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보편성과 공공성 변증
86세로 별세한 현대신학의 거장에 대한 추념글
-목차-
VIII. 하나님 통치 윤리 제시
IX. 보편사적 이성의 신학자
X. 보수적 사상가: 전통적 교리 보존과 교회의 예전 중요시
1) 지성적 회심의 경험: 빛의 체험
2) 전통교회의 규범과 예전의 중요성 강조
3) 세계의 평화는 오시는 하나님 통치에서 실현
4) 종말론적 이원성 보존: 보편구원 아닌 구원과 심판 강조
XI. 판넨베르그 보편사 신학에 대한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의 오해
맺음말
VIII. 하나님 통치 윤리 제시
▲복음주의 신학자 김영한 박사 ⓒ베리타스 DB |
판넨베르그는 세계평화 실현을 위하여 하나님 통치의 윤리(Ethik der Gottesherrschaft)를 제시한다. 하나님 통치의 윤리는 정의와 평화와 자유를 특징으로 한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평화는 정의와 함께 세상 나라들의 지배형식을 대체하고자하는 하나님 통치의 가장 중요한 표징을 형성한다.” 인류사가 보여주듯이 부분 자유만을 만들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만이 온전한 평화를 가져오신다(Horst Georg Pöhlmann, Gottesdenker [Hamburg: Rowolt, 1984], 159-60).
판넨베르그는 “세계평화질서”(Weltfriedenordnung)를 요구한다. 그는 세계평화질서가 이 세상에서 궁극적 하나님의 평화왕국을 가져올 수는 없으나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선현(先顯)이라고 본다. 강대국을 포함하여 세상국가들을 평화로 행하도록 강제력을 가진 지고의 세계정부의 지위를 지닌 국제기구가 있다면 전쟁의 발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세계정부는 원자핵 시대의 난관으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러한 기구를 위하여 강대국이 그들의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것은 실현될 수 없다. 판넨베르그는 이러한 “국제적 중앙권력”(Internationale Zentralgewalt)이 힘의 남용을 막을 수 있을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유엔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며 유엔이나 WCC 등 인간이 만든 세계평화기구가 세계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국제기구는 “덜한 악”(das kleinere Übel) 이라고 본다. 이러한 기구의 주요과제란 군축(Rüstungsbeschränkung)이다. 그는 중부 유럽에서 핵을 폐기한 “원자무기 없는 지대”(atomwaffenfreie Zone)를 요구했다. 전쟁이란 도발하지 아니한 적의 공격에 대한 불가피적인 방어라는 특정한 상황 속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나, 그는 관례적인 전쟁이나 핵전쟁을 반대한다. 판넨베르그는 전통신학이 찬성한 정당한 전쟁에 대하여 반대한다. 한 개인의 생명은 하나님 앞에서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당한 전쟁이란 없으며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란 한계상황 속에서는 불가피하지만 항상 상대자를 제거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악이다. “적대자의 제거가 전쟁의 내적 법칙이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동기에서 ... 싸우는 자들조차도 이 내적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전쟁은 정당하지 못하다”(Pannenberg, Ethik und Ekklesiologie [Göttingen, 1974]). 하나님 통치의 윤리란 다가오는 하나님 통치를 소망으로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덜한 악’인 인간적인 기구를 통하여 상대적인 평화와 정의와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다.
IX. 보편사적 이성의 신학자
역사적 예수로 되돌아가는 데 있어서 판넨베르그와 루터교 보수신학자 알트하우스는 서로 일치하지만, 지식을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에 집중하는 판넨베르그의 입장은 신앙을 추구하는 지식(intellectus quaerens fidem)에 집중하는 알트하우스의 입장과 다르다. 판넨베르그는 예수 역사의 계시 성격이 예수의 출현과 그 당시 일어난 역사에 대한 지식을 통해 인식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서, 알트하우스는 신앙이 전제하는 일어난 역사에 대한 지식은 “아직도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지식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계시의 지식은 “신앙 자체와 함께 실현된다”(P. Althaus, “Offenbarung als Geschichte und Glaube, Bemerkungen zu Wolfahrt Pannenbergs Begriff der Offenbarung,” ThLZ 87 [1962]: 321ff., 325).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판넨베르그의 보편사 신학에 있어서 계시사와 세속사는 분리되지 않고 혼동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예수의 부활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는 크나큰 공헌이기는 하지만 몰트만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예수 부활은 역사적 지성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종말론적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는가?
