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98시간』 겉 표지. |
김용운 이데일리 기자와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땅에 남긴 행적을 시간대별로 추적해 나간다. 바로 이 책 『교황과 98시간』은 교황이 한국에서 보낸 98시간의 생생한 기록이다.
이 책의 첫 번째 가치는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그의 진면모를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있다. 미디어는 포장에 능숙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이전 한국은 물론 세계 유력 언론으로부터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미디어의 속성상 교황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허위이거나 심지어 조작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방한 기간 내내 교황을 가까이서 지켜본 김용운 기자는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에 깊이 감화 받은 모습이다. 그가 전하는 인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언론에 그럴싸하게 포장됐으나 한 꺼풀 벗기면 온갖 악취를 풍기는 다수의 개신교 목회자들에게선 볼 수 없는 모습이기도 했다.
“교황의 기사를 준비하면서 속으로 반신반의한 부분이 있었다. 정말 교황은 책들에 적힌 대로, 혹은 뉴스에 나온 대로 행동하는 분이실까? 미디어 종사자로서 미디어의 눈속임을 잘 아는 터라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교황을 취재하고 또 가까이서 직접 확인한 결과 교황은 언행일치가 되는 ‘어르신’이었다. 또한 자신의 나약함을 잊지 않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할 줄 아는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느낀 것은 신앙이 주는 참된 자유였다.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봐온 ‘활연대오’한 사람의 현현을 보는 듯 했다.” (본문 217쪽)
이 책이 갖는 두 번째 가치는 교황이 한국사회에 남긴 가르침을 교황의 원전을 통해 전해준다는 것이다. 교황의 문헌은 가톨릭 신앙이 없어도 읽어 내려가는데 무리가 없다. 『교황과 나』를 통해 친절하게 교황을 소개해준 김근수 씨의 해설이 곁들여져 있으니까 말이다.
가톨릭 교황의 개신교적 행보
교황이 남긴 문헌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교황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정확히 직시했고, 이에 대한 처방을 내려줬음을 발견한다. 교황은 한국을 떠나던 날인 8월18일(월)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미사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이러한 약속을 한민족이 체험한 역사적 맥락에서 알아듣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지난 60년 이상 지속되어온 분열과 갈등의 체험입니다. 하지만 회심을 촉구하는 하느님의 긴박한 부르심은 한국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도 하나의 도전을 제시합니다. 그 도전은, 참으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일에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얼마나 질적으로 기여했는가를 점검해보라는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여러분 각자가 개인 또는 공동체 차원에서 불운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 많은 이가 누리는 번영에서 배제된 이들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복음적 관심을 증언하는가에 대하여 반성하도록 도전해 옵니다.”
교황의 강론은 우선 한국 사회가 건국 이후 지금까지 분열과 갈등 속에서 아파해왔음을 교황 자신이 잘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황은 이런 인식하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일’에 기여했는지 묻는다. 또 혹시 사회적 약자를 홀대한 건 아닌지 반성하게끔 한다. 교황의 이 같은 물음과 성찰은 가톨릭-개신교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큰 도전을 주는 메시지다. 이 대목에서 개신교는 부끄럽기 그지없다. 가톨릭의 경우 강정, 밀양, 세월호 참사 등 국가폭력의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아픔을 같이 해왔다. 반면 개신교는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에 기여하기보다 물신주의, 성공지상주의를 조장하는데 앞장서왔다.
교황의 행보는 어느 면에서 개신교를 돌아보게 했다. 교황은 발길 닿는 곳마다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가 8월16일(토) 평신도 사도직 단체와의 만남에서 행한 연설 중의 한 토막이다.
“평신도로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은 현세 질서를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우고 완성시키며 그분의 나라가 오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여 교회의 사명 수행을 전진시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은 교권주의가 강했다. 루터의 만인사제주의는 교권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 선언이었다. 이런 전통에 비추어 볼 때,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은 무척 파격적이고, 일정 수준 개신교적이다.
한국 개신교 상황은 어떤가? 개교회엔 만인사제주의가 무색할 만치 목회자중심주의가 팽배하다. 심지어 담임목사는 ‘슈퍼 갑’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려온다. 이런 경향은 신도들이 성서 해석이나 삶에서 부딪히는 신앙 갈등을 기도나 묵상을 통해 스스로 풀려하지 않고 목사의 권위에 의지하려 한데서 온 당연한 귀결이다. 교황이 일깨우는 교훈은 간단하다. 구교, 신교를 떠나 현세 질서를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우는 사명은 평신도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기록, 그 자체의 힘
이 책이 갖는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는 ‘기록’ 그 자체로서의 가치다.
