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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노트] 자기 자신과의 관계의 정원

강남순·미국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강남순 교수 ⓒ베리타스 DB
J라는 학생이 나와 의논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만나 줄 수 있겠느냐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학기가 모두 끝나고 학교의 공식적인 프로그램도 모두 종결되고 이제 성적평가하고 졸업식만 남겨둔  이 시점에 학생이 교수를 만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내는 일은 이제까지 이곳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좀처럼 생기는 일은 아니기에, 뭔가 심각하고 절실한 문제가 있는가 보다 하는 생각으로 약속시간을 잡고, 학교에 나갔다.  

J는 이제 곧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박사과정에 진학할 계획을 가지고 여러 대학에 이미 지원한 상태이다. 내가 추천서를 써 주었으니, 나도 J가 좋은 장학금을 받고서 그 길고 긴 박사과정이라는 여정을 힘차게 시작하기를 오래전 부터 바라오고 있었다. "리서치 하는 것이 취미"라고 말 할 정도로 어떤 한 주제를 가지고 깊이 들여다 보는 것을 참 즐거워하는 그녀다. 나와 마주앉은 J는 자신이 왜 이렇게 급하게 나와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를 "이제 졸업식이 끝나면 교수님은 학교주변에 계시지 않을 것 같아서, 페이퍼 읽고 성적매기는 일로 매우 바쁘실 것을 알지만...." 이라는 말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간 내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도 같이 하면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그녀는 자신속에 있는 내면적 갈등을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하기가 어려워서, 용기를 내어  내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녀가 내게 듣고 싶은 것은 결국 '결혼하고 아기 낳고도 자신이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일들을 해 낼 수 있는지...' 였다. 결혼식이 점점 앞으로 다가오니, 자신에게 깊은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단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자기 자신을 "상실"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자신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강의실에서 내가 한 말이 떠 올랐단다. 아무리 바빠도 "자기 자신과의 만남"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의도적으로 만들라고 하는 것: "Make an appointment with yourself..." 
무수한 관계망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이러한 무수한 관계망들은 "나"의 특정한 역할들을 규정하고 기대하면서 그 "역할의 상자"속에 "나"를 넣어버린다. 그 역할이 사적이고 친밀성의 영역이든 공적 영역이든 우리는 무수한 역할들 속에서 규정되고 관계맺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망들이 복잡해지면 질 수록, 가장 중요하고 모든 관계들의 가장 근원적인 관계가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종종 망각한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그 어느 관계든 자동적으로 오는 것은 없다. 모든 관계들이란 무수한 다층적 "의도성"에 의하여 위로가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하고, 파괴적인 것이 되기도 하고, 또는 아름답게 성숙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의 특성이 오로지 타자와의 관계들에만 적용된다고 생각하면서, "자기자신과의 관계"는 "자동적으로"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오해이다. "자기자신과의 관계"를 포함한 그 어느 관계도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자신과의 관계"는 "나"와 또 다른 "나"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하고, 그 대화를 통해서 "나"가 가졌던, 깊숙히 가지고 있는, 앞으로도 지키고 싶은 이 삶에의 열정과 애정을 확인하고, 긍정하고, 격려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만들어진 "고정된 존재(fixed being)"가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형성중의 존재 (becoming being)"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아무리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관계망속에 놓여진다 해도, "자기자신과의 관계의 정원"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키우는 작업을 끈기있게 하겠다는 각오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모든 여타의 사적/공적 관계망속에서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고 나는 본다. 그래서 예수도 "너 자신을 사랑하듯" 타자/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타자를 사랑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자기 자신과의 관계의 정원이 황폐화 된 사람이 사적관계이든 공적 관계이든 여타의 타자와의 관계를 아름답게 가꾸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중요한 "관계의 철학"을 담고 있다고 나는 본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나눈 후, 나는 그녀가 내게 처음 물었던 질문, "내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박사과정에서 공부도 할 수 있을까..?"라고 했던 물음으로 돌아갔다. 
"자 내가 이제 네가 처음에 물은 그 질문에 답을 해 줄께..."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아마 그녀는 "그래, 너는 할 수 있어!"라는 확답을 나로부터 확인하고 싶어 내게 왔는지 모른다.
나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 보며 말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너의 선생인 나도 아니고 친구나 가족도 아닌 바로 "너 자신"이 만들어 가는 거야. 네가 그 질문에 'No" 를 만들어 갈 수도, 'Yes' 를 만들어 낼 수도 있어. 왜냐하면 너를 만들어 가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이므로."
그녀는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나를 바라보며 "Thank YOU" 라고 천천히,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30분만 시간을 내 달라고 한 그녀와 1시간 30분 가량 연구실에서 이야기를 나눈 후 일어난 그녀와 헤어지기전 포옹을 하는데, 그녀가 내게 한 가지 약속을 하고 싶다고 한다: "내가 이제 어떠한 외적인 삶의 변화가 있어도 '나 자신과의 관계의 정원'을 가꾸기 위해 늘 의도적으로 노력할 것이며, 언젠가 Dr. Kang 을 그 정원에 초대하고 싶다"고. 
나는 그녀에게 "너의 그 '약속'은 네가 내게 주는 '선물'로 받을께...'라고 말하며 그녀의 어깨를 다시 감싸 안았다. 
꿋꿋하게, 아름답게 어려움들을 헤쳐나가고 아름답게 자신만의 내적 정원을 가꾸어 나가라는 내가 그녀에게 주는 무언의 격려의 몸짓--
한 학기가 지나면 이 학교를 떠날 J가 내 연구실에서 나가는 뒷 모습을 보며, 나는 그녀가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들과 씨름하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과 애정에 대한 "Yes"를 만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나 자신과의 관계의 정원을 가꾸어 내는 일--이것은 사실상 다양한 관계의 정원들을 가꾸어 내는데에 소중한 밑거름이라는 것을 J와의 시간속에서 다시 확인하며, 나도 다시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한 약속을 잡는다. 나만의 방식으로--
 
※ 본 글은 강남순 교수가 12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 노트에 올린 글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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