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연일 여론의 입길에 오르고 있다. 그는 19일(목) 오후 기습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입장을 강변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안중근-안창호를 존경한다고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 뜻’이라는 발언에 대한 여론의 심판은 사실상 끝나 보인다. 이제 관심은 그가 인사 청문회를 거쳐 총리에 임명될 것인지의 여부에 쏠려 있다.
일반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그가 인사청문회와 국회 비준을 거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야권이 단단히 벼르는데다 여권 내부의 반발기류가 심상치 않아서다. 청와대가 자진사퇴를 권고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언론을 통해 흘러 나왔다.
필자는 그의 총리 임명과 이에 따른 정치적, 사회적 파장을 다루지 않으려 한다. 이 일은 일반 언론의 몫이라는 판단에서다. 교계 언론으로서 향후 전개될 사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가 나의 포인트다.
교계, 진보-보수 첨예하게 대립
교계는 ‘하나님 뜻’ 운운한 발언에 대해 극명하게 대조된 반응을 보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등 진보성향의 단체들은 그의 발언을 일제히 성토했다. 반면 한국교회언론회, 한국교회연합 등 주로 보수성향의 기독교 단체들은 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그를 감쌌다. 동시에 이들은 ‘좌파’가 장악한 언론이 그의 발언을 왜곡했고 이에 여론이 그를 마녀사냥했다고 비난했다. 그가 장로로 시무하는 온누리교회의 이재훈 담임목사도 비슷한 논리를 폈다.
이런 와중에 그가 낙마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를 감싸는 쪽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사실 그의 발언은 애초에 논란거리도 아니었다. 그의 강연에서 드러난 역사관-신앙관은 차마 ‘관’이라고 지칭하기엔 너무나도 조악하고 천박했다. 그의 강연이 기독교적 역사관을 잘 드러냈다는 반론은 역설적으로 이 나라 기독교의 고질적 병폐인 신학의 빈곤을 다시 한 번 드러낸 데 불과하다. 또 언론이 그의 발언을 왜곡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강연에서 나온 발언 하나하나가 문제 투성이였고, 언론은 그 가운데 가장 문제될 만한 대목을 선별해 보여줬을 뿐이다. 따라서 그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도 마녀사냥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의 인사는 청와대 작품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그를 향해 비난여론이 빗발치자 한 걸음 물러나려는 모양새다. 낙점한 인사에 대해 취하는 태도치곤 대단히 무례하다. 애초에 그를 총리감으로 고를 때 그의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될 줄 몰랐단 말인가?
정치권에선 그를 정략적 카드로 쓰려고 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즉 그에 대한 비난여론이 비등한 틈을 타 다른 인사, 이를테면 국가정보원장과 교육부장관 인사를 관철시키려 한다는 소문이다. 만약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더욱 심각하다. 청와대가 그의 흠결을 알면서도 그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비난의 화살을 집중시킨 셈이기 때문이다.
종합해보면 어떤 경우이든 청와대가 그에 대해 인격살인을 벌인다는 점이 분명하다.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애초에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내세운 일 자체가 잘못이었다. 그를 감싸는 기독교계 보수주의자들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는 너무나 명확한 비상식-몰상식에 대해서도 보수-진보라는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찬반이 나뉘는 일이 흔해졌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진 시점은 대략 장로 대통령의 집권 시기와 일치한다.
이런 논란은 기독교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논란은 진실에 더 가까이 가게 해주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진실이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문창극 발언처럼 논란거리조차 될 수 없는 쟁점에마저 논란이 벌어지는 건 소모적이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제 교계가 소모적 대립을 멈추고 진보/보수 할 것 없이 ‘하나님의 뜻’이 하루 속히 이 땅에 이뤄질 수 있도록 마음을 합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