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보편성과 공공성 변증
86세로 별세한 현대신학의 거장을 추념하며
- 목차 -
I. 희망의 신학자 넘어서 보편성과 공공성의 신학자
II. 보편사를 신학의 지평으로 제시
1) 계시는 역사로서 주어진다 2) 역사 의미는 역사 종국에서 드러난다
3) 신학의 두 가지 축: 보편사와 교회
III. 역사적 예수에서 출발하는 기독론
1) 역사적 예수의 출현에서 시작 예수 부활사건의 역사적 증명
2) 예수 - 포괄적 대속자
IV. 보편 학문으로서 신학 정립 시도
V. 미래 우위의 사상가
VI. 오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증언
VII. 신학과 자연과학과의 대화
1) 과학의 장(場)을 신학으로 이끌어냄
2) 창발적 진화론
VIII. 하나님 통치 윤리 제시
IX. 이성의 신학자
X. 보수적 사상가: 전통적 교리 보존과 교회의 예전 중시
1) 지성적 회심의 경험: 빛의 체험
2) 전통교회의 규범과 예전의 중요성 강조
3) 세계의 평화는 오시는 하나님 통치에서 실현
4) 종말론적 이원성 보존: 보편구원 아닌 구원과 심판 강조.
맺음말
머리말
▲복음주의 신학자 김영한 박사. ⓒ베리타스 DB |
지난 2014년 9월 5일 현대신학의 거장인 독일 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Wolfhart Pannenberg)가 소천했다. 판넨베르그는 1928년 독일 발트해 연안인 스테틴(Stettin)에서 세관원의 아들로 출생하여, 동베를린의 훔볼트대와 괴팅겐대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950년 바젤에 내려가 당시 신학계를 주도한 칼 바르트 밑에서 ‘교회교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1951년 하이델베르그대로 옮겨가 구약학자 폰 라드와 조직신학자 페터 브룬너, 에드문드 슈링크의 지도 아래 박사과정생과 교수자격후보생으로 연구하였다. 그는 1955년에 교수자격을 얻어 1958년부터 3년간 부퍼탈교회대에서 몰트만과 함께 교수로 일했고 마인츠대에서 7년간(1961-1968) 가르쳤다. 1968년부터는 뮌헨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1994년 퇴임할 때까지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천주교 신학이 주도하는 뮌헨대 신학부에서 개신교 신학부를 만들어 튀빙겐의 몰트만과 같이 현대신학의 쌍벽을 이룬 신학의 거장으로서 바르트의 ‘말씀 신학’ 이후의 현대신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의 선의의 라이벌이요 두 살 위인 몰트만이 아직도 건강이 좋고 한국에 10명 이상의 박사 문하생을 길러내어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을 오가며 소망의 신학 활동을 펼치는 것에 비하여 그가 세상을 뜬 소식을 접하니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그는 인간적으로 까다로운 성격 탓에 한국인 제자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몰트만의 인기가 높지만 본국 독일에서 그는 윙엘과 더불어 독창적인 신학자로서 해외보다는 더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판넨베르그의 보편사 신학은 영미권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2001년 11월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창조와 진화, 종교와 과학, 기독교와 이슬람 등 현대 신학의 쟁점을 정면으로 다루며 신학이 다른 학문과 통합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도전을 던졌다.
그는 86년의 생을 향유함으로써 장수한 것이긴 하나 필자가 생각한 것보다는 일찍 별세한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그의 신학을 한국에 소개함에 있어서 아마도 1977년 여름에 필자가 독일에서 귀국한 후에 장신대와 숭실대의 <현대신학> 강좌에서 독일 현대신학자들 가운데 판넨베르그를 먼저 소개하고 1980년대에는 학술지에 글도 쓴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1990년대 김영선 교수(현재 협성대 재직)와 신현수 교수(현재 평택대 재직)가 판넨베르그 신학사상 연구로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안다. 정통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필자는 판넨베르그의 신학 사상에 깊이 매료되지는 않았으나 전공 영역이라 그의 사상의 독창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필자는 근 40년 전인 1970-80년대 그가 현대신학을 주도했던 불트만 중심의 실존론적 신학과 바르트의 ‘말씀 신학’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역사를 기독교 신학의 지평으로 삼음으로써 현대 신학에 보인 하나의 새로운 독창성을 소개했던 것이다.