판넨베르그의 보편사 사유는 한편으로는 예수 부활 사건이 역사적 지성으로는 천착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편으로 여전히 역사적 검증이라는 지식우위적 통찰의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사유는 보편사와 계시사를 동일시하고, 계시를 역사종말에 대한 선취행위로 보도록 하고 있다. 또한 아래로부터의 기독론 사고는 예수의 성육신을 하나의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가 신의 아들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계시보다는 역사적 지성을 우위에 두려는 그의 이성우위적 사고의 한계가 있다.
역사 이성을 강조하는 판넨베르그의 신학은 성경을 신학의 전제로 보기보다는 종교적 전통의 원전으로 본다. 그는 역사 비평학이 도입한 성경의 원문 비평 때문에 영감론이 파괴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바르트까지 옹호한 성경의 영감론을 비판한 그의 입장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성적 통찰을 중요시하는 그의 보편사 신학의 사색은 믿음의 과정에 성령의 조명의 역할, 즉 영감으로 씌어진 말씀이 부가될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판넨베르그는 계시의 인식을 위하여 초자연적 성령의 역사가 사건 설명에 부가되어야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의미는 영감이 아닌 사실 자체에서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김영한, 『바르트에서 몰트만까지』 [2003], 396-401). 그러나 후반의 『조직신학』 3권에 와서는 계시에 대한 역사적 지식의 균열을 언급함으로써 계시 인식의 과정에서 이성의 통찰을 넘어서는 신비적 측면을 열어놓고 있다. 이러한 이성적 신학을 전개하는 그의 신학의 의도는 시종일관 기독교 진리의 합리성이 입증될 수 없다면 신앙의 접근성은 어려워질 것이라는 그의 기독교 진리의 공공성 신념에 입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기독교 신앙을 개인적이며 사적인 세계로 축소시키려는 개인적 경건주의를 극복하고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신앙의 경험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X. 보수적 사상가: 전통적 교리 보존과 교회의 예전 중요시
현대신학자로서 판넨베르그는 기독교 진리의 합리성과 공공성을 변호함에 있어서 전통과 교회의 예전을 중요시하려 했다. 그는 비판자들과는 달리 그 자신의 지성적 회심의 체험이 있으며, 전통적 교리와 규범을 중요시했으며, 특히 종말론에 있어서 악인의 심판을 인정함으로써 보편구원론의 견해를 수용하지 아니하였다.
1) 지성적 회심의 경험: 빛의 체험
판넨베르그가 청소년 시절 16살 되던 해 어느 겨울 오후 해질 무렵 숲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던 중 그가 경험한 한줄기 빛은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회자(膾炙)된다. 당시 그는 멀리서 비치는 한 빛에 이끌리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는데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음에도 자신의 삶을 요구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했다. 강렬한 종교적인 경험은 나중에 ‘빛의 경험’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자와 종교 사상가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16세 때 도서관에서 니체의 책과 만나면서 기독교의 영향 때문에 세계가 비참해졌다고 확신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고백교회 신자였던 고등학교 문학 선생님이 판넨베르그에게 기독교에 대해 연구하라고 권했다. 무신론자 니체와는 다른 기독교를 발견하면서 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 기독교가 최고의 철학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지적 회심”을 하게 된 판넨베르그는 기독교가 현재 최선의 종교적인 선택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를 계기로 그는 개신교 신학자가 됐다.
칼 바르트의 저작을 통해 영향을 받은 그는 1950년부터 바젤에서 바르트에게서 직접 수학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바르트와는 달리 하나님의 계시 역사는 이 세계와 상반된 것이 아니라 피조 세계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모든 종류의 세속적 경험 안에서도 신앙적 암시를 주는 것들을 끌어내고자 했다. 그는 올바른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며 따라서 교회는 언제나 사회가 하나님 나라 삶의 원리를 실천해 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비판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그의 의도를 그의 조직신학에서 구현하고자 하였다.
