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착시현상을 경계하라

한국 교회, 세월호 참사는 관심 밖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장이 마련된 서울 광화문 광장은 말 그대로 북새통이다.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곡기를 끊은 희생자 유가족들이 중심에 있고, 좌우엔 종교인, 시민들이 연대의 표시로 동조 단식을 벌인다. 한편 자원 봉사자들은 광장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특별법 입법 청원 서명을 받는다.  

기독교인들이라고 이런 움직임에서 예외는 아니다. 단식에 동참하는가 하면 지나는 시민들에게 시원한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세월호 특별법 입법 촉구 서명을 독려하기도 한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국내 주류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 목회자들은 지난 8월7일(목) 오후 이곳에 모여 기도회를 열었다. 목회자들은 기도회를 통해 정치권을 향해 조속히 특별법을 제정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바로 뒤이어 기독교대한감리회 정의평화위원회,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예장대책위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사회위원회 등이 연합기도회를 열고 재차 특별법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사실 세월호 참사와 뒤이은 후속 처리는 2014년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그리고 기독교계는 참사 발생 직후부터 아픔당한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왔다. 진도 지역 교회들은 한데 뭉쳐 팽목항에 자원봉사 부스를 차렸고, 젊은 신학생들은 정치권을 각성시키기 위해 삭발하고 곡기를 끊는가 하면, 체포를 감수하는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기독교 시민단체들은 연합체를 구성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동시에 촛불기도회를 열어 특별법에 미온적인 정치권을 일깨우려 노력 중이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볼 때, 기독교계는 제 위치에서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혹시 착시 현상은 아닐까?   
한국 교회, 집단행동만 일삼아
지난 7일 있었던 연합기도회에 참석한 목회자와 신도수는 고작 백 명 남짓이었다. 뒤이은 기도회 참가자 역시 비슷한 규모였다. 또 사고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팽목항을 지키는 기독교인들도 재정 등 갖가지 난관 속에 힘겹게 부스를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주류 기독교계의 태도는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당시 교계는 작심하고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목회자들은 교회의 크기와 관계없이 장로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어느 목회자는 장로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제명될 것이란 해괴한 논리를 펴기도 했다. 교계가 특정 인사를 지목해 대통령 만들기에 조직적으로 나선 것이다. 
교계의 조직적인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교계는 2012년 팝가수 레이디 가가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 또 한 번 세 과시에 나섰다. 보수 교단의 주도로 공연에 반대하는 선전 활동이 이뤄졌다. 이들은 그녀의 공연이 ‘동성애 청정국’인 한국의 이미지를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보수교단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은 “동성애를 노골적으로 미화하고 엽기적 퍼포먼스를 펼치며 기독교를 비하하는 미국 팝가수 레이디 가가의 이번 내한공연은 즉각 취소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조직적인 행동의 징후가 감지됐다. 참사 이후 온라인에서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이 벌어졌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사이에선 노란 리본 달기가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어서 이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단문 메시지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일부 목회자들은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계정에 ‘사탄적 주술’을 설명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노란 리본 반대 소동은 조광작 전 한기총 공동부회장이나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의 망언에 비교하면 애교(?)에 불과했다. 그러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기보다, 눈에 거슬리는 무엇인가를 문제 삼아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일삼는 기독교의 민낯을 드러낸 부끄러운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현 시국을 보자.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노력이 지지부진하고, 여야 정치권은 유족들의 요구를 무시한 특별법에 졸속 합의했다. 이에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기장)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잇달아 성명을 내고 이를 강력히 성토하고 나섰다. 예장 통합 목회자들은 거리로 나와 기도회를 가졌고, 신학생들 몇몇은 합의를 주도한 야당 지도자의 지역구 사무실을 점거했다. 
현재 한국 교회는 대통령을 배출할 만큼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영향력이 온전히 사용된 적은 없었다. 그보다 만만해 보이는 대상을 정 조준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죄하는 데 앞장섰거나 집단 이익 추구에 골몰했다. 레이디 가가 내한공연 반대가 전자라면 장로 대통령 옹립은 후자의 사례다. 더욱이, 교회의 집단행동은 파국으로 귀결됐다. 장로 대통령은 이 나라의 젖줄인 강을 병들게 했고, 사회엔 부정부패와 꼼수를 이식했다. 세월호 참사도 따지고 보면 장로 대통령이 선박 관련 규제를 완화한 데서 비극이 싹트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선 기독교인들의 헌신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이들은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내고 있고, 그래서 이들의 존재는 너무도 소중하다. 문제는 교회가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을 소유했음에도 이웃의 아픔을 위로하고, 어루만져주는 일에 여전히 소홀하다는 사실, 그리고 여전히 세 과시에 전전긍긍한다는 사실이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10일(일) 사랑의교회를 찾아가 오정현 목사에게 덕담을 아끼지 않은 것은 좋은 예이다. 김 목사는 오 목사를 향해 “명성교회보다 사랑의교회가 더 잘 지었다. 나보다 오 목사가 더 목회 잘 한다”고 추켜세웠고, 이내 두 사람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이 대목은 여전히 힘깨나 쓴다는 대형 교회의 관심이 세 과시에 있음을 여실히 폭로했다. 만약 두 사람이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규명 및 특별법 입법을 강력히 요구했다면 정치권도 큰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참사를 당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후벼 파는데 앞장섰다.
현장의 목소리는 절박하기 그지없다. 예장 목회자 기도회 직후 이 자리에 참석한 한 목회자는 자신의 SNS에 “(기도회에) 100명 조금 넘게 참석했다. 목회자만 세면 100명 조금 안 돼 보인다. 서울, 인천, 경기 지역에 우리 교단 목사가 몇 명인데. 다들 교회일이 바쁘구나”고 적었다. 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딸을 잃은 어머니도 “사고를 당한 직후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단체로 방문한 이들 가운데 기독교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유가족은 점점 지쳐간다. 어느 유가족은 “우리가 다 죽기 바라는 것 같다”는 심경을 밝혔다. 그렇지 않아도 상처 입고 아파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교회가 선한 힘을 사용해 주기를 간절히 원한다. 동시에 부디 현장의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큰 물줄기를 이뤄 잘못된 방향으로 나왔던 한국 교회를 제자리로 돌려놓아 주기를 또한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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