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이 죽어가는 광경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아야 하니 괴롭다. 사고 발생 후 40여 일이 지났어도 여전히 괴롭다. 아이들의 죽음에 더해 지도자급 목회자들이 아이들의 죽음을 놓고 망언을 쏟아 내는 광경을 봐야 해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조광작 공동부회장은 공동임원회의 석상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켰다. 그 파문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또 하나의 망언이 불거져 나왔다. 진원지는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다.
익명의 제보자는 김 목사의 발언이 담긴 녹취파일을 보내왔다. 이 파일엔 “하나님이 공연히 이렇게 (세월호를) 침몰시킨 게 아니다. 나라를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그래도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는 김 목사의 발언이 녹음돼 있었다. 해당 발언은 11일(일) 설교를 통해 나왔다고 전한다. 이 같은 발언을 들으니 더욱 참담한 심정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아이들일까? 대한민국은 10년을 주기로 대형참사가 반복돼 왔고, 이런 일련의 대형참사에서 가장 큰 희생자는 아이들이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피해가 가장 컸다.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세월호 침몰과 그 이후에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과연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일까?’라는 회의마저 든다. 도대체 하나님은 이 사고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 조광작이나 김삼환의 발언이 진정 하나님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까?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이 땅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성경에 기록된 아이들의 죽음
아이들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는 성경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구약에선 출애굽기, 그리고 신약에서는 마태복음이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한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다.
출애굽기에서 이집트의 지배세력은 장차 세를 키울 것을 두려워 해 히브리인들의 사내 아기는 모조리 죽였다. 한편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헤롯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훗날 자신의 권력을 넘볼 것을 걱정해 그 아기의 목숨을 노린다. 그러나 이 시도가 실패하자 그는 그 아기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유대 아이들을 몰살시킨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아이들의 죽음이 여호와의 역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보다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세력들이 저지른 인종청소 행위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손수’ 아이들을 죽이기도 했다. 이 같은 이야기는 출애굽기 12장에서 발견된다. 여호와께선 밤에 두루 다니시면서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이집트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셨다(출애굽기 12:11). 바로의 아들조차 여호와의 징벌을 피해가지 못했다. 단, 히브리인들의 아이는 무사했다. 문설주에 바른 어린 양의 피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전승을 근거로 이방 민족들의 아기이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거리낌 없이 죽이셨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노예 시절 지배계급으로부터 많은 박해와 탄압을 받았고,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한때 남자 아이들은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죽임을 당해야 했다. 모세는 이런 죽음의 광풍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압제자들의 손에 아이가 살해당하는 광경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자. 여호와께서 이집트의 장자를 치신 일은 ‘너희도 한 번 당해보라,’ 즉 ‘힘 가진 너희들도 아이를 잃은 아픔을 한 번 느껴보라’는 계고의 메시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 대부분은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아이들이다. 또 이 아이들의 죽음은 오로지 힘 있는 자에게만 편리하게 구축된 사회 질서 때문에 생긴 결과물이다. 이런 맥락에 비추어 볼 때, 조광작 ‧ 김삼환 류의 발언들은 약자의 슬픔을 외면한 채 현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변종 복음에 불과하다. 이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비슷한 사고로 잃었다면 어떤 말을 할지 사뭇 궁금하다.
이 사회가 아수라장이 된 데에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오로지 물질주의를 지상가치로 격상시킨 어른들의 잘못이 크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한편으로 아이들의 죽음에 슬퍼하시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어른들의 죄악된 발걸음을 돌이키기를 간절히 원하실 것이라 믿는다.
더 이상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자. 그리고 아이들의 죽음에 섣불리 천박한 신학적 해석을 내려서도 안 된다. 더구나 조광작 ‧ 김삼환 류의 변종 복음은 엄밀히 말하면 기독교가 아니다. 이런 유사 기독교를 척결하는 일이 이 땅의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