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단원고 2학년 3반 故 유예은 양은 아빠와 엄마를 따라 교회를 다니던 아이였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딸은 먼저 아빠, 엄마 곁을 떠났다. 전도사이던 엄마와 아빠는 떠나간 딸이 왜 그렇게 떠나야 했는지를 알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래서 예은이 가정이 다니던 안산 화정교회 박인환 목사에게 세월호 참사 1주기는 남다르다. 박 목사는 세월호 참사 1주기 당일인 4월16일(목), 먼저 떠난 예은이에게 편지를 띠웠다.
▲안산 화정교회 박인환 목사. ⓒ베리타스 DB |
먼저 하늘나라로 간 예은이에게
벌써 1년이 되었구나.
작년 오늘, 목사님은 어찌할 바를 몰랐어. 몸도 마음도. “배 안에서 가만히 대기하라”는 멘트를 TV를 통해서 들으면서 귀를 의심했지.
바다도 잔잔하고 승객들은 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왜 그 사람은 배 안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을까? 목사님은 지금까지 그 때 네게 “빨리 나와서 바다로 뛰어들어라”하고 전화를 못한 것이 후회되고 괴롭다. 굳이 핑계를 댄다면 “가만 있으라”고 방송한 선원이 뭔가 계획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럴 거라고 믿었던 거지. 내가 전화를 하는 것이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였었어.
모든 게 후회되고 남는 것은 아쉬움과 괴로움이구나.
예은이는 항상 잘 웃고 긍정적이고 착한 아이였지. 특히 너는 고은 선생님을 잘 따랐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뭔가를 제안하면 항상 제일 먼저 손을 들고 “선생님 그렇게 하면 좋겠어요” 하고 말하곤 하였다고 고은선생님이 말하더구나.
예은아, 엄마와 아빠는 지난 1년 동안 투사가 되었단다. 그렇게 얌전한 엄마와 항상 말수가 적던 아빠가 투사가 되었다. 그것은 오직 하나, 내 예쁜 딸이 왜 그렇게 어이없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는지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한 것 아닐까?
그런데도 세상의 못된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은 희생자유족들을 교묘하게 소외시키고 짓밟고 있단다. 자기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무서운 모양이다.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이 희생자유족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는 답답한 세상이야.
예은아, 엄마와 아빠는 자랑스러운 분들이다. 엄마와 아빠가 우리교회 교인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야. 너를 먼저 떠나보낸 엄마 아빠의 마음은 누구도 짐작할 수 없으리만치 아플꺼야. 그러나 그런 형편에서도 네 엄마와 아빠는 네 친구들의 부모들을 위로하며 그 힘을 모으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힘쓰고 있단다.
목사님은 그저 곁에서 기도할 뿐, 별로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하여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 예은이가 청소년부 회장을 하면서 친구들과 비누를 만들어 ‘바하밥집’을 찾는 노숙자들에게 나누어드린 것이 너의 마지막 선행이었구나. 그것을 생각할 때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지난 2월 15일에는 네 친구들이 노란비누를 만들어 안산지방회에 참석한 회원들에게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해주세요”라는 글귀를 붙여 나누어 드렸단다.
화정교회의 네 친구들과 선후배들, 그리고 화정교회의 모든 어른들은 너를 잊지 않고 지금도 기도하고 있어. 그리고 목사님도 작은 힘이지만 열심히 진상규명촉구 서명도 받고, 진실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단다.
네가 친구들과 뛰어놀던 교회마당은 여전히 꽃으로 가득하단다. 그런데 작년에 족구장 한 켠의 느티나무가 한 그루 죽었어. 죽은 느티나무를 뽑고 그 자리에 목련을 옮겨 심었단다. 4월에 활짝 피었다가 금방 떨어져버리고 마는 목련꽃이 꼭 지난 해 4월 16일에 먼저 하늘나라로 간 예은이와 친구들 같다는 생각을 하였지. 해마다 목련이 필 때면 그 꽃은 바로 예은이와 예은이의 친구들로 생각할게.
예은아, 훗날 주님 품 안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2015.4.16.
화정교회목사님이 예은이를 그리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