I. 희망의 신학자라기보다는 보편성 내지 공공성의 신학자
『국민일보』 미션판(신상목, “현대 신학의 거장, 판넨베르크 별세,” 2014.09.11.)이나 『기독일보』가 보도(이동윤, “독일 대표적 ‘희망 신학자’ 판넨베르크 별세,” 2014.09.11.)한 바 같이 판넨베르그를 몰트만의 소망 신학의 범주 안에 넣어서 그를 소망의 신학자라고 한다면 당사자인 그는 불편해 할 것이다. “소망”이란 용어는 철학자 가운데는 무신론자 블로흐, 신학자 가운데는 몰트만 사상의 주도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루터교의 보수적 성향을 가진 판넨베르그는 개혁교회의 진보적 성향을 가진 몰트만의 소망 개념이 지니고 있는 ‘현실을 변혁시키는 급진적 내재성의 성향’에 대하여 거리를 두고 있으며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판넨베르그에게 소망이란 그가 강조하는 ‘다가오는 미래의 힘인 하나님’의 초월성에 동반하는 개념이며, 보편사의 지평 속에서 다가오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존재의 초월성과 보편성을 지시한다. 신학은 이러한 하나님 존재의 보편성을 보편적 이성의 관점에서 이 세상의 사실의 언어로 증언하는 것이다. 여기에 신학의 공공성이라는 학문적 성격이 있다고 본다. 판넨베르그는 인간의 모든 제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한시적 기능을 하며 교회는 세상의 희망인 하나님 나라의 전조(前兆)라는 것을 변증하고자 한다(Pannenberg, The Apostle’s Creed in the Light of Today’s Questions, trans. Margaret Kohn, 1972, 152-55).
판넨베르그는 불트만을 비롯한 내적 회심을 강조하는 실존적 경건에 신앙의 근거를 두는 실존주의 학파의 시도나 계시를 보편사가 아닌 원역사(Urgeschichte)라는 안전한 항구에 정박시키려는 바르트 학파의 시도에 반대하면서 기독교 신앙의 근거를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에 근거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역사적 계시에 대한 접근이란 맹목적 결단이 아니라 지성적 통찰이며 그리하여 기독교 신앙이 오늘날 세상에서 보편성과 공공성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본다. 신학적 주장들은 그것들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실재에 대한 엄격한 비판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학적 진리는 본질적으로 역사적인 것이며,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인 것(Pannenberg, “What is Truth?” in Basic Question 2: 1-27)이라고 하였다. 역사의 과정에서는 기독교 신앙이란 잠정적인 것이다. 역사의 종말에 가서야 하나님의 신성이 만민에게 비로소 보편적으로 공개된다. 그러므로 미래만이 궁극적 진리의 초점이라고 본다.
II. 보편사를 신학의 지평으로 제시
1) 계시는 역사로서 주어진다
판넨베르그는 하이델베르그 연구생 시절 수년 동안 계시의 본질에 대한 그의 사상을 형성했다. 그는 바르트의 구속사 개념이 사실(史實)적 지식과 계시(啓示)적 지식 사이의 괴리를 가진 협착성에 빠진 것에 불만을 품고 계시의 본질 그리고 신앙의 역사적 근거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계시 사상은 판넨베르크 서클로 알려진 연구 그룹에서 지속적인 토론을 통해 형성된 것이었다. 이러한 그룹의 연구결과는 1961년의 소책자 『역사로서의 계시』(Offenbarung als Geschichte)라는 소책자로 출간되었다. 판넨베르그는 루터신학자 엘러트(Werner Elert)와 알타우스(Paul Althaus)의 사후(死後) 독일 안에서 주도적으로 학파를 형성할 만한 인물을 가지지 못했던 신학적 보수주의 진영의 신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판넨베르그는 폰 호프만(Johannes von Hofmann)에 의해 대표되는 엘랑겐 학파(Erlangener Schule)의 구속사 신학이나 쿨만(Oscar Cullmann)에 의해 새롭게 제기된 구속사 신학이 시도하는 신앙과 이성의 분리, 계시개념의 성령론적 제한성에 반대해서 보편사(普遍史, Universalgeschichte)를 기독교 계시 개념의 지평으로 주제화 한다. 그는 구약성서의 계시적 역사 개념과 헤겔의 이성적 역사 개념을 그의 보편역사 기획 속에서 조화시키려 한다.
