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원로들이 지난달 1일 명성교회에서 ‘세월호 참사 위로와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 연합기도회’를 갖는 장면. 이날 기도회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 초청돼 인사말을 전했다. 이에 세월호 유족들의 눈물이 아닌, 권력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소위 ‘권력자를 옹호하는 교게 원로들의 행사’란 비난을 받은 바 있다.ⓒ베리타스 DB |
한국 교회의 원로로 사회로부터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던 김동호 목사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상에 올린 글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김 목사는 정의에 대한 단상을 적으면서 “불의한 사람들이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정의의 사람이 되고 싶다. (중략) 그러나 동키호테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주장을 펼쳐 네티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전에도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해 다소 모순적인 주장을 펼쳐 빈축을 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곤욕을 치르는 ‘원로’ 목회자가 비단 김 목사뿐만은 아니다. 소위 복음주의 4인방으로 꼽히는 故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 목사, 故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 이동원 지구촌교회 목사,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목사 등이 차례로 입길에 올랐다.
사랑의교회 故 옥한흠 목사는 생전에 많은 존경을 받았던, 정말 보기 드문 원로 목사였다. 고인은 2010년 소천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고인은 자신이 세운 오정현 목사로 인해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고인은 생전에 제자훈련을 특히 강조했었다. 그러나 현재 담임목사의 논문표절 및 공금횡령 의혹, 교인자격을 제한하는 내용의 정관개정 등 이 교회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사태는 그간 자랑으로 내세웠던 제자훈련의 실효성을 의심케 만들고 있다.
이동원 목사와 홍정길 목사는 일간지 광고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인해 질타 당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란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던 시점에 한 일간지에 “문 총리 후보의 역사관은 식민사관이 아니라 성경적 민족사관이다”라는 성명이 실렸고, 두 목사의 이름은 성명 지지자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원로’ 목회자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원로들의 수난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원로 중의 원로라고 할 故 한경직 목사는 청빈함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생전에 남긴 친일-친정부적 행보는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다. 故 한경직 목사가 예장 통합을 대표했다면 충현교회 故 김창인 목사는 예장 합동의 대표 주자였다. 그는 아들 김성관 목사에게 교회를 물려줘 교회세습의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소천하기에 앞서 세습이 잘못된 일이었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김성관 목사는 충현교회 성도들이 고인의 빈소를 찾는 것조차 막았다.
이름난 원로 목사들, 여론의 빈축 한 몸에
현재 왕성히 활동하는 ‘큰 목사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생존한 원로 가운데 으뜸은 단연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일 것이다. 그는 100억 대 배임 혐의가 확인돼 검찰 조사를 받는가 하면, 지난 6.4 지방선거 당시 집권여당의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후보에게 안수기도를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한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런데 이런 구설수는 이어질 사건에 비하면 미풍 정도에 불과했다. 최근 오랫동안 김 목사를 보좌하며 이 교회 재정장로로 시무한 박 모 장로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고, 김 목사가 여기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외에도 김홍도 목사, 길자연 목사 등등 이름난 원로 목사들도 세상으로부터 곱지 않은 눈초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원로들이 잘못된 역할 모델을 만들어 놓은 탓일까? 논문표절로 물의를 빚은 오정현 목사나 성범죄를 저지르고 아무런 회개 없이 홍대새교회를 개척한 전병욱 목사처럼 영성보다 사업수완이 뛰어난 목회자들이 한국교회의 차세대 주자로 거론되는 실정이다.
물론 원로들이 다 이 지경은 아닐 것이다. 평생을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가난한 자, 약한 자, 억눌린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부도덕한 권력에 맞선 원로 목회자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는 비리로 잔뼈가 굵은 원로들이 판을 장악했다.
<개미>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단편 「황혼의 반란」에서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이라고 적는다. 이 문장은 노인들이 오랜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지혜와 경험을 축적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 교회의 원로들이 양서 가득한 도서관일까?”하는 질문에 이르면 답은 썩 긍정적이지 않다.
신앙의 모범이 되고, 그래서 후배 목회자는 물론, 세상 사람들을 일깨우고 사회에 경종을 울려 줄 원로를 갖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