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현장에서 허병섭 목사 내외 ⓒ ‘허병섭 목사, 이정진 선생을 위한 모금위원회’ 카페 |
의료진은 허 목사는 그가 입원하기 일주일 전 쯤 먼저 쓰러진 아내 이정진(61) 선생을 간병해 오다가 과로로 쓰러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의료진은 그러나 허 목사 내외가 ‘무동함구’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병명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허 목사 내외는 똑같이 정신을 놓고, 말을 못하고 있으며 간병인의 도움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지인들은 얼마 전부터 허 목사 내외를 위한 기도 그리고 모금 활동을 위한 ‘허병섭 목사, 이정진 선생을 위한 모금위원회’ 카페(http://cafe.daum.net/echocouple)를 개설했다.
녹색온배움터에서 오랫동안 수고해 왔던 터라 배움터의 졸업생들이 허 목사가 몸져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자진해서 간병에 나서는 한편,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
하지만 그 중에서도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수고하고 있는 사람은 딸 허미라. 미라씨는 매일 같이 그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병상소식과 진행사항을 카페에 게시해, 녹색대 관계자들과 허 목사와 이 선생의 지인들에게 기도와 후원을 부탁하고 있다.
‘허병섭 목사, 이정진 선생을 위한 모금위원회’의 실무를 맡고 있는 오용식 목사는 “허 목사님이 빨리 완쾌하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이 같은 카페를 운영하게 됐다”며 “제자들과 지인들의 소원대로 병상을 털고 일어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 목사는 70, 80년대 도시빈민운동에 한창이던 허 목사를 도와 사회 약자들을 돌보는 활동에 함께 일했던 동지다.
오 목사는 또 “요즘엔 각계 지인들이 한푼, 두푼 결코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허 목사 내외의 장기간 입원시 충당해야 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활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음을 알렸다.
1970년대 초부터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를 통해 빈민선교운동에 뛰어 든 허 목사는 서울 월곡동의 판자촌 일대에서 사회내 약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꾸준히 활동해 왔다. 특히 88년에는 목사 신분을 뒤로한 채 공사판 현장에 투신해 미장일을 배우는 등 노동자들과 함께 ‘건축일꾼 두레’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또 생명·생태 운동의 중요성을 인지한 그는 90년대 초에 들어선 귀농 사업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조화되는 세계를 꿈꿨고, 최근까지 녹색온배움터(구 녹색대) 총장직을 수행해 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