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리뷰] 미래의 명감독 러셀 크로우를 만나다

감독 데뷔작 <워터 디바이너> 홍보차 방한한 러셀 크로우 작품세계

▲감독데뷔작 <워터 디바이너> 홍보 차 한국을 찾은 명배우 러셀 크로우가 기자회견에 앞서 V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막시무스’ 러셀 크로우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지난 1월17일(토)부터 20일(화)까지 한국에 머무르며 기자회견, 레드카펫, JTBC뉴스룸 출연, 전쟁기념관 방문 등 다채로운 일정을 소화했다. 그는 방한 일정 내내 소탈한 모습으로 한국 팬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글래디에이터>에서 폭발적인 힘으로 경기장에 운집한 군중을 쥐락펴락하던 막시무스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는 한 마디로 엄청난 완력을 뽐내면서도,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내면도 섬세하게 표현할 줄 아는 연기자다. 이런 모습은 그의 1997년작 에 잘 드러난다. 그가 연기한 버드 화이트 형사는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오로지 힘만을 앞세워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말하자면 ‘나쁜 경찰’(Bad Cop)이다. 그러나 그가 완력을 앞세운 데에는 어린 시절의 아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상습 폭행했고, 이런 기억은 버드 화이트를 나쁜 경찰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이후 론 하워드 감독의 <뷰티풀 마인드>, 마이클 만 감독의 <인사이더>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연기의 폭을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이 두 작품에서는 그의 섬세한 면모가 특히 돋보였다. 그는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천재 수학자이지만 정신분열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존 내쉬 역을, 그리고 <인사이더>에서는 유해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수익저하를 우려해 이를 은폐한 담배회사의 비리를 고발하는 제프리 위겐드 박사 역을 맡아 연기력을 뽐낸다. 두 작품에서 보여준 그의 내면연기는 단순히 힘만 과시하는 배우라는 이미지를 뛰어넘기에 충분했다. 특히 <인사이더>에서는 대배우 알 파치노와의 연기대결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그를 세계적 명배우의 반열에 올려준 작품은 리들리 스콧의 2000년 작 <글래디에이터>일 것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로마 장군 막시무스 역을 맡아 활화산 같은 힘을 뿜어낸다. 막시무스의 인생은 참으로 기막히다. 막시무스는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으로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리처드 해리스 분)로부터 왕위를 약속 받았다. 그러나 황제의 아들 코모두스(호아킨 피닉스 분)는 이를 시기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 막시무스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 로마의 최고 권력에서 노예나 다름없는 검투사로 전락한 막시무스는 내면에서 이글거리는 분노를 경기장에서 한 점 남김없이 분출시킨다. 
가끔씩 이런 상상을 해본다. 러셀 크로우가 아닌, 이를테면 ‘실베스터 스텔론이나 멜 깁슨 같은 근육질 배우가 막시무스 역을 맡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평범한 사극 액션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주인공 햄릿과 비슷한 처지고, 따라서 강한 힘과 섬세한 내면을 동시에 지닌 배우에게 제격이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 ⓒ스틸컷

감독인 리들리 스콧은 이토록 중요한 막시무스 역에 러셀 크로우를 기용했고, 러셀은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후 두 사람은 <아메리칸 갱스터>, <바디 오브 라이즈>, <로빈 후드> 등 모두 다섯 편의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지난 19일(월)에 있었던 방한 기자회견에서 러셀 크로우는 “나와 지적으로, 창의적으로 매우 잘 맞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며 리들리 스콧 감독에게 많은 고마움과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글래디에이터>의 성공 이후에도 우직하게 작품 활동을 해 나갔다. 때론 파격적인 변신도 마다하지 않았다. <바디 오브 라이즈>에서는 CIA 요원 에드 호프만 역을 위해 몸무게를 불리는가 하면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에서는 노숙자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허름한 모습으로 타이틀 롤 칼 매카프리 기자 역을 연기한다. 이 영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에서 속칭 ‘독수리 타법’으로 어설프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러셀 크로우의 연기는 언제 떠올려 보아도 재밌다. 
노래 못해? 사람들 평가 신경 쓰지 않아 
한국 팬들은 러셀 크로우하면 아무래도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와 이제 언급할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형사를 떠올릴 것이다. 특히 <레미제라블>은 우리나라 개봉 당시 사회상과 맞물리면서 많은 관객을 끌어 모았고, 아울러 그의 연기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뮤지컬 연기는 뒷말이 무성했다. 한 마디로 ‘노래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담담한 입장이다. 그는 지난 20일(화) 에 출연해 “브로드웨이 가수도 아니고 사람들의 평가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래 할 때엔 진심을 담아 노래하고 마음 깊숙한 곳의 감정을 끄집어낸다”고 덧붙였다. 그의 체구만큼이나 듬직하게 느껴졌던 모습이었다. 
그는 이제 <워터 디바이너>를 통해 연출로까지 지평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호주 역사에서 가장 아픈 이야기를 은막에 풀어낸다. 사실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갈리폴리 전투에 얽힌 뒷이야기를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호주-뉴질랜드 연합군과 터키군은 갈리폴리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러셀 크로우는 “호주가 영국 식민지였던 탓에 반강제적으로 전쟁에 참가할 수밖엔 없었다. 이 전투에서 상당수의 호주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호주 인구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상실감은 컸다”고 고백했다. 감독 데뷔작으로 자신의 조국 호주의 아픈 역사를 건드린 시도는 많은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감독데뷔작 <워터 디바이너> 홍보 차 방한한 명배우 러셀 크로우가 레드 카펫 행사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제공=더블앤조이 픽쳐스

이 영화에서는 호주-뉴질랜드-터키의 문화와 역사가 뒤얽힌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국제정치도 무시할 수 없다. 영화에서 조슈아 코너는 갈리폴리 전투에서 세 아들을 한꺼번에 잃는다. 그는 아들들의 시신이라도 수습하고자 먼 길을 떠난다. 그러나 영국군 당국은 그의 존재를 불편해 한다. 우선 시신 수습 과정이 어려운데다 터키와 그리스 분쟁이 얽혀 있고, 영국은 그리스를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아들들의 시신 수습을 위해 긴 여정을 떠나는 아버지의 부정(父情)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당시의 국제정치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또한 터키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미모의 여인 아이셰(올가 쿠릴렌코 분)를 등장시켜 이국적인 향취도 가미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이 모든 요소들이 제대로 얽히지 않고 따로 논다는 인상이 강하다. 111분가량의 짧은 러닝 타임에 소화하기엔 너무나도 깊이 있는 소재들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다. 차라리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이나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처럼 3시간가량 긴 러닝타임을 지닌 서사극으로 만들었다면 작품의 주제의식을 더 잘 풀어냈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러셀 크로우가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로버트 레드포드, 벤 애플렉 같이 배우 출신 명감독으로 발돋움하기엔 아직은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그가 꾸준히 자신의 연기폭을 넓혀왔고, 이를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배우였음을 감안해 볼 때 그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러셀 크로우가 클린트 이스트우드·로버트 레드포드의 계보를 잇는 명배우 출신 명감독으로 기억될 그날은 곧 다가올 올 것이다. 끝으로 그가 신작 <워터 디바이너>를 들고 한국을 찾아준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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