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차에 걸친 재판국 모임이 열렸던 평양노회 사무실 전경. ⓒ베리타스 DB |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에 대한 치리권을 가진 예장합동 평양노회(노회장 강재식 목사, 이하 노회)의 의지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현재 전 목사 면직을 다룰 노회 재판국은 당초 시한이던 한 달을 훌쩍 넘겼음에도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상황이다. 더구나 재판국은 전 목사의 성추행 혐의를 심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직접 만나 증언을 듣기까지 했다. 삼일교회 측의 의뢰로 피해자에 대한 치유 상담을 맡았던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소장은 “재판국원 두 분이 내가 배석한 가운데 피해 여성도 한 명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면서 “재판국원들이 또 다른 피해자와 접촉할 것이라는 언질을 줬다”고 밝혔다. 이 말대로라면 재판국은 복수의 피해자와 접촉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재판국은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재판국은 “기다려 달라”는 입장만 내놓았다. 재판국은 6일(화) 재판국원끼리의 회동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재판국원의 A 목사는 “그 어느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A 목사는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은 이유는 연말이라 목회자들이 분주했기 때문이다”라면서 “재판국이 알아서 할 테니 기다려 달라”고만 답했다.
일단 재판국이 결론을 내리면 임시노회를 열어 이를 상정하게 된다. 노회 안팎에서는 임시노회가 열리기만 하면 전 목사 면직은 무난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노회 소속인 B 목사는 “개인적인 견해도 그렇고 노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임시노회만 열리면 전 목사 면직은 순탄하게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지나친 낙관은 경계했다. B 목사는 “노회 정치가 문제다. 노회 내부에서 그를 비호하려는 물밑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지적했다.
전 목사, 법정공방도 ‘숨바꼭질’?
▲지난해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가 비상계단을 통해 면직재판을 다룰 제3차 재판국 모임에 출두하는 과정에서 홍대새교회 측 성도들이 취재진의 카메라 촬영 방해를 위해 힘껏 손을 뻗치고 있던 장면. ⓒ베리타스 DB |
이런 가운데 전 목사 측은 무더기로 소송을 제기해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본지는 지난 해 11월 줄소송을 예고한 바 있었다.
홍대새교회 부교역자인 황은우 목사 외 2명은 『숨바꼭질』 편집진 전원 및 이광영 장로, 권대원 집사 등 삼일교회 내부에서 그의 범죄사실을 공개한 성도들, 그리고 온라인카페 <전병욱 목사 진실을 공개합니다> 회원 3명 등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모욕,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 등의 혐의를 씌워 고소했다.
전 목사가 맞불 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이진오 더함공동체 목사는 교회법을 무력화시키는 시도로 보고 있다. 즉, 사회법을 끌어들여 노회재판을 중단시키려는 의도라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눈에 띤다. 전 목사 측 고소인이 전 목사 본인이 아닌 황은우 목사라는 사실이다.
황 목사는 전 목사가 삼일교회에 부임하기 전 시무하던 신반포교회 시절부터 전 목사를 보좌한 측근 중의 측근이다. 재판국 모임에서도 매번 그의 얼굴이 눈에 띠었다. 전 목사가 자신이 나서지 않고 측근을 내세운 건 여론의 포화를 피해가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전 목사는 재판과정에서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렸고, 이에 신도들을 동원해 언론사 취재진들의 취재를 극력 저지했다. 전 목사는 맞불 소송을 벌이면서까지 측근 뒤에 숨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이 모든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노회가 감당해야 한다. 노회 재판국은 이제까지 네 번의 모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증언도 들었다. 그러나 모임을 통해 새로운 쟁점은 제기되지 않았고 단지 기존 혐의점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노회는 또 전 목사가 성도들을 동원해 집단행동을 벌이는 데 대해서도 그 어떤 제지도 가하지 않았다.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전 목사는 자신에게 제기된 성추행 혐의를 대부분 부정했다. 그런 그가 재판국에 출두했을 땐 성도들의 인의 장막에 숨어 버렸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이 보이는 행동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행태는 비슷한 시기 여학생들을 잇달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대 강 모 교수, 이른바 ‘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이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과도 극명하게 대조를 이뤘다.
전 목사 측이 줄소송을 벌이면서 이제 전 목사의 성추행 행각은 법정공방이 불가피해졌다. 단, 노회가 전 목사 면직에 조속히 나서기만 하면 사태는 쉽게 풀려갈 수 있다. 노회의 결단이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