“감히 말하건대 우리는 일종의 역사적 소명을 갖게 되었다. 과거에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과 1989년에 한국을 두 차례 방문하였지만, 교황 방한을 정리해놓은 책은 어디에도 없다. 교황을 세 차례나 맞이하고도 계속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적어도 10년간 한국 땅에서 교황을 다시 보기는 사실상 어렵다. 이번 교황 방문은 2014년의 주요 사건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역사적 사건이다.” (본문 5쪽)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그가 떠난 뒤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그 이유는, 그가 한국을 떠나기 무섭게 그의 발자취가 빠르게 지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에 와서도 예의 파격행보를 이어 나갔다. 파격행보의 정점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40일 넘게 곡기를 끊었던 김영오 씨의 손을 잡아준 일이었다.
교황 방한 시점은 세월호 참사로 사회 갈등이 고조됐던 시기였다. 사실 세월호 참사는 초기부터 사고 수습을 제대로 하고 진상규명에 착수했으면 됐을 문제였다. 그러나 사고 이후 정부는 말 그대로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부책임론이 고개를 들었다. 이러자 급기야 진영논리가 끼어들어 여론이 첨예하게 갈린 것이다.
이런 탓에 교황 방한 일정이 가까워 오면서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을 만날 것이냐, 혹시 세월호 참사를 불편해하는 정부가 교황과 유가족을 떼놓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의문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큰 어른을 맞이하면서 부끄럽기만 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근본적인 책임은 우리 안에 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게 된 사고 원인과 구조 과정에서의 문제점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진상규명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수순에 따라 진행되면 마무리되는 일이었다. 더불어서 자식이 바다에 수장되는 과정을 지켜본 부모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그들의 억울함을 해결할 수 있게 정부가 최대한 투명하고, 공정하게 밝혀냈다면 끝났을 것이다. 굳이 세월호 문제가 교황 방한 기간까지 한국 사회의 ‘쟁점’이 될 일은 아니었다.” (본문 74쪽)
프란치스코 교황은 편 가르기가 횡행하던 시기에 한국에 왔다. 그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그저 가장 큰 상처를 입었고, 그래서 가장 크게 아파하던 세월호 유가족들의 손을 맞잡아줬다. 또한 방한 기간 동안 줄곧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떼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면서 이런 메시지를 남겨줬다.
“인간의 고통에 관해서는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교황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정치적 중립 운운하며 노란 리본을 떼 줄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그가 북한의 인권탄압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방문 성과를 폄하하기도 했다.
교황은 정치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그의 방문은 순수하게 사목적인 성격이었고, 교황청도 이 점을 분명히 명시했다. 또한 교황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갈등과 빈부격차에 주목했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쟁점에 대한 ‘복음적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정치적 중립이니 북한인권 탄압이니 하는 말들은 교황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망발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이 책의 가치는 빛난다. 이 책이 교황의 발자취를 원전 문헌과 함께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에, 교황 방한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퇴색시키려는 정치적 음모를 단숨에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개혁 교황을 우리시대에 만날 수 있는 건 분명 행운이다. 그러나 그의 파격적인 행보를 불편해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 측 고위 인사 가운데 누군가가 정치적 중립을 들어 세월호 추모 리본을 떼어줄 것을 요청했듯이 말이다. 결국 핵심은 그가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의 행간을 잘 읽어내 실천하는 일이다. 바로 그 일이 교황을 가장 잘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교황)은 불과 며칠밖에 안 계셨지만 많은 이들이 필요로 하는 위로와 연민과 희망을 가득히 불어넣어 주고 가셨다. 한반도의 평화, 동북아의 평화를 간절히 소망하시며,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못 박아 주셨다. 또 이번에 주신 말씀들 중에 우리나라에 대해서 비판하실 것은 하시고 또 격려하실 것은 격려하셨다. 직접적으로 비판하시진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을 직시하시고 강론이나 연설 행간에 이를 녹여 내셨다.” (교황방한위원장 강우일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