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기독교다. 기독교계가 다시 한 번 세월호 참사 물타기의 선봉에 섰다. 먼저 지난 일부터 되짚어보자. 8월 첫날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08일째 되는 날이다. 그동안의 시간 동안 뚜렷하게 달라진 건 없다. 오히려 이번 참사로 소중한 아이와 가족을 잃은 희생자 유가족들의 상처만 깊어졌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인 지난 7월24일(목),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는 추모예배가 열렸다. 이 자리엔 희생자 유가족 가운데 한 명인 박은희 씨가 나와 그동안의 경과를 이야기했다. 박 씨는 차분한 어조로 사람들이 유가족들의 상처를 후벼 파고 그것도 모자라 소금을 뿌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엄청난 생명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이 사회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심경을 밝혔다.
유감스럽게도 기독교계는 유가족들의 상처를 후벼 판 주역이었다. 조광작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과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등이 주범이었다. 새삼 그들의 망발을 다시 입에 올리고 싶지 않다. 유가족들의 상한 마음을 또 다시 들춰내고 싶지 않은데다 교계의 대응 역시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망언이 불거지자 기독교계는 이들의 발언을 강력히 성토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되려 참사 발생 100일을 경과하면서 교계 인사들의 무딘 감수성은 점점 교묘해 지는 양상이다.
지난 달 28일(월) 국내 유력일간지엔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의 기고문이 실렸다. 김 교수는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갑시다>라는 제하의 기고문에서 “간곡하게 한 말씀 드리자면 이제 4월의 진도 앞바다, 눈물의 팽목항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애써 돌리기 바란다”고 적었다.
이어 인천순복음교회 최성규 목사는 지난 달 30일(수) 모 일간지에 광고를 냈다. 최 목사는 이 광고에서 “진상조사는 정부에 맡기자. 특별법 제정은 국회에 맡기자, 책임자 처벌은 사법부에 맡기자, 진도 체육관에서 나오고 팽목항에서도 나오고 단식 농성장에서도 서명 받는 것에서도 나와 달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희생자 가족이 아니라 희망의 가족이 돼 달라.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 참사 피해자가 아니라, 안전의 책임자가 돼달라”는 권면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 교수는 거물급 정치인인 동시에 약수동 신일교회 장로다. 한편 최 목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을 두루 역임한 바 있는 교계 중진이다. 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그만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막말의 교묘한 진화
두 사람의 권고는 얼핏 그럴싸해 보인다. 특히 김 교수는 기고문에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그 이전보다 더 나아지고 성숙해져야 한다 .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처럼 해서는 희망이 없다. 그들(희생자)에게 정말 더 큰 죄를 짓게 된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교회 장로인 원로 정치인과 교계 중진 목회자가 간과하는 점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이 일상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와 단식을 하고 특별법 입법 청원을 호소하며 길 가는 시민에게 서명을 받고 있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단 한 가지, 바로 ‘진실’이다. 이들은 희생자를 의사자로 지정해달라고 한 적도 없고, 살아남은 아이들의 대학 특례입학을 원하지도 않았다. 왜 아이들이 침몰하는 배에 갇혀 속절없이 생을 마감해야 했는지 그 이유만 알고 싶을 뿐이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 발생과 이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서해 페리호 침몰,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 등 이전에 벌어졌던 대형 참사의 패턴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가족들은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또 다시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다짐으로 세월호 특별법을 위해 곡기마저 끊은 것이다.
최 목사 주장대로 진상조사는 정부의 몫이고 특별법은 국회의 몫이며 책임자 처벌은 사법부의 몫이다. 또 김 장로의 권면대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남은 사람은 자신이 살아야 할 몫이 있기에 일상으로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형참사를 10년 주기로 경험했음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진상조사에 미온적이었고, 국회는 특별법 제정이 자신들이 해야 할 본연의 사명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으며, 사법부는 말단 책임자에게만 죄를 물었을 뿐 최고 결정권자들에겐 면죄부를 주는 데 급급했다. 그래서 유가족들이 돌아갈 일상이란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재난이 언제 또 다시 되풀이될까 가슴 졸이는 하루하루일 뿐이다.
이 대목에서 김 장로와 최 목사가 과연 대한민국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평범한 국민이 살아가는, 아니 살아내야 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세월호 참사로 아픔을 당한 유가족들은 이런 평범한 국민들이다. 이들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공감했다면 함부로 ‘진상조사는 정부 몫이다’,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식의 권고를 입에 올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권면은 듣기엔 좋아도 사실 교묘하게 포장된 막말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은 현장의 영성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에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태어났고, 가장 낮은 자들과 함께 하며 생을 보냈다. 그는 상한 자들의 마음을 위로했고, 병들어 신음하는 자의 병을 치유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목회자들과 고위직 장로들은 이런 영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직도 팽목항엔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며 고통 가운데 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을 말없이 섬기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들의 상처 입은 심령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저 귀에 솔깃한 말만 일삼는 교계 중진인사들이 자신의 지위나 체면은 일단 내려놓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만약 내면 깊은 곳에서 그 어떤 울림도 없다면 이들은 기독교인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