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장스케치] 참사 추모열기에 찬물 끼얹은 공권력

“4.16 약속의 밤” 추모 문화제,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의미 퇴색

▲16일(목)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월호 추모 문화제 “4.16 약속의 밤” 행사가 열린 가운데 유가족들의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오열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16일(목)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월호 추모 문화제 “4.16 약속의 밤” 행사에서 진행된 세월호 인양 퍼포먼스. ⓒ사진=지유석 기자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4월16일(목)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는 ‘4.16 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주최로 참사 1주기 추모와 행동을 위한 “4.16 약속의 밤”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이번 행사엔 광장이 꽉 찰 정도로 시민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러나 경찰은 차벽으로 시민들의 행진을 막아 추모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문화제는 차분한 분위기 가운데 진행됐다. 문화제 오프닝에선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보낸 1년의 시간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영상을 본 유가족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마침 행사장엔 박원순 시장의 모습이 보였다. 박 시장은 오열하는 유가족을 위로했지만 그것으로 유가족의 눈물을 멎게 하지는 못했다. 
이날 오후 유가족들은 추모식을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기존에 입법 예고한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시행령안’ 철회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에 유가족들은 추모식을 취소했다. 이런 탓인지 문화제에 나온 유가족들의 표정은 다소 침통해 보였다. 가족협의회 전명선 위원장도 “희생된 아이들 앞에 미안한 부모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는 심경을 내비쳤다. 
추모제 이후 유족과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이러자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경찰은 먼저 경찰버스로 청계천로와 광화문로를 차단했다. 이어 장벽을 설치하고 행진을 막았다. 시민들과 유족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이들은 경찰을 향해 “무엇이 두려운가?”라고 외쳤다. 그리고 청계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사전 신고 되지 않은 불법집회다. 경찰차량 훼손은 현행범으로 연행 대상이다”는 방송만 되풀이 하며 막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차벽 뒤편 지휘관들은 “장벽 잘 만들어놨어, 아무도 못 넘어와”라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태평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6일(목)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월호 추모 문화제 “4.16 약속의 밤” 행사가 열린 가운데 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 방면으로 행진하려 했으나 경찰은 차벽을 동원해 행진을 가로 막았다. ⓒ사진=지유석 기자
▲16일(목)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월호 추모 문화제 “4.16 약속의 밤” 행사가 열린 가운데 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 방면으로 행진하려 했으나 경찰은 차벽을 동원해 행진을 가로 막았다. ⓒ사진=지유석 기자

이날 경찰은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은 불허하되 광화문 광장까지는 허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은 추모 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이 태평로 일대를 행진하자 청계천 방면에서 아예 막았다. 또 광화문 광장도 경찰 버스를 동원해 막아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헌화 중이던 시민들을 고립시켰다. 
시민들의 손에 들린 것은 추모의 의미를 담은 흰 국화꽃 한 송이였다. 몇몇 시민들은 ‘진상규명,’ ‘세월호 선체 인양,’ ‘시행령 철회’ 등의 구호가 담긴 손 팻말을 들기도 했다. 무장한 시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은 이렇게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시민들을 1만 여명의 병력과 수십여 대의 차량으로 막은 것이다. 심지어 경찰은 청계천으로 통하는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입구에까지 병력을 배치해 지나는 시민들을 통제했다.  
1년 전, 세월호가 맹골수도에서 침몰했을 당시 구조 책임을 맡은 해경은 수수방관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정부를 향해, 혹은 대통령을 향해 자신들의 억울함과 진상규명을 호소하려 했을 때, 경찰은 비상한 정보력을 동원해 유가족들의 발걸음을 막아섰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4월16일, 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보여준 모습은 1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날 추모 문화제엔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눈에 띠었다. 자라나는 학생들이 본연의 임무는 방기한 채 권력 지키기엔 일사불란한 경찰의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사뭇 궁금한 세월호 참사 1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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