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통일운동가이자 흑인민권운동에 힘쓴 이승만 목사가 지난 14일 애틀랜타 에모리대학 병원에서 악성 종양으로 소천했다고 미국 장로교(PCUSA) 교단이 15일 전했다. 향년 83세.
이 목사는 2000년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미국 장로교 총회 의장을 지낸 미국 교계의 지도자다. 또 1992~1993년 미국기독교 교회 협의회(NCCUSA) 회장을 맡으면서 빌 클린턴 행정부의 백악관 종교 자문위원을 지냈다. 당시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 북·미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활동하는 재단인 카터센터가 한국 정부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가보안법 처벌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인권 탄압이라는 성명을 내도록 하는데도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1년 평양에서 이태석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4 후퇴 때 피란민들 틈에 섞여 월남한 이산가족이다. 당시 부모와 네 명의 여동생들을 남겨두고 남동생과 단둘이 월남했다.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1956년 웨스트버지니아주의 데이비스 엘킨스 대학을 졸업한 뒤 1960년 테네시주의 루이빌 장로교 신학대를 졸업했다. 그 해 목사 안수를 받고 루이빌대 교목으로 사역하던 중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만나면서 흑인 민권운동에 참여했다.
그가 분단국가 한반도의 조국통일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78년 북한에 살고 있는 여동생들과 연락이 닿아 이산가족 상봉을 하면서다. 여동생들로부터 부모가 숨졌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해부터 30여 차례 북한을 왕래하며 북한 선교와 남북한 화해에 앞장섰다. 평양 봉수교회 설립에도 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