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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노트] 데리다: 스스로 쓴 자신의 장례식 조사

강남순·미국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강남순 교수. ⓒ베리타스 DB
한국에서 미국의 대학으로 옮긴 후 내가 누리고 있는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가르쳐야만 하는 지정된 과목만이 아니라, "가르치고 싶은" 과목들을 개설하여 가르칠 수 있다는 학문적 자유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 내가 일하던 한국의 대학에서는 그러한 자유를 갖지 못하였다. 비정규과목이면 아무런 공식절차없이 "특별주제 (Special Topic)" 또는 "특별 사상가/인물 (Special Figure)"등의 이름이 붙여진 과목으로 열면 된다. 그리고 새로운 강의를 정규과목으로 만들고 싶으면, 세 단계의 승인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그 과목의 교수요목(syllabus)과 그 강의가 어떤 의미와 중요성을 지니는가라는 것을 설명하는 문서를 첨부하여, 자신이 속한 분야위원회(Area Committee)에 제출한다. 이 분야 위원회에서 통과되면, 그 다음에  석사과정위원회와 박사과정위원회에 이 두 문서를 제출하여 승인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 두 위원회에서 승인이 되면, 마지막 단계로 전체 교수회의에 올려서 교수전체의 투표를 통한 승인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과목을 정규과목으로 열려는 교수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 제안을 하기도 하면서 최종투표를 하여 과반수가 찬성하면 그 과목이 정규과목으로 규정된다. 
다음 2015년 봄학기에 <데리다와 신학정치적 이슈 (Derrida and Theopoligical Issues)>라는 과목을 이 대학에 온 이후 세번째로 연다. 이 과목을 처음 가르친 후 부터, 정규과목으로 개설하는 것을 신청하여 승인을 받아서 2년에 한번씩 이 과목을 가르치곤 한다. 물론 내가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다양한 과목마다 각기 다른 의미와 즐거움들이 있지만,  이 과목은 내가 가장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과목이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에게도 "이제부터 데리다와 데이트" 하는 마음으로, 떨리는 호기심과 애정을 가지고 한 학기동안 데리다를 만나라고 한다. 가르치고 싶은 과목들이 참으로 많으니, 이 과목을 매년 가르치고 싶지만 2년에 한번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일이다. 
데리다는 가장 난해하기로 이름난 사상가중의 한 명이고, 따라서 가장 오해를 많이 받는 철학자중의 한 사람이다. 데리다의 "해체 (deconstruction)" 개념은 "파괴 (destruction)" 의 의미로 종종 오해되고 있어서 데리다는 허무주의자, 파괴주의자, 무신론자, 상대주의자 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기도 하면서 그가 과연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하여 지독한 왜곡과 오해가 난무하다. 내가 개인적으로 데리다에게 처음으로 끌리기 시작한 것은 그의 유명한 학문적 책이 아닌, 그가 암으로 죽기 바로 직전인 2004년 8월 19일 프랑스 신문인 르 몽드(Le Monde) 지와의 인터뷰이다.  이 인터뷰는 "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I am at war with myself)"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소개되었다. 데리다는 2004년 10월 9일에 죽었으니, 이 인터뷰는 데리다 생애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있다.  "인터뷰"라는 방식을 "인터뷰 예식 (ritual of interview)"라고 부르면서 평소에 "인터뷰"라는 장르가 지닌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데리다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한 인터뷰이다. 이 인터뷰는 후에  라는 매우 얇은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데리다"라는 이름이 유명한 철학자, 이론가 만으로서가 아니라 이 세계와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에 대한 따스한 연민의 시선을 지닌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내게 처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 이후 데리다와 나의 "일방적인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어찌된 일인지 내 데이트 상대자들은 대부분 죽은 사람들이다"라는 농담을 내가 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 이다. 그의 해체, 환대, 정의, 용서, 우정, 코즈모폴리터니즘 등의 개념들을 통해서 데리다는 나의 영어 책 < Cosmopolitan Theology> 에서 가장 중요한 대화상대자가 되었고,< Diasporic Feminist Theology>의 헌사 페이지에 나는 다른 세명의 사상가들(한나 아렌트, 에드워드 사이드, 가야트리 스피박) 과 함께 그의 이름을 포함시켰다. 
