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이화대학교회 장윤재 담임목사] "뜨겁게"

2026년 2월 22일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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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

성경본문

요엘 2:12-15, 베드로전서 4:7-11, 마가복음 12:28-31

설교문

지금 젊은이들은 보일러와 온돌을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지만, 연탄아궁이와 구들방을 쓰던 시절에는 겨울밤마다 이런 풍경이 흔했습니다. 밤 11시나 12시쯤이면 어머니가 "오늘은 누가 새벽에 일어나 연탄 갈 거야?" 하며 미리 당번을 정하십니다. 주로 막내아들이나 중학생 큰아들이 걸립니다. "나 내일 시험인데요..." 하다가도 결국 걸려서 시계를 맞춰 놓고 잠이 듭니다.

새벽 3~4시, 알람이 울리면 방은 이미 싸늘해져 있고 이불 밖은 영하입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슬리퍼만 간신히 끌고 나가 연탄을 갑니다. 불씨가 죽지 않도록 잘 맞춰 놓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가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합니다. 그런데 막 잠이 들 무렵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불 약하다, 다시 나가 봐라!" 저 어릴 적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그때를 떠올리며 웃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방바닥이 뜨거워야 '사는 맛'이 나던 시대였습니다. 연탄은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집안의 분위기와 생활 리듬 자체였습니다. 겨울 저녁, 아버지가 퇴근해서 들어오시면 "오늘 불 잘 들었냐?"가 첫 인사였습니다. 방바닥이 뜨뜻하면 그날은 성공이고, 미지근하면 엄마와 아빠와 아이들 사이에서 누가 '불 땐 사람'인지 심문이 오갔습니다.

학교에서는 겨울 아침 교실 난로에 연탄을 갈아 넣고 그 위에 양은 도시락을 올려 밥을 데웠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날 때 도시락 뚜껑을 열면 밥은 눌어붙어 있고 계란후라이는 반쯤 탄 상태였지만, 그 '연탄 냄새' 배인 점심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었습니다.

요즘도 연탄 때는 가정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그리고 연탄 한 장 값은 얼마인지 아십니까? 현재 대략 장당 1,000~1,200원 수준이고, 산간이나 오지 등에서는 운송비가 더해져 장당 1,500원까지 올라갑니다. 한국에서 연탄으로 난방하는 가구는 약 6만 가구 정도입니다. 대부분 에너지 취약계층입니다. 고령층, 기초수급·차상위, 쪽방·반지하·노후 주택 거주자 등입니다. 연탄 난방비는 생각보다 무섭습니다. 겨울에 한 달 500장만 뗀다고 해도 장당 1,100원 기준이면 연탄비가 약 55만 원에 달해 취약계층에는 큰 부담이 됩니다.

연탄은 우리 시대 사회적 약자를 상징하는 아이콘입니다. 그들의 가난과 추위, 아픔과 눈물의 상징이 연탄입니다. 새까만 연탄은 밤새 자신을 하얗게 태워 춥고 가난한 사람들의 몸을 덥힙니다. 그래서 연탄은 우리 시대 가장 낮고 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다 태우고 사라져 그들의 눈물과 아픔을 위로하고 생명을 지키는 존재입니다.

안도현의 시 <연탄 한 장>을 읽어보겠습니다. 오늘의 공동 기도문입니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 삶이란 /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 /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 연탄차가 부릉부릉 /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 생각하면 / 삶이란 /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저도 기억이 납니다. 매섭게 추웠던 겨울날, 눈까지 내려 미끄러운 빙판길 위에 누군가 밤새 불타 하얀 재가 된 연탄재를 깨뜨려 안전한 길을 만들어주던 옛날이 기억납니다. 이렇게 자신을 다 태우고, 다 비우고, 다 없애버려 세상을 따뜻하게 덥히고 생명을 지키는 것이 연탄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바로 그런 연탄과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의 교독문인 빌립보서 2장이 전하는 말씀을 새번역 성서로 읽어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립보서 2:6-8)

하늘 높은 곳에 계시던 예수님은 이렇게 스스로 낮추시고 자신을 비우시고 온몸을 다 불태우셔서 세상에 참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라 세상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신, 연탄과 같은 분입니다. 그렇게 비우고 불살라버림으로써 예수님은 이 차갑고 어두운 세상을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밝은 빛으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연탄이 타면 하얀 재만 남지만, 따뜻한 사랑은 영원히 남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한 장에 1,100원, 일반인에게는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연탄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지치고 병든 사람들에게 하룻밤 생명을 지켜주는 사랑의 파수꾼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연탄이 넉넉히 있으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연탄의 구멍은 스물두 개인데, '행복'(幸福)이라는 글자를 한자로 쓰면 딱 스물두 획입니다.

사순절(四旬節, Lent)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고 기대하며, 그 사랑의 신비 가운데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는 사십일의 여정입니다. 사순절의 시작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입니다. 올해는 지난 2월 18일 수요일이 바로 재의 수요일이었습니다. 이날의 공식적인 이름은 '재의 날'(Day of Ashes)입니다. 왜 '재'입니까? 재는 어떤 것이 불에 완전히 타고 난 뒤에 남는 가루입니다. 왜 우리는 그런 재로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것일까요?

