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어른답게 아이는 아이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꼭 그렇지만 않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 흉내를 내는가 하면 가끔씩은 어른 조차 따라하기 힘든 비속어, 은어들을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내뱉기도 한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아이들이 하루의 상당 시간을 소비하는 TV 프로그램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방송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하루 상당 시간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아이들이 봐야 할 어린이 프로그램 보다 성인 프로그램을 더 찾으니 어른들의 문화를 어설프게 흉내내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해 줄 어린이 프로그램이 어린이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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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YMCA 2층 친교실에선 이런 어린이 프로그램의 발전을 위한 정책 포럼을 열었다. 포럼을 주최한 서울 YMCA측은 “어린이 프로그램 자체가 소홀히 다루어져서 궁극적으로는 고사할 위험에까지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상황 인식에 바탕을 두고 어린이 대상 방송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위한 연구 사업을 진행해 왔다”고 했다.
아이들 584명을 대상으로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서울 YMCA측에 따르면 아이들 중 ‘유익하다’고 응답한 이들은 22.9%(134)에 불과했고, 그에 비해 ‘그저 그렇다’가 50.3%(294명), ‘유익하지 않다’와 ‘전혀 유익하지 않다’는 등의 응답이 각각 11.1%(65명), 7.4%(43명)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어린이 TV 프로그램 제작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중에는 ‘폭력적으로 만들지 마세요’(7명) ‘잔인하게 만들지 말아주세요’(5명)라는 아이들의 응답도 있어 성인 프로그램 뿐 아니라 어린이 프로그램에도 폭력성이 있음을 반증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어린이 프로그램의 수준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서울 YMCA측이 제작진과 직접 인터뷰한 결과 제작진이 체감하는 우리나라 어린이 프로그램 수준은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김기태 교수 ⓒ베리타스 |
모 PD는 “기획력과 제작은 뛰어나지만 정책은 아주 바닥이다”라고 했고, 또 다른 PD는 “아기자기 하고, 색감은 좋으나 디테일이 떨어지기에 완성도도 좀 떨어지지 않나”고 답했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작가는 “상위권이라 볼 수는 없는 듯, 중간 혹은 중하위권 수준이 아닐까 싶다”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제작자로서 힘든 점을 묻는 설문조사에선 “어린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너무 낮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인원과 예산 지원이 부족하다” “출연하는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어렵다”라고 제작진은 답했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본래 취지에 맞게 그리고 건전하게 발전시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이날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김기태 교수(호남대 신문방송학과)는 ▲ 각 지상파 방송에 어린이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 필요 ▲ 제작과 심의 어린이 전문적 시각에서 다룰 것 ▲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린이 수상제도를 확대하는 것 등을 제언했다.
김기태 교수는 그밖에도 “어린이 프로그램에 금지되어야 하는 폭력성과 선정성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판단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