 의미를 담고 있는 랍비와 같은 스승 예수상이나 영적인 구도자인 수도자의 예수상보다는 대개 위험에 처한 양을 구하고 양육하는 선한 목자 예수상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교회의 정면에 선한 목자 그림이 그려져 있거나 아예 교회 이름이 ‘선한목자’인 교회도 있는 것을 보면 교회를 통해 인간이 원하는 근본적 종교적 욕구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