2) 전통교회의 규범과 예전의 중요성 강조
판넨베르그는 몰트만처럼 직접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한 경험은 없으나 그의 신학 사상은 보수적이며 교회의 전통과 예전적 삶에 근본적으로 정위되고 있다. 오늘날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 영국의 존 로빈슨이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고 있는 신의 의미성을 평가절하하고, 미국의 폴 틸리히가 교회가 말하는 경건과는 다른 세속적인 범종교적 경건성을 말하고, 미국의 조셉 플레처가 전통적 교회의 규범윤리와는 다른 상황윤리를 말하는 것과는 달리, 판넨베르그는 루터교적 정통주의의 교리와 예전을 근본에 있어서 수용하는 보수성을 지니고 있다.
판넨베르그는 그만큼 교회의 예전적 삶을 중요시한다. 교회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고 증언하는 지상의 임시적 공동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도래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경건과 생활양식을 동반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그는 종말론적 윤리에 입각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부정하고 현실에 주어진 체제를 전적으로 거부하고 뒤엎고자 시도한 해방신학에 대하여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는 보수주의자였다.
3) 세계의 평화는 오시는 하나님 통치에서 실현
판넨베르그는 세계의 평화란 하나님의 통치에서만 비로소 실현된다고 보았다. 유엔이나 WCC 같은 기구는 이러한 세계 평화를 실현시킬 수 없다고 보았다. 이 지상의 교회는 다가오는 하나님 통치를 증거하는 데서만 그 존재가치가 인정된다면서, 세계교회의 기구적 일치를 추구하는 WCC운동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자유주의자들이 세계적인 기구를 통하여 세계평화를 보장하려는 시도를 인간적인 시도로 보았고, 혁명주의자들이 기존세계질서를 총체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수립하려는 시도가 실현될 수 없다는 시도라고 비판하였다.
판넨베르그는 인간의 노력이란 온전한 평화와 최종의 자유를 경험적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파편적인 부분 목표들(fragmentarische Teilziele)만을 이룬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미래의 힘으로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힘으로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통치만이 이 세상에 진정하게 정의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통치를 강조한 하나님 나라의 신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4) 종말론적 이원성 보존: 보편구원 아닌 구원과 심판 강조
더욱이 바르트나 몰트만의 신학은 한편으로는 교회정위적이나 그 신학이 지나친 낙관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보편화해론과 만인구원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의 신학은 오늘날 교회가 이 시대를 향해 선포해야할 신앙적 의무를 요구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상실하고 있다. 그리스도 구원의 보편화해와 만인구원의 메시지 때문에 전도와 선교의 긴급성과 필요성이 해소되는 것이다. 바르트나 몰트만의 신학에서는 심판이나 하나님의 진노 같은 기독교의 핵심 개념이 보편화해론적 구조 안에서 그 독자성을 상실해 버리고 있다. 그리하여 바르트와 몰트만의 신학은 교회강단 설교의 중요한 요소(심판에 대한 경고)를 상실해 버리고 있다.
이에 반해서 판넨베르그는 종말론에 있어서 불신자와 악인에 대한 심판을 명료히 말함으로써, 교회 메시지의 선포 과제(불신자와 악인에 대한 경고)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여기에 그의 신학의 교회공동체지향적 성격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종말론적 심판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창조론적 법질서를 제시함으로써 교회의 차원을 넘어서 공공영역의 질서(행함에 있어서 의인과 악인의 질서)를 신앙의 질서 외에 인정한다. 판넨베르그는 마태복음 25장 31-46절의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에 대한 예수의 비유에 관한 해석에서 임금이 사람들에게 요구한 것은 믿음이라기보다는 그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행위라고 해석한다. 갇힌 자와 병든 자를 심방하고, 주린 자를 먹인 것, 헐벗은 자를 입혀준 것이 종말론적인 구원의 근거라고 본다. 그렇지 아니한 것이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종말론은 종교개혁적 의인론에서 이탈하고 있다. 여기에 창조론적 법질서를 강조하는 그의 신학의 공공성지향적 성격이 있다.