데리다가 쓴 책, 그리고 데리다에 관한 책들은 무수하게 많아서 나는 매번 이 과목을 가르칠 때 이전에 사용하던 책들을 반복해서 쓰지 않고 다른 책들을 쓰곤 한다. 그래서 8페이지가 되곤 하는 교수요목도 이전에 만들었던 것을 쓰지 못하고, 매번 가르칠 때 마다 다시 만들어야 하니 나 스스로 고생을 자초하는 셈이다. 그렇지만 동일한 책만을 쓰면 선생인 내가 신나지 않고 그렇게 되면 학생들도 영감을 못받을 테니 하는 수 없는 일이다. 다음학기에 쓸 교재들을 선택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책들을 살펴보다가 내가 늘 학생들에게 읽게 하는 데리다의 장례식 조사 (funeral address) 가 어느 책 갈피에서 나왔다. 그의 생전에 데리다는 들레즈, 레비나스, 푸코, 리오타르 등 다양한 사람들의 장례식 조사를 썼고, 그 조사들만을 묶은 책은 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가 남긴 말중에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I mourn therefore I am)" 라는 말은 데리다의 깊은 시선을 잘 느끼게 해주는 것으로 느껴져서 나는 참 좋아한다. 그에게서 이 "애도"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는 자신이 죽기 3일전,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느끼며 자신의 장례식에서의 조사를 "나" 가 아닌 "작크 데리다"라는 3인칭으로 작성한다.  자신이 자신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3인칭으로 조사를 쓰고, 인용부호를 써서 자신의 아들인 피에르에게 읽도록 부탁하였고, 그의 부탁대로 피에르는 자신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그 조사를 낭독했다. 
"작크는 어떠한 장례예식이나 또는 장례연설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그러한 일들을 해야 하는 책임을 맡은 그 친구에게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장례식에 오신 여러분들에게 참으로 감사하며,  여러분들을 축복한다고 하는 것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제발 슬퍼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그에게 준 무수한 행복한 순간들,
그리고 여러분들과 그가 함께 삶을 나눌 수 있었던 순간들만을 생각할 것을 여러분들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께 전했습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여러분들을 향해 웃을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들도 나를 향해 웃어주십시오
언제나 삶을 사랑하고, 생존하여 살아냄을 긍정하는 것을 멈추지 마십시오.
나는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내가 어디에 있든지 여러분들을 향해 언제나 웃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 마다, 자신의 죽음의 침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데리다의 모습을 상상하여 떠 올리며 마음이 저리곤 한다.  데리다에 대한 무수한 오해들, 오독들에 대한 글들을 읽다가, 데리다가 스스로 쓴 장례식 조사가 담고 있는, 따스한 연민의 가진 한 "인간 데리다"의 모습이 다시 생생하게 다가온다. 한 사람이 지닌 수천의 층과 결들을 이해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기 까지 불가능하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온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사실상 진정한 우정, 사랑의 전제조건이다. 내가 누군가에 대하여 "안다"는 생각을 하자 마자, 그 순간 "나"는 그 대상을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의 제한된 인식의 상자속에 가두워 놓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우정이나 사랑이란 상대를 "안다(knowing)"는 인식이 아니라,  "알지못함  (non-knowing)"의 차원을 끊임없이 남겨놓고 받아들이는 것임을 데리다는 강조한다. 데리다가 "칸트를 읽을 때마다 그것은 언제나 처음이다 (Every time I read Kant, it is always for the first time)"라는 말을 했듯이, 나는 데리다를 읽을 때 마다 언제나 "처음"처럼 느껴진다. 그는 그의 한 인간으로서의 따스한 연민의 시선들, 이 삶에 대한 강한 긍정과 열정을 지닌 사람으로 다가오면서, 누군가를 "온전히 아는 것 master"은 언제나 불가능한 것임을, 그리고 언제나 타자들속에서 그 "알지 못함/ 알 수 없음"의 영역들을 남겨놓고 받아들여야 함을 그 특유의 웃음으로 나즈막히 말한다. 
===============
** 데리다가 쓴 자신의 장례식 조사의 영어본
"Jacques wanted neither ritual nor oration.
He knows from experience what an ordeal it is for the friend
who takes on this responsibility.
He asks me to thank you for coming and to bless you,
he begs you not to be mournful,
to think only of the many happy moments which you gave him
the chance of sharing with you.
Smile at me, he says, as I will have smiled at you till the end.
Always prefer life and never cease affirming survival.
I love you and am smiling at you from wherever I may me"
※ 본 글은 강남순 교수가 10월 11일(토) 자신의 페이스북 노트에 올린 글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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