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크 브라우어, <천사와 싸우는 야곱>(Jakob im Kampf mit dem Engel), 93 x 111 cm, 1969. |
아리크(에리히) 브라우어[Arik(Erich) Brauer] ‘환상현실주의’(Fantastic Realism)로 불리는 비엔나 학파의 한 화가다. 1929년 비엔나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리크 브라우어의 직업은 다양하다. 화가, 소묘가, 인쇄인, 시인, 댄서, 가수, 무대 디자이너 등이다. 그는 비엔나와 이스라엘의 아인-호드(Ein-Hod)에 거주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브라우어는 에른스트 푹스(Ernst Fuchs), 루돌프 하우스너(Rudolf Hausner), 볼프강 허터(Wolfgang Hutter), 안톤 렘덴(Anton Lehmden)과 함께 비엔나 환상현실주의를 공동으로 창시했다.
브라우어는 구약의 이야기를 주제로 ‘불타는 가시덤불’, ‘무너지는 여리고 성의 트럼펫 함성’, ‘번제로 드려지는 젊은이’ 그리고 아브라함, 모세, 미리암, 다윗, 에스더, 욥, 다니엘, 솔로몬과 시바 여왕 등 많은 성서화를 그렸다.
브라우어는 성지 이스라엘을 직접 가보고 거기서 살아본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으로서 나치에 의해 살해당했다. 1951년 그는 처음 이스라엘을 방문에 거기에 작업실을 만들고 일 년 중 몇 달을 거기서 지내곤 한다.
그러나 샤갈에게서처럼 그의 그림에서도 이스라엘 땅을 직접적으로 연상케 하는 작품은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는 언제나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가장 작고 하찮은 것도 그의 눈과 손에 닿으면 크고 위대해지며 놀라움으로 변신한다. 그는 우리를 동화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가 보는 세계는 동화의 이야기를 입으며 마술동산이 된다. 여기에 작가의 독특함이 있는데, 그는 심해(深海)를 탐험하는 정열적인 잠수부이다. 그는 바다의 해저에서 본 경험들을 특이한 색과 진기한 형태로 화폭에 담는다.
브라우어가 그린 ‘야곱의 씨름’은 서양 미술사에서 동일한 주제로 그린 그림과 해석이 영 딴판으로서 기발하고 참신하다. 브라우어는 야곱의 투쟁을 자기 자신과의 투쟁으로 이해한다. 그림에는 야곱이 투쟁하는 천사가 그려져 있지 않다. 야곱의 싸움은 그가 잡으려고 하면할수록 달아나 끝내 잡을 수 없는 환영과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의 그림에서 인간 욕망과의 싸움은 슬픔으로 돌아가 환상이 된다.
야곱은 엉덩이가 들린 채 땅에 고꾸라져 나자빠져 있다. 그의 몸에는 차가운 바다 속에서도 고열선이 흐르는 형광등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다. 그는 바다의 덩굴식물, 바닷말, 문어 같은 오징어류가 있는 바다흙에 자신을 묻으려는 듯하다. 발광벌레가 바다 바닥위에서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는 모습이 별을 떠오르게 한다. 상층부에는 해파리가 열기구처럼 둥둥 떠다니는데 그 가시로 고꾸라진 야곱의 등을 찌르고 있다. 그는 깊은 잠에 들어 꿈을 꾸고 있는 듯, 아님 지쳐 기절한 듯, 그의 부상당한 허벅지에서 흘러나오는 발광체는 무엇인가?
이 그림을 통해 작가는 생태학적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인가. 야곱은 아직도 몸서리치며 땅을 자기에게 굴복시키려는 인간의 전형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기진한 상태다. 그는 자기 자신과 투쟁할 뿐만 아니라 눈부신 무구(無垢)한 자연과도 투쟁하는 자이다. 그렇지만 자연은 오랜 시간의 상에서 보면 자기 자신을 잘 보전한다. 자연은 인간이 안겨주는 모든 것을 그저 받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연과 싸우는 야곱, 이 그림에서는 자연이 천사를 대신하는 것은 아닌가? 장기적으로 자연에 대항하여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 그 아무리 강하고 끈질긴 야곱이라 하더라도 never, no!
오 빌어먹을, 나는 먼 곳에 마음을 벗어두고 온 사내
그대 눈부신 무구함 앞에
상한 짐승처럼 나 속울음 삼켜 병만 깊어지느니
「예래바다에 묻다」 / 김사인
눈감고 내 눈 속 희디흰 바다를 보네
설핏 붉어진 낯이 자랑이었나 그대 알몸은
그리워 이가 갈리더라 하면 믿어는 줄거나
부질없이 부질없이 손톱만 물어뜯었다 하면 믿어는 줄거나
내 늙음 수줍어
아닌 듯 지나가며 곁눈으로만 그댈 보느니
어쩔거나
그대 철없어 내 입안엔 신 살구 내음만 가득하고
몸은 파계한 젊은 중 같아 신열이 오르니
그립다고 그립다고 몸써리치랴
오 빌어먹을, 나는 먼 곳에 마음을 벗어두고 온 사내
그대 눈부신 무구함 앞에
상한 짐승처럼 나 속울음 삼켜 병만 깊어지느니
*예래는 제주의 중문 서쪽 바닷가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