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종문 단장 “나에게 천지창조는 이것, 우주는…”

필그림앙상블을 만나다

교회 음악에 CCM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만 누리기엔 음악의 세계가 너무 광활하다.

클래식에 팝을 더해 연주하는 필그림앙상블을 만났다. 18일 인천 도화동 언덕에 있는 연습실에서 김종문 단장과 앙상블을 창단한 김신형 집사를 만나 그들의 음악세계를 들었다.

▲ 왼쪽 김신형 집사, 오른쪽 김종문 단장. 김신형 집사가 “우리는 꿈을 먹고 살아요”라고 하자 단장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서진 기자
김신형 집사는 인터뷰 내내 ‘나같이 별볼일 없는 사람’이란 말을 추임새 넣듯 반복했다. 그는 SBS교향악단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다. 동석한 김종문 단장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사이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 김신형 집사님, 필그림앙상블은 어떤 계기로 창단하셨나요

“91년 겨울이었어요. 모태신앙이지만 초신자에 가까웠던 전 당시 방황했는데, 어느날 무엇인가에 이끌려 집 앞 개척교회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 날 목사님의 메세지, 모든 찬양이 제 이야기로 들리면서 너무 큰 은혜를 받은 겁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채 철야기도를 시작했어요.

40일 하고 나니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그 때 몸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결핵이라고 했어요. 은혜에 충만해 있다가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그런데 사람이 아프면 보는 눈이 바뀌더라구요. 가지지 못했던 것을 불평하던 마음이 없어지고, 갑자기 내가 가진 것들이 보이면서 무한감사의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제게 말했던 음악선교 그룹을 만들어보라는 제안이 다시 생각났어요.

그 길로 교회 피아노 반주자에게 같이 해보자고 의사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세계 비전을 놓고 기도하던 중’이었다며 적극적으로 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길가다가 우연히 첼로하는 선배를 만났는데 제안을 했더니 ‘머리가 하얘질때까지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 91년에 교회에 가서 은혜받고 92년에 창단된 거면, 일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거네요 

“그렇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바로 이런 거구나! 했습니다.

우린 몇년간 전국 개척교회들을 다니며 공연 했어요. 그 때 가는 교회마다 우리에게 너무나 큰 사랑을 주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사람들을 통해 부어주신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새로운 기도제목이 생겼는데, 우리 단원들이 하도 전국을 다니면서 고생을 하니까 멋진 무대에 서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명장이 필요하잖아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멋진 명장을 만나게 해주세요!'”

그래서 만난 명장이 지금의 김종문 단장이다. 김신형 집사가 SBS 관현악단에서 일할 당시 김종문 단장은 SBS 음악 프로듀서였는데 업무상 여러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본 김 단장의 수준이 환상이었다고 한다. 못다루는 악기가 없고 몇명이 해야할 분량을 혼자 다 했으니. 그 때부터 김신형 집사 기도제목은 "저분을 주세요"로 바뀌었다.

김 집사는 단장을 ‘명장’이라고 칭했다. 실제로 단장은 2002 FIFA 월드컵 전야제 음악, 2002 부산아시안게임 오프닝 음악, 2003 대구 유니버시아드 개막식 및 폐막식 음악, 2014 인천아시안게임 주제가 이 모두를 작곡한 실력파다.

- 김종문 단장님, 필그림 앙상블의 무엇을 보고 합류하셨나요.

“사실 클래식은 저와 인연이 없는 분야였고, 필그림앙상블 실력이 어느정도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한 전도사님에게 물어보니 '특색이 있다'고 했어요. 우선 이들의 음악을 파악해야 하기에 8개월 동안 같이 다니면서 이들 내면에 있는 세계, 색깔, 특징을 파악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태국 선교사님으로부터 공연요청이 왔습니다. 자비로 오라고 하는데.. 부담이 됐지만 당시 멤버들이 너무 가고싶어 해 제 카드로 티켓을 끊었어요. 공연 장소는 환상적이었습니다. 청명한 하늘에 밝은 달, 대나무를 쪼개 만든 무대와 대나무로 만든 마이크 대, 무대 뒤로는 강이 흘렀고 앞에 솟아있는 언덕에는 1천명의 현지인들이 앉아있고.. 그런데 산속에서만 살아온 이 현지인들이 우리말도 모르는데 우리 찬양과 연주를 이해할까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이들은 태국 외에도 미국, 중국 등을 다니며 연주회를 가졌다. 사진은 중국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해주며 그 당시 상황을 웃으며 재연하는 모습. 중국의 한 성에서 우연히 악기사를 보게 되었고, 악기를 보니 반가워 가게 안으로 들어가 즉흥적으로 연주했다. 연주에 인파가 몰리는 것을 악기사 주인이 보고, 이들이 연주하고 있는 악기를 들어 길가로 옮겼다. 악기가 옮겨지는 순간에도 연주는 계속되었다. 이날 길거리 깜짝 음악회는 40분간 이어졌다고 한다. ⓒ이서진 기자

- 태국 소수민족 선교지였나요?

