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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노트] 혈연중심적 가족주의의 한계와 위험성

강남순·미국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차승원 아들 "출생 비밀" 기사를 보며 

▲강남순 교수 ⓒ베리타스 DB
한국에서 활동할 때, 모 여대에서 한국주재 외교관들을 포함하여 한국에 나와 있는 외국인들의 배우자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에서 "Women of Korea"라는 과목을 맡아서 서너 학기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매 학기 마다 사람들은 바뀌는데 그들이 내게 묻는 두 가지 동일한 질문의 내용이 있었다. 첫째는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따스하고 친절한 것 같은데 왜 세계 고아수출 제 1위인가 라는 질문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 남성들이 한국여성들은 서양 여성들보다 더 "해방"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주장의 근거로 서양 여성들은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지만, 한국여성들은 결혼해도 자신의 성을 그대로 가진다는 것이란다. 그런데 한국에서 살아보니 사회 전반적으로 굉장히 가부장제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이 각기 다른 것 같은 두 가지의 질문은 사실상 상호연관되어 있다.  오늘 아침 잠시 한국에 관한 뉴스를 읽어보다가 본 기사를 보면서, 이 두 질문이 다시 생각났다. 
"출생비밀" 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제목으로 여러 곳에 기사를 보니, 차승원이라는 배우가 그동안 "피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아들의 "출생비밀"을 지켜왔으며, "마음으로 낳은 아들"이라고 했다고 한다.  결혼한 부인이 이전에 낳은 아들--그 아들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결혼하고 16년이나 함께 살아온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의 존재를 "출생비밀"이라고 범주화시켜서 그 "비밀"을 지켜내야 하는 우리 사회의 "가족" 개념은 분명 문제가 심각하다. 나는 공적 인물로서의 한 배우가 어쩌면 참으로 "당연한 일"을 한 것이 이렇게 여기 저기 신문을 장식하는 기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저리다. 지금 무수한 구석들에서 이러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관계속에서 "출생의 비밀"을 지켜내며 마음 조리며 일생을 살아 온,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현대 21세기의 사회는 다양한 측면에서 변화되고 있는데, 이 "부계 혈통중심의 가족주의" 는 여전히 완강하게 우리사회의 근저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 많고 눈물도 많은" 한국사람들이 정작 우리 사회의 "아기들"을 스스로 입양하지 않고/못하고 다른 나라로 "수출"하고 있어서 "고아 수출국"이라는 표지를 달고 있다. 아버지의 "피가 섞여야 진정한 가족" 이며, 피 섞인 아이를 낳아야 온전한 가족을 이룬다고 보는 "부계혈통중심적 가족주의"는 입양아 가족, 한부모 가족, 무자녀 가족, 비혼모/부 가족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가족의 형태들를 모두 무엇인가 "모자라는"  "비정상 가족"이라고 소외시키고 있다. 독일의 나치시대와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이 팽배할 때에는 각기 다른 인종간의 결혼은 법으로 금지하는 "불법"이었다. 소위 "한방울 원칙 (one-drop-rule)"이라고 불리우는 원리에 입각하여 게르만 민족주의 또는 백인중심주의적인 "인종적 혈통순수주의"는 게르만 민족이나 백인이 아닌 타 인종의 피가 한방울이라도 섞이면 그 순수성이 "오염"되므로,  타 인종과의 결혼을 법적으로 금했었다. 1967년까지 미국에서도 각기 다른 인종간의 결혼 (interracial marriage)이 불법이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각기 다른 인종간의 결혼을 "비정상"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뭔가 "비정상"인 사람으로 간주되는 시대가 되었다.   
여권운동이 확산된 이후에야 서구의 여성들은 결혼한 이후에도 자신의 성을 지키겠다는 선택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결혼한 여성들이 자신의 성을 그대로 지키게 된 것은 아이러니칼하게도 한국여성들의 주체적 독립성이 인정되어서가 아니라, 남편의 집안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기에 아무리 결혼해도 남편집안의 "정식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부계혈통중심적 가족주의"에 근거해서 이다. 결혼한 여성이 비로소 남편의 가계에 한 발을 집어넣게 되는 계기는 바로 그 집안의 대를 잇게 해주는 남편의 피가 섞인 "아들"을 낳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제 이러한 아들낳기에 대한 광적 집착이 훨씬 사라진 것 같은 이 시점에도, 여전히 "피 한방울"이라는 용어들이 대중매체에서 "자연스럽게"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모두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회에 이르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갈 길이 참으로 멀다는 것을 말해 준다. 
나의 학생, 동료, 친구중에는 자신의 피부색과 전혀 다른 한국아이, 베트남 아이, 중국아이, 흑인아이를 입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아들/딸에게 한국동화를 구해 읽어주고, 한복을 구해 입히고, 한국에 대한 비디오를 구해 보여주며, 간혹 내게 한국에 대하여 질문을 하기도 한다. 여름방학 때 베트남 출신의 아들을 위해 베트남에 온 가족이 여행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마다 그들이 고맙기도 하도,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입양되지 못하여 이곳까지 온 그 한국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가족들간에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아도 다양한 배경의 가족 구성원들을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탈-혈연중심적 가족주의"가 당연한 상식으로 여겨질 때가 언제가 될까. 그 때가 되면 "차승원 아들의 출생비밀"이라는 표제로 신문기사가 나서, 곳곳에 있을  차승원의 아들과 같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주변으로부터 차별적 눈길을 받으며 일생을 살아가는 일은 사라질 것 아닌가. 
※ 본 글은 강남순 교수가 10월 8일(수) 자신의 페이스북 노트에 올린 글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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