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리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표현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먼저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외압 논란은 급기야 부산영화제의 존립을 뒤흔드는 양상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 해 10월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에 대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작품을 상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외압 논란의 불을 지폈다. 논란은 올해 1월 부산시가 이용관 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자진사퇴를 압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증폭됐다.   

이 와중에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지난 2월 초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제29조 1항 단서조항 ‘영화상영등급분류 면제 추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현행 규정은 영진위나 정부, 지자체가 주최·주관·지원·후원하는 영화제 등의 경우 영화상영 등급 분류를 면제받는다. 그러나 영진위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9인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상영이 가능하도록 영비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영화 <다이빙벨> 시사회에서의 안해룡 감독(사진 우) ⓒ사진=지유석 기자

영화계는 이 같은 조치를 사실상의 검열이라고 보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다이빙벨>의 공동 연출자인 안해룡 감독은 “한 영화제에 300-400편의 영화가 출품되는데 소수로 구성된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건 영화제를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올드보이>, <박쥐>, <친절한 금자씨> 등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3월10일(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해외의 많은 영화제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간섭이 있는 영화제라면 누가 가려고 하느냐”면서 “난 문제가 되는 영화가 걸러지는 영화제에 걸리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영화제에 초청되고 추천되는 것 자체가 모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현지시간으로 2월22일(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면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배우 닐 패트릭 해리스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의미 깊은 장면이 연출됐다.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상은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를 그린 <시티즌포>(원제: Citizenfour)가 차지했다. 잘 알려진 대로 스노든은 미 국가안보국(NSA)의 불법 도감청 행위를 폭로한 전직 CIA 컴퓨터 보안기술자다.   
가늠할 수 없는 파장 몰고 온 스노든 폭로 
스노든은 2013년 6월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NSA가 ‘프리즘(PRISM)’이란 도·감청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6만 1,000건이 넘는 해킹을 감행했다. NSA는 프리즘으로 당신의 전자메일이나 부인의 전화기록 등 그 어떤 것이든 가로챌 수 있다”고 폭로했다.  
스노든의 폭로가 몰고 온 여파는 엄청났다. 무엇보다 스노든이 세상 밖으로 가져온 비밀파일들은 <펜타곤 페이퍼>나 <위키리크스> 등 한 바탕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밀문서들과 급이 달랐다. <가디언>지의 델리, 베를린, 모스크바 지국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했으며 가장 최근엔 모스크바 지국장을 지냈던 베테랑 언론인인 루크 하딩은 자신의 책 『스노든의 위험한 폭로』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2010년 런던에서 <가디언>이 보도한 위키리크스 폭로 문건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빼낸 미국 외교 전보문건과 전시 군수기록으로 미육군 일병 첼시 매닝이 유출한 것이었다. 이중 단 6퍼센트만이 비교적 중간등급인 ‘극비’로 취급되는 문서였다. 스노든 파일은 수준이 달랐다. ‘일급비밀’ 또는 그 이상이었다. 예전에 케임브리지에서 교육받은 스파이, 버지스, 매클린, 필비가 변절해 소련 모스크바로 망명한 멜로드라마 같은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 아찔한 수준의 대량문서 누출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본문 150쪽)  
스노든의 폭로가 미친 파장은 또 있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사실 NSA의 불법 도청은 이전 정권에서도 공공연히 자행됐던 관행에 불과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9년 “미 정부는 별도의 영장이 없어도 통신사업자의 협조를 얻어 외국인들의 통화 내용 및 이메일, 인터넷 등을 감시할 수 있으며, 미국 내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은 특별법원의 영장을 받아 감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해외정보감시법(FISA) 수정안에 서명했다.   
▲스노든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로라 포이트러스의 영화 <시티즌포> 포스터.

이에 비해 오바마는 차별화를 꾀했다. 그는 연방 상원의원 후보자였던 2003년 “미 정부는 테러 수사를 위하여 상당한 근거가 없이도 미국 국민의 서류나 소유물을 수색·압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애국자법>을 “조잡하고 위험하다”고 평가하면서 폐기를 약속했다. 2007년 대선 후보자 시절엔 “부시 행정부는 우리가 아끼는 자유와 우리가 제공하는 안보 사이에 잘못된 선택을 강요한다”면서 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노든의 폭로로 프리즘의 실체가 드러나자 오바마는 말을 바꿨다.   
그는 2013년 6월 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 정부의 관심사는 견제와 균형을 기할 시스템의 확립”이라면서 “미국인들은 NSA의 감청 프로그램이 미국은 물론 세계 도처에서 이뤄지는 테러음모를 저지했다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 정부는 법원의 영장 없이 미국인들의 전화를 감청하고 있지 않다”고 강변했다. 이런 입장은 전임자의 입장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를 의식한 듯 미국 유력일간지인 <뉴욕타임스>지는 사설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은 2007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감시 정책을 ‘개인의 자유와 안보 사이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라고 평가한 사실을 잊은 모양”이라고 질타했다. 온라인 매체인 <허핑턴포스트>지는 자사 웹사이트 메인화면에 ‘조지 W. 오바마’라는 제하의 톱기사를 띠워 오바마를 비꼬았다.   
위협 받는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 위기로 직결 
스노든은 오바마 정부에겐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다. 실제 미국 정부는 스노든을 체포하기 위해 그의 여권을 말소시키는 한편 각국 정부를 압박해 그의 망명시도를 차단했다. 그럼에도 아카데미는 스노든을 다룬 다큐멘터리 <시티즌포>에 오스카 트로피를 안긴 것이다.   
아카데미는 소위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보수성향이 강하고, 때론 백인 위주의 잔치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그런 아카데미가 정부에 불편한 메시지를 담은 다큐멘터리에 오스카 트로피를 선사했다는 점은 무척 시사적이다. <시티즌포>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먼저 예술이 정치 논리에서 독립적이고, 보다 근본적으로 미국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과시한 셈이다.   
<시티즌포>를 연출한 로라 포이트러스는 환하게 웃으며 오스카 트로피를 받아 들었다. 스노든을 인터뷰했던 <가디언> 소속 프리랜서 기자인 글랜 그린월드도 함께 무대에 올랐다. <다이빙벨>로 인해 부산영화제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 우리로선 부럽기만 한 일이다.   
부산영화제 외압 논란, 그리고 영진위위 검열 논란은 본질에선 하나다. 즉,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는 영화는 아예 상영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다이빙벨> 외압 논란을 일으킨 서병수 부산 시장이 소위 ‘친박’ 계열 인사라는 점은 외압의 저의를 더욱 의심스럽게 한다. 
<시티즌포>의 연출자 로라 포이트러스는 수상소감을 통해 “정부의 감청행위는 사생활은 물론 민주주의에도 위기”라며 오바마 정부를 향해 돌직구를 날렸다. <다이빙벨>의 안해룡 감독도 최근 일고 있는 논란에 대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 시간을 거꾸로 돌리겠다는 시대착오적 행위”라고 일갈했다. 이 대목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스노든은 현재 러시아에 망명 중이다. 그는 현지시간으로 3월3일(화) “합법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받는다는 보장이 있다는 조건 아래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가 돼 있다”라며 조건부 귀국의사를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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