“네. 그리고 그 선교사님은 10년간 온 산을 다니며 40개가 넘는 교회를 개척하고 1천명이 넘는 현지인을 전도하신 분이셨어요. 고생을 정말 많이 하신 분이셨는데, 깜짝놀랄 말씀을 하셨습니다. 몸도 아프고 힘이 들어 우리 공연을 끝으로 사역을 접으려고 했다고. 그런데 우리 공연을 보고 힘을 얻어 '앞으로 10년은 끄떡없겠다'라고.

아,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구나! 저는 여기서 하나님의 부름심을 깨달았습니다. 이분이 10년을 더하시면 1천명이 또 전도되는 거잖아요? 음악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선교는 이런거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환경을 보지 않아요. 여기 있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을 생각합니다.”

- 기독교 음반 대부분이 CCM인데, 클래식 기독교 음악 시장성에 대한 걱정은 안되셨나요?

(김종문 단장)“음악인들이 어려운거 아시죠? 사실 음악으로 먹고 산다는 것 자체가 예술입니다.

우리는 전세계 팝 시장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몇년 전 미국에 갔을 때 파바로티의 피아니스트를 만났는데 그에게 우리 음악을 들려줬습니다. 줄리어드 음대 교수였던 그는 5개의 에이전시를 소개해주겠다고 했어요.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그건 우리 몫이지요.

현재 준비하고 있는 앨범이 있습니다. 창작곡으로 할거구요, 연주음악도 있고 보컬도 있을 겁니다.”

- 필그림 앙상블의 음악이란?

(김종문 단장)“클래식에 대중성을 가미한 음악입니다.

클래식은 알고보면 가장 보편적인 악기입니다. 클래식에 관심없는 사람도 TV 배경음악에서, 지하철 안내방송에서, 핸드폰 벨소리에서 많이들어 익숙하잖아요. 그러고보면 가장 세계적인 악기가 클래식 악기입니다.

우리는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에 기타도 함께 연주하니 대중성이 있습니다. 이 대중적인 클래식으로 찬양을 한다면, 사람들은 가장 편한안 음악 속에서 복음을 듣게 되는 거에요.”

음악은 백언(百言)보다 일문(一聞)이다. 우리는 거실에서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옮겨 김종문 단장이 작곡한 음악 중 2002 부산아시안게임 오프닝 음악과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 쓰일 음악을 들었다. 범인의 머리에서 나오기 힘든 소리의 전개를 들으며, 이같은 영감을 어떻게 얻는지 궁금했다.

▲김종문 단장은 모든 민족에게 각각의 민족에 맞는 곡을 만들어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사진은 김 단장이 세계 지도 앞에서 중국의 56개 민족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그의 곡 중 '실크로드'는 이같은 그의 꿈을 구체화시킨 작품이다. ⓒ이서진 기자
- 영성관리를 어떻게 하시나요?

그러나 이 질문엔 예상치 못했던 대답들이 돌아왔다.

(김종문 단장)“가끔 성경몇장 읽기 기도몇분 하기 이런 것으로 음악인들의 영성을 평가(?)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성경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라는 말씀이 있죠. 우리가 음악을 그렇게 합니다. 전문가들이 하는 예술 영역은 하나님 없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우리에게 가장 순수한 것은 음악이고,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발견합니다.

김신형 집사가 덧붙였다. “우리에게 있어 영적 훈련은 음악이예요. 최고의 하나님께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하는데, 그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제일 잘해야 하잖아요. 성경연구가에겐 성경연구가 최고고 우리에게는 음악이 최선입니다”

김종문 단장이 갑자기 아리랑을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군지 물어왔다.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대답했다.  

“신앙은 증명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닌데, 도마처럼 보고 만져봐야 믿는 사람들도 있죠. 천지창조를 예로 들어도 그래요. 말씀으로 7일만에 창조하셨다, 이것을 무조건 믿는 것도 사실 힘들죠. 그래서 체험이 필요해요

음악을 연구하다 문득 이런 물음이 들었습니다. '아리랑은 누가 만들었을까?.' 제가 요즘 세계 민족음악들을 조사하는데, 민족마다 각각의 전통음악이 있습니다. 이런걸 누가 다 만들었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음악도 창조하셨어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음악은 있는거잖아요. 원래부터 있는 그 음악은, 수련을 쌓아야 들리고 음악적 감각이 형성되어야 꺼낼 수 있습니다. 그것을 꺼낼 수 있는 위치(경지)에 가면 꺼낼 수 있는 것이고, 작곡가가 바로 이 꺼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한테 천지창조는 바로 이것입니다. 나한테 우주는 음악이고요.”

음악이 사람의 옷을 입고 자기소개를 한다면 이와 비슷하게 말하지 않을까. 김종문 단장은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음악을 독학한 그의 이력은  지금 천재성을 더 부각시키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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