판넨베르그는 계시가 역사 과정의 자체 내에서 증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칼 바르트에게 영향을 받았으나 그는 바르트와는 달리 하나님의 계시 역사는 이 세계과정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피조세계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했다. 하나님의 계시는 직접 오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오며, 역사의 종국에 가서야 그 완전한 계시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 또한 이 역사적 계시는 보편적이어서 보는 눈을 가진 누구에게나 알 수 있도록 열려진 것이라고 하였다. 모든 종류의 세속적 경험 안에서 신앙적 암시를 끌어내고자 한 것이다(Pannenberg,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Mich.: Eerdmann, 1991], 18-19). 우리는 여기서 그의 신학 개념이 이성적 통찰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신학의 특수성을 수용하고 있다.
2) 역사 의미는 역사 종국에서 드러난다
판넨베르그의 보편사 개념은 구약성서의 전승사와 특히 묵시론적 역사이해에 의거한다. 묵시록의 역사 이해에는 이스라엘과 세상의 전 역사(全歷史)가 신적 행위의 전체로서 표상(表象)되어 있다. 신의 인식은 역사의 모든 사건이 완결된 후에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W. Pannenberg, Die Offenbarung Gottes in Jesus von Nazareth, 1963, Neuland III, Bd. 157). 역사(歷史)의 의미는 역사의 종말에서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판넨베르그는 유태교 묵시록이 이 보편사를 표상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역사 한 가운데서 아직도 도래치 아니한 역사 종말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여기에 해답의 열쇠를 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라고 판넨베르그는 말한다. 그에 의하면 예수의 복음선포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예기(豫期)였고, 그의 부활은 세상종말에 있어서 죽은 자의 부활의 선취(先取)이다. 신의 계시는 예수의 역사 속에서 최종적으로 일어났으나, 이미 완결된 것으로서 앞에 놓여 있지 않다. 예수의 역사는 그의 통치가 아직도 오고 있는 역사(歷史)로서의 하나님 계시로서 항상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3) 신학의 두 가지 축: 보편사와 교회
판넨베르그에 의하면 신학이란 두 가지 축(軸)을 가진다. 하나는 보편사라는 축이다. 이 축에서 신학은 인간 사상 전체 안에 그 지평을 갖는다. 역사적 이성에 상응하는 축이다. 또 하나는 교회라는 축이다. 신앙에 상응하는 축이다. 신학은 교회라는 동질적인 공동체,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명백하고 의도적인 신앙고백을 하면서 사는 신앙공동체 안에 그 지평을 갖는다(Richard John Neuahus, “Wolfhart Pannenberg: Profile of a Theologian” in Pannenberg, Theology and Kingdom of God, ed. Richard John Neuhaus [Philadelphia: Westminster, 1969], 이병섭 역, 『신학과 하나님의 나라』, 50). 판넨베르그는 그의 보편사 신학의 착상에서 양자, 역사와 계시, 역사적 이성과 신앙이라는 두 축을 종합하고자 한다.
III. 역사적 예수에서 출발하는 기독론
1) 역사적 예수의 출현에서 시작, 예수 부활사건의 역사적 증명
판넨베르그는 1960년대 당시 신학계를 지배한 불트만 학파와 바르트 학파에 의하여 역사적으로는 오리무중에 있는 역사적 예수를 복권하려고 시도하였다. 불트만 학파에 의하면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예수와는 괴리 속에 있으며, 바르트 학파에 있어서도 기독교 신앙은 사실적 역사와는 다른 차원의 초역사라는 항구 속에 도피해 있어서 역사적 예수와는 괴리가 있었다. 불트만에게 있어서 역사적 예수는 그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순수 사실(das blosse Faktum) 외에는 불가지적 인물이었고, 바르트는 역사적 예수의 처녀 탄생을 인정했으나 예수의 부활 사건은 신문기자가 사진기로 찍을 수 없는 초역사적 사건이라는 표명으로 역사 비평학의 비평을 비켜 나갔다. 그리하여 기독교 신앙은 실존주의 신학과 말씀의 신학에서 역사적 근거를 상실할 위험성 속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판넨베르그는 역사적 예수의 출현에서 그의 기독론을 시작한다.
