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북리뷰] 성공회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

마크 채프먼 지음, 주낙현 옮김, 『성공회 - 역사와 미래』 (비아, 2014)

▲『성공회 - 역사와 미래』 겉 표지.
‘성공회’(Anglican Church)는 낱말 뜻 그대로 영국 교회다. 성공회는 대륙과는 다르게, 전적으로 영국적 전통에 따라 개혁의 길을 걸어왔다. 성공회가 종교개혁 전통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영국이 유럽 대륙에서 차지하는 지리적 입지만큼이나 독특하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기독교인 사이에 성공회 교회에 대한 이해도는 높지 않다. 기자가 직접 겪은 일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출석하는 교회로 화제가 옮겨갔다. 이 지인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을 대형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신앙에 대한 자부심은 남달랐다. 기자가 성공회 교회에 다닌다고 하자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곳엔 예수가 있나요?”  
이 지인이 평신도라면 모르겠다. 이 지인은 목회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던 신학도였다. 이런 사람에게 “성공회에 예수가 있냐?”는 물음을 받자 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성공회는 분명 교회사는 물론 세계사를 통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리고 신학교에서도 교회사를 가르칠 텐데 왜 이런 어이없는 질문을 하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성공회를 아는 분의 이해도도 사실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들은 성공회하면 영국 왕 헨리 8세가 이혼하기 위해 만든 교회라는 대답을 내놓기 일쑤다. 최근 개신교 교회에 대한 염증이 팽배하면서 성공회 교회가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따로 언급하겠지만, 최근 유명 교회를 다니다 견진성사를 받고 성공회 교인으로 정착한 사람들이 날로 느는 추세다. 이 같은 추세임에도 성공회에 대한 이해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 비추어 볼 때 마크 채프먼의 『성공회 - 역사와 미래』는 우리에겐 아주 의미 있는 저작이다. 잉글랜드 성공회 사제이자 옥스퍼드 커드스턴 리펀 칼리지의 학장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적 맥락에서 성공회를 조명한다. 책의 분량은 260쪽 정도로 읽기에 부담이 없다. 저자는 단행본 한 권 분량에 성공회의 태동부터 신학적 논쟁, 그리고 세계 성공회의 성립과 미래를 차분하게 풀어 나간다. 책 읽기를 마치고 나면 성공회에 대한 이해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역자인 대한성공회 주낙현 신부는 “이 책은 영어권 신학교와 신자 교육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필독서”라고 전했다. 짤막한 분량 속에 성공회 교회를 관통하는 주제들을 짜임새 있게 배치한 저자의 솜씨는 감탄할 만하다.   
헨리 8세 이혼 위해 생긴 교회가 성공회? 
성공회를 이해하려면 다시금 헨리 8세의 이혼을 끄집어 내야한다. 세계사는 헨리 8세를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헨리 8세는 미남인데다 총명했던 군주였다. 단, 자신의 후사를 이을 왕자의 생산에 유난히 집착했고, 이런 집착이 그를 파멸로 몰고 갔다.   
헨리 8세는 왕자를 얻기 위해 아라곤의 캐서린과의 혼인을 무효로 하고 앤 불린을 왕비로 맞으려 했다. 그러나 혼인 무효는 교황청의 승인이 필요했다. 헨리 8세는 이를 권리 침해로 여겼다.   
“많은 교회 지도자를 포함한 조언자 집단의 영향을 받아 국왕 헨리 8세는 국왕인 자신이 정당하게 갖고 있는 권한을 교황이 침해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론은 단순했다. 세속적 권한과 종교적 권한 둘 다 하느님 아래 있는 왕에게 속한다는 것이다.” (본문 30쪽)  
헨리 8세의 이혼 정책이 성공회 교회 성립에 중요한 계기가 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엔 교황권과 세속권의 힘겨루기가 자리했다는 점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실 교황권과 세속권의 투쟁은 대륙에서 벌어진 종교개혁 전통과도 일맥상통한다. 중세 시대, 교황은 신권과 세속권 모두를 독점했다. 교황의 권력독점은 스콜라 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양검론’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양검론이란 말 그대로 두 개의 칼, 즉 교황은 신권이라는 칼과 세속 권력이라는 칼 두 개를 다 갖고 있다는 뜻이다. 종교개혁으로 신권과 세속권이 분리되면서 근대의 문은 열리기 시작했다.   