바르트나 몰트만이 종말과 관련하여 영원은 화해라고 말하면서 심판에 대하여 침묵하는 데 비하여 판넨베르그는 심판을 피력한다: “영원은 심판이다.” “영원한 하나님은 세계의 창조자이며 역시 심판자로서 그의 창조의지에 굳게 서 있다”(Pannenberg, Systematische Theologie Bd. 3 [Gö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93], 656). 그는 역사 내적인 심판을 말한다. “역사 내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들이 자신을 그들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넘겨주고, 주어지는 것에 놓여 있다”(Pannenberg, Systematische Theologie Bd. 3, 657).
바르트나 몰트만이 개인적 화해의 참여 없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는 화해와 구원을 주장하는 데 대하여, 판넨베르그가 돌이킴, 말하자면, 회개를 통한 개인적 복음의 수용이 필요 없는 객관적 화해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돌이킴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소식을 받을 수가 없다”(Pannenberg, Systematische Theologie Bd. 3, 659). 여기서 판넨베르그가 하나님의 화해사건에 대한 개인의 개별적 회개행위와 세례받음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의 참여를 강조하는 것은 성서적이고 종교개혁적 전통에 충실한 해석이다.
XI. 판넨베르그 보편사 신학에 대한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의 오해
판넨베르그에 있어서 예수의 성육신과 부활과 재림과 종말이란 일부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하나의 신화적이거나 그 역사성이 의문시 되는 오리무중의 사건이 아니라 보편사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속 사건이다. 독일 사상가들에 대한 일부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의 너무 좁은 해석과 정죄적인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은 판넨베르그가 사도신경을 부인하고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고 계시의 직접성을 부인한다고 정죄한다. 그러나 이는 그의 신학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판넨베르그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사도신경을 인정할 뿐 아니라 강해하여 저서로 출판했으며, 온건하게 적용한 역사비판학의 테두리 안에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했으며, 계시는 역사로서 다가온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보편사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편사의 주가 되신다는 기본 명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그는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보편구원론자라고 정죄하는 것은 위에서 필자가 설명한 바와 같이 올바른 지적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현대의 보편구원론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판넨베르그는 바르트나 몰트만과는 달리 최후심판을 인정하는 보수주의자이다. 필자가 쓴 『바르트에서 몰트만까지』(증보판 [기독교서회, 2003], 443-55)을 읽어보면 이러한 오해는 풀릴 것이다.
그가 예수 부활 사건을 전설적으로 보아 알맹이가 없다고 하는 비난도 바른 지적이 아니다. 판넨베르그는 예수의 부활 사건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초기의 시도에서 보는 바 같이 전설로 보지 않는다. 단지 그의 의도와는 달리 후기에 이르면 예수의 부활사건이 역사적 증명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점차 쉽지 않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는 초기에 도입한 후기유대교적 묵시록의 죽은 자들의 보편적 부활의 지평 속에서 예수부활이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후기 유대교적 묵시록적 지평이 보편사를 표상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역사관이었지 다른 종교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적용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맺음말: 하나님 존재에 대한 보편사적 이성의 증언
판넨베르그는 86년이란 생을 살면서 보편사 가운데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자 하였다. 그는 신학이 공공의 학문이 되어야 하며, 예수의 부활과 신인(神人)으로서의 예수의 정체성은 역사적 이성의 통찰에 의하여 파악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이 일반 신자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가 신학자로서 등장한 1960년의 유럽신학적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일반 신자들에게는 당연한 사실이 신학자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에는 일반 역사를 계시와 분리시키는 불트만의 실존주의 신학과 바르트의 신정통신학이 유럽신학계를 지배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판넨베르그는 현대신학이 상실한 역사개념을 기독교 신학의 보편적 지평으로 복권시킨 것이다.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편사 가운데 미래의 힘으로 설명했다. 그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미래에서 현재로 다가오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증언하면서 역사적 이성을 강조한 신학자이다. 그는 미래의 존재론적 우위를 말하고 있다.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주고 현재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론은 종말론적 미래론으로서 전통적인 미래론을 넘어서고 있다. 이 미래의 주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이 20세기 후반기와 21세기 초반부에 사용한 지성적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