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리뷰] 악에 맞서는 단초는 ‘맞잡음’

부지영 연출, <카트>

▲부지영 연출작 <카트>의 한 장면. ⓒ스틸컷

“예술은 진실을 드러내는 거짓이다” (파블로 피카소)  

영화 <카트>는 분명 허구다. 그러나 영화가 그리는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파업은 현실과 놀랍도록 맞닿아 있다. 이야기의 흐름은 따라가기 쉽다. 마트의 경영진은 효율적 경영을 위해 직원들을 대량 해고한다. 마트 직원들은 이에 맞서 파업을 벌인다. 이 영화가 그리는 사건은 2007년 홈에버 사태다.   
영화는 홈에버 사태의 전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해당 사건의 전개과정은 언론보도를 검색해서 보면 된다. 영화는 그보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에 승부를 건다. 주인공 혜미(염정아)는 특근, 야근 등 회사에서 내려주는 일들을 착착 해내는 억척 아줌마다. 그녀가 거의 기계처럼 일하는 이유는 단 하나, 정규직이 되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정규직이 되면 월급도 오르고, 그렇게 되면 아이들 학비도 넉넉해지니 힘들어도 꾹꾹 참고 일하는 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 선희(문정희)는 이혼녀다. 직장을 다녔지만 아이를 가지면서 자의반 타의반 그만둬야 했다. 여기에 이혼까지 하게 되면서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처지다. 마트에서 일이라도 해야 겨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 있다.   
<카트>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줌마들이다. 왜 이 아줌마들이 노조라는 무시무시한 조직을 만들고, 자신의 일터를 점거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을까? <카트>는 이런 물음에 답을 던져준다.   
이 아줌마들은 그저 일하고 싶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아가고 싶다. 또 보일러실 한켠 에 마련된, 그래서 여름이면 찜통으로 돌변하는 탈의실이 아닌, 보다 쾌적한 시설에서 옷이라도 편하게 갈아입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회사는 이들의 요구를 무참히 외면한다. 결국 파업은 이들이 선택한 최후의 선택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회사는 처음엔 경찰병력을, 그 다음엔 용역을 투입해 이들의 파업을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언론 역시 이 평범한 아줌마들이 파업을 한 이유 보다는, 파업 때문에 생긴 영업 손실과 이것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따지기에 급급하다. 
▲부지영 연출작 <카트>의 한 장면. ⓒ스틸컷

해고와 파업만 아니면 평범한 계산원으로 하루를 보냈을 혜미와 선희는 파업을 통해 서서히 세상에 눈을 떠간다. 연출자인 부지영 감독은 이들의 감정변화의 동선을 세밀한 필치로 그려나간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혜미의 이야기에 그녀의 아들 태영의 이야기를 끼워 넣은데 있다. 태영(디오)은 갑자기 파업에 나선 엄마가 불만스럽다. 그러다가 여자친구 수경(지우)과 함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느 날 태영은 편의점 사장과 심하게 다툰다. 편의점 사장은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급여를 깎으려 했고, 태영은 여기에 고분고분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태영은 편의점 사장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경찰 지구대에까지 오게 된다. 혜미는 이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온다. 그러고선 편의점 사장을 향해 정당한 대가를 줄 것을 요구한다. 이때 그녀가 편의점 사장에게 던진 한 마디는 폐부를 찌른다.  
“돈 받고 일한다고 아무렇게나 막 대해도 되는 줄 아세요!”   
혜미와 태영의 이야기는 전체적인 맥락과 전혀 상관없이 흐르는 듯 하다가 태영이 지구대로 끌려오면서 한데 얽힌다. 이 같은 이야기 배치는 무척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 메시지란 혜미가 마트에서 당하는 부조리에 대해 침묵하면, 이로 인한 결과는 아들인 태영에게도 고스란히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영화는 선희가 마음을 돌리는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요동친다. 선희는 아들을 천막농성 장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용역의 폭력으로 그만 아들이 심하게 다친다. 당장 병원비를 마련해야 하는 선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노조를 떠나 계산대로 복귀한다. 선희가 노조를 결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녀의 복귀는 다른 동료들에게 큰 파장을 던진다. 그러나 감독은 혜미의 시선을 빌어 선희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혜미는 선희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고 다시 함께 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감독의 세심한 필치는 이 대목에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부지영 연출작 <카트>의 한 장면. ⓒ스틸컷

영화의 이야기는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2007년 7월 홈에버 노동자들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홈에버 상암점을 점거하고 무기한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평범한 아줌마 노동자들이 대형 유통업체 매장을 점거해 영업을 정지시킨, 말 그대로 초유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파업 21일째 되던 날, 공권력을 투입해 파업을 강제해산시켰다. 
‘제자훈련’ 실패 드러낸 홈에버 사태 
비인간적 처우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공권력 투입으로 또 한 번 큰 상처를 입었다. 이에 이들은 경영주인 박성수 회장이 장로로 있던 사랑의교회 앞으로 달려가 농성을 벌였다. 흰 눈이 날리는 겨울날이었다. 그러나 이 광경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심지어 한 성도는 이들을 향해 자리를 비켜줄 것을 요구했다. 예배에 방해된다는 이유를 들어서 말이다. 
홈에버 노동자들은 바로 그 시기 가장 아프고 상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성도는 상한 영혼들을 향해 ‘예배방해’ 운운하며 떠나라고 외친 것이다. 약자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는 한국 기독교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은 동시에 사랑의교회가 전매특허처럼 내세웠던 제자훈련이 사실상 실패한 프로그램임이 만천하에 폭로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당시는 故 옥한흠 목사가 생존했을 때이기도 했다. 물론 담임목사 직에서 물러 난데다 암 투병 중인 옥 목사가 나선다고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평생 전력을 기울여왔던 제자훈련의 결과는 약자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는 ‘가라지’의 양산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었고, 그는 이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부지영 연출작 <카트>의 한 장면. ⓒ스틸컷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영화 끄트머리, 혜미는 다시 마트로 돌아간다. 그리고 외친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이에 대해 사측과 공권력은 각각 용역의 폭력과 물대포로 답했다. 이 장면 역시 허구지만, 우리 사회의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지금 혹한의 추위에 20m 높이의 전광판에서 케이블 방송 협력업체에서 일했던 2명의 노동자가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3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이다. 한편 자동차회사 노동자 두 명은 70m 높이의 공장굴뚝에 올라갔다. 이들의 요구는 영화 속 혜미의 그것과 마찬가지다. 그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 그리고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측은 요지부동이고 공권력은 두 곳에 경찰병력을 배치하고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다.   
영화 말미, 계산대로 돌아간 선희는 혜미의 곁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혜미와 함께 카트를 몰고 경찰의 물대포를 향해 돌진한다. ‘마트’는 이윤에 눈먼 기업이 노동자를 향해 온갖 부조리를 저지르는 현장이다. 반면 ‘카트’는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힘을 합치는 도구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마트>가 아니라 <카트>인 건 당연한 귀결이다.   
거대한 악에 맞서는 단초는 약한 자들의 연대다. 혜미와 선희의 아름다운 맞잡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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