단, 영국의 종교개혁에는 대륙과 현저하게 구별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잉글랜드 교회는 대륙에서 일어난 다른 종교개혁의 움직임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개혁의 길을 걸었다. 잉글랜드 교회의 경우, 적어도 그 시작에서만큼은 정치적 권위에 대한 의문이 신학에 대한 의문보다 먼저 나왔다.” (본문 29~30쪽)   
이후 전개되는 성공회 교회사는 교회의 궁극적인 권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고민했던 역사다. 성공회 교회는 이 같은 고민을 통해 종파(Sect)적 성격을 띠어 나갔다. 저자는 이 같은 고민의 전개과정을 영국인 특유의 무뚝뚝하면서도 명료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성공회의 종파적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데 있다. 성공회 교회는 왕의 우월적 권위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 점이 성공회 교회가 군주의 권력유지 도구로 전락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공회 교회는 청교도 혁명, 왕정복고 등을 거치면서 국교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고, 종파적 성격으로 발전해 나갔다. 이 같은 종파적 성격은 18세기에 등장한 복음주의와 19세기에 일었던 옥스퍼드 운동 등의 시대상황에 맞게 진화했다.   
“복음주의가 권위의 중심을 군주와 신권을 받아 제정된 국가라는 기관에서 빼내어 개인의 마음과 성서의 진리로 옮기려 했다면, 옥스퍼드 운동은 초월자인 신이 제정한 가시적 교회에 권위의 자리를 다시 돌리려 했다.” (본문 127쪽)  
독일 신학자 에른스트 트뢸치는 종파에 대해 “상대적으로 작은 집단이며, 개인적이고 내적 완결성을 추구하고 집단 구성원 사이에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친교를 목적으로 한다. 또한 시작부터 작은 집단으로 자신을 구성하려고 하며 세상을 점령하겠다는 생각을 거부한다”고 정의했다. 저자인 마크 채프먼은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잉글랜드 교회의 성격이 트뢸치의 종파에 대한 정의에 잘 부합한다고 적는다. 
“교회(Church)와 종파(Sect)라는 유형을 나누어 종교 집단 연구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트뢸치는 자신의 모든 저작에 ‘확연한 결핍’이 있음을 알았다. 그는 어떤 식으로도 잉글랜드 교회를 연구해 본 적이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가 잉글랜드 교회를 다루었다면 자신의 권위 있는 저서 『그리스도교 교회들과 집단들의 사회적 가르침』에서 전개한 주장이 더 큰 힘을 얻었을 것이다.” (본문 8쪽)   
앞서 언급했듯 기성 교회에 염증을 느끼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성공회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기자에게도 수시로 성공회 교회의 신앙생활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같은 분위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성공회는 한 해 두 차례, 즉 부활절과 성탄절에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시행한다. 지난 해 12월 성탄절에는 총 34명이 견진성사를 받았는데, 이 가운데 29명이 타교파에서 성공회로 적을 옮긴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 숫자는 계속 늘 전망이다. 
그러나 정작 성공회의 역사라든지 전례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실정이다. 혹자는 전례가 가톨릭의 냄새(?)가 난다고 하고, 또 혹자들은 크기를 불리기 위해 기존 교회의 찬양예배를 도입해야 한다고도 한다. 이 같은 목소리가 무지에 기인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성공회가 종교개혁 전통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 그리고 교회의 종파적 성격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목소리는 여전히 성공회 교회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밖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특히 ‘크기’에 대한 강조는 한국교회에 만연한 성장주의가 성공회에도 침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자아내게 한다.   
성공회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여정 가운데 놓여 있는 작은 집이다. 가톨릭의 전례를 간직하면서도, ‘크기’보다 공동체성, 그리고 교회의 궁극적인 권위를 늘 고민하는 교회가 바로 성공회라는 말이다. 진정으로 성공회 교회를 알고 싶고, 이 교회에서 자신의 신앙을 가꾸고 싶다면 이제껏 소개한 마크 채프먼의 『성공회 –역사와 미래』 일독을 권한다. 기자는 특히 “성공회에 예수가 있냐?”는 식의 무지로 충만한 질문은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  
“성공회 정체성에 대한 가장 대중적인 표현을 들자면 그 대표상품은 너무 개신교적이지도 않고 너무 천주교적이지도 않은, 그 사이의 중간을 이르는 말인 ‘비아 메디아’(Via Media)일 수 있다.” (마크 채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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