성서에서 재는 인간의 유한성과 슬픔, 회개와 정결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흙에서 와서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창세기 3:19) 말씀하셨습니다. 재는 우리가 흙(먼지, 재)에서 왔다가 다시 흙(먼지, 재)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이 유한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진실을 상기시키는 표지입니다. 오늘의 AI·테크놀로지 문명이 "인간은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는 오만 속에서 질주할 때, 그리스도교의 사순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먼지다."

둘째로, 성서에서 재는 슬픔의 상징입니다. 민족 멸절의 위기 앞에서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는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통곡했습니다.(에스더 4:1-3) 이복 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다윗의 딸 다말은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눈물로 정의를 호소했습니다.(사무엘하 13:1-19) 이렇듯 재는 세상의 불의와 폭력, 그리고 무고한 자의 고난을 상기시키는 표지입니다.

셋째로, 성서에서 재는 회개의 상징입니다. 오늘 구약성서의 말씀처럼 요엘 선지자는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 돌아오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요엘 2:12-15)라고 호소했습니다. 구약성서에는 기도할 때 재를 덮어쓰고 금식하며 참회하던 전통이 있습니다. 다윗은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 눈물 섞인 물을 마[시며]" 회개했다고 했습니다.(시편 102:9) 에스겔은 "재 가운데에 뒹굴며" 회개했습니다.(에스겔 27:30) 욥도 "재 가운데에서" 회개했고(욥기 2:6-9; 30:18-20; 42:5-6), 다니엘도 "재를 덮어쓰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다니엘 9:1-3)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대속죄일(Yom Kippur)에 이 전통을 지킵니다. 재의 회개는 개인적 죄만이 아니라 인간이 빚어낸 폭력과 불의와 파괴의 잔해를 상기시킵니다.

넷째로, 성서에서 재는 정결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민수기는 부정한 자를 깨끗하게 하려면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우슬초를 가져다가" 뿌리라고 말합니다.(민수기 19:16-19)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히브리서 9:11-14) 오늘 우리는 소비주의, 도파민 중독, 즉각 만족의 문화 속에 삽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재는 우리의 쾌락을 내려놓고 영적 깊이로 들어가는 정결의 도구가 됩니다.

이처럼 재는 인간의 유한성, 슬픔, 회개, 정결의 상징입니다. 교회의 전통에서는 한 해 전 종려주일에 쓰였던 종려나무 가지를 말려 두었다가 태워 이 재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 재로 손등이나 이마에 십자가를 그립니다. 이마에 십자가를 표시하는 전통은 초대교회부터 있었습니다. 에스겔과 요한계시록은 "이마에 표를 그리라"(에스겔 9:4),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라"(요한계시록 7:3)고 말합니다. 재의 십자가는 회개하고 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소유로 인침을 받았다는 표지입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바울도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로마서 14:8) 재의 십자가 표시는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드러냅니다.

안도현의 또 다른 시 <너에게 묻는다>를 인용합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Please refrain giving a kick on ash of a briquette with your foot, but think if you even once were a warm person to someone as it did burn of itself.)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습니까? 단 한 번만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습니까? 아니면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습니까? 우리의 인생도 언젠가는 연탄재처럼 하얗게 식은 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한 연탄불처럼 뜨겁게 불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온 생명을 불태워 우리의 언 몸을 녹여주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 예수님은 여기에 "목숨"까지 덧붙이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대충'이 아닙니다. '미지근하게'가 아닙니다. '마음을 다하고'(with all your heart), '목숨을 다하고'(with all your soul), '뜻을 다하고'(with all your mind), '힘을 다하여'(with all your strength)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너의 전 존재 전체를 불살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신약서신이 말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7-8)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며 경건과 절제와 성결의 삶을 사는 기간입니다. 영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The Passion of the Christ"라고 합니다. "The Suffering of the Christ"라고 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열정'을 뜻하는 단어 "passion" 앞에 정관사 "The"를 붙이고 소문자 "p"를 대문자 바꾸어 "The Passion of the Christ"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뜨거운 열정(passion)이 그를 십자가 고난의 길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뜨거운 분이셨습니다. 사랑으로 활활 타오르신 분이셨습니다. 마치 연탄불처럼 밤새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재가 되신 분입니다. 그 정결한 십자가의 재로 예수님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늘 높은 보좌 위에서 낮고 천한 땅 위에 내려오셔서 끝까지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불태우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이 재를 받을 때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손등이나 이마에 이 재가 얹혀질 때 여러분이 하나님의 소유로 인침을 받아 영원한 생명과 은혜 안에 살게 되었음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재를 받을 때 여러분의 가슴도 뜨겁게 타올라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세상을 덥히고 밝히는 삶을 사십시오. 목사님들이 여러분의 손등이나 이마에 십자가 성호를 그려주시며 "예수님처럼 뜨겁게, 사랑의 재가 되어, 생명이 되십시오!"라고 말씀하실 겁니다. 티끌같이 유한한 인생이 영원이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십시오. 이기심으로 가득 찬 욕망의 인생이 자신을 비우심으로 모든 것을 품으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작가가 말했습니다. "나는 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가 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덤덤하고 의미 없는 삶을 먼지처럼 사는 것보다, 찬란한 섬광 속에서 열정을 불태우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삶이란, 그 시인의 말대로, 연탄재처럼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 그 길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께서 가신 길입니다. 그 생명의 길을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뜨겁게 사랑하며 세상을 따뜻하게 덥히고 환하게 밝히는 복된 그리스도인들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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