판넨베르그는 그의 저서 『예수: 하나님과 인간』(Jesus: God and Man)에서 아래에서부터 출발하는 기독론을 전개한다. 그는 나사렛 예수의 생애에서부터 시작한다. 예수의 신성에서부터 출발하여 그의 인성에로 나아가는 바르트의 위로부터의 기독론과는 달리 역사적 예수의 출현과 초권능적 사역에서부터 출발하여 그의 신적 정체성으로 나아고자 한다. 예수의 지상적 출현은 하나님 통치의 도래에 관한 그의 메시지에 의해 규정된다. 지상적 예수는 복음을 선포하면서 신적 권위를 주장하였다(Pannenberg, Grundzüge der Christologie, 55-57). 그리고 역사적 예수의 숙명은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을 통하여 규정된다. 그는 부활을 그리스도의 신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
판넨베르그는 인간학적으로 의미있게 나타나는 부활에 대한 희망의 설명을 그의 보편사적 논증과 연결시킨다. 이 역사적 논증은 기독교적 부활절 전승에 대한 역사적인 해명에 의해 부활을 철저히 “사실적(史實的) 사건”(historisches Ereignis)으로 파악하고자 한다(Pannenberg, Grundzüge der Christologie, 95).
판넨베르그는 불트만이나 바르트와는 달리 예수의 죽음 후 현현, 그리고 빈 무덤 등에 대한 제자들의 체험들이 역사적으로 명백히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설명이 예수 부활을 바로 역사적 사실로서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판넨베르그는 불트만 학파가 시도하는 것처럼 부활신앙을 하나의 모험 감행으로 촉구하는 것을 거부한다.
1964년까지 판넨베르그는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확정적 사실로서 선포하려고 논증을 제시했다. 이러한 판넨베르그의 역사적 예수에 대한 복권은 1964년 튀빙겐의 그의 동료 몰트만이 역사적 예수의 부활 사건에서 기독교 신앙의 소망의 근거를 선언함으로써 1960년대 현대신학은 역사적 예수의 복권으로 이어졌다. 판넨베르그의 예수론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계시의 초점이다. 예수는 궁극적으로 역사의 종말에 놓여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예기(豫期, prolepsis)다.
2) 예수 - 포괄적 대속자
그러나 역사적 논구의 진행에 있어서 예수 부활의 역사성에 관한 증명은 주목할 만하게 억제된다. 부활절 전승의 역사성에 대한 증명은 완결되는 확실성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이 판넨베르그에게 점차 명백히 된다. 판넨베르그는 후기 조직신학의 맥락에서 그의 초기의 기독교론적 접근,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기독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판넨베르그는 조직신학에서 세계 통합의 원리로서 고전적인 신학개념인 로고스(Logos) 개념을 보편사 신학의 맥락에서 도입한다. 예수가 로고스라는 것은 우주적 추상적 원리로서가 아니라 역사로서의 세계질서를 반영한다. 말하자면, 예수는 인간 삶에서 이스라엘의 메시아이며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적합한 관계를 밝혀주는 분이다.
판넨베르그는 로고스 개념을 전개함에 있어서 바르트가 하는 것처럼 성육신 신학적으로 선재적 로고스와 인류의 연합이라는 관점에서 직접적으로 전개하지 않고 보편사 신학의 관점에서 본다. 예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전개한다. 말하자면, 예수 자신이 역사 속에 전개되어 있는 것처럼 예수와 성부와의 관계를 보고자 한다(Pannenberg, Jesus, God and Man, 324-49). 예수는 죽기까지 아버지에게 순종한 분으로서 영원한 아들이며, 로고스이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사명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이로서 예수는 하나님의 화해이다. 예수가 우리의 죽음의 상황을 자기에게 짊어지움으로써 우리의 상황을 바꾸었다는 점에서 그는 우리의 대속자이다. 판넨베르그는 그의 이러한 관점을 포괄적 대속(inclusive substitution)이라고 부른다(Pannenberg,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61).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가져온 새 생명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며, 우리의 유한성과 죽음을 넘어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기독론적 접근은 계시신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정통주의자로부터는 기독교 교의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사적인 접근은 판넨베르그 신학의 특징적 정향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 고전적 신학의 현대적 후예로서 평가받기도 한다(Grenz & Olson, 20th Century Theology, 신재구 역, 『20세기의 신학』, [IVP, 2005], 315).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