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리뷰] 부러진 화살, 부러진 권위

정지영 연출, 안성기 주연 <부러진 화살>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스틸컷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은 2012년 새해 최고의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작품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그해 1월 발표한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결과에 따르면, 개봉 당일에만 관객 3만203명을 모아 헐리웃 애니메이션 <장화 신은 고양이>(4만 6,136명), 황정민·엄정화 주연의 <댄싱퀸>(4만 5,779명)에 이어 3위로 출발했다. <부러진 화살>은 비슷한 시기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첩보 액션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2만 5,752명), 김명민 주연의 <페이스메이커>(2만 2,364명)를 제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부러진 화살>의 개봉관은 전국을 통틀어 245개, 제작비는 고작 15억 원에 불과했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경쟁작들이 400개관 안팎에서 상영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선전이 아닐 수 없다. <부러진 화살>의 흥행몰이는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주도했다. SNS를 통해 입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전국 상영관을 한눈에 정리한 도표가 올라오기도 했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이지도 않았고,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한 스타를 기용한 것도 아닌 영화가 이토록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와 연기의 상승작용
<부러진 화살>의 첫 번째 강점은 바로 재미다. 상영시간이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지만, 영화가 주는 유쾌함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 영화는 법을 소재로 한 법정 드라마다. 법정 드라마는 치열한 법리다툼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마련이어서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영화 역시 법정 드라마 특유의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연출자인 정지영 감독은 중간 중간 유쾌함을 곁들이는 센스를 발휘한다. 또 주연 배우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조롱조의 대사는 맛깔스럽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스틸컷

주연을 맡은 안성기와 특별출연한 문성근의 연기도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안성기는 꼼꼼한 원칙주의자인 김경호 교수 역할을, 문성근은 권위의식으로 똘똘 뭉친 신재열 판사역할을 맡아 연기대결을 펼친다. 영화 속 김 교수는 법전을 끼고 다니면서 재판부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법에 근거에 재판부에 이런저런 요구를 하고,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재판부를 고발하기까지 한다. 김 교수의 까탈스러움에 변호인들조차 혀를 내두른다. 사법부는 신재열 판사를 기용해 그에 맞선다. 신 판사는 법조계에서도 알아주는 원칙주의자다. 김 교수의 정교하고 집요한 공세를 하나하나 무력화시켜 나간다.
이렇듯 김 교수와 신 판사의 캐릭터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상극의 캐릭터가 충돌하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묘미다. 각각 김 교수와 신 판사를 연기한 안성기와 문성근은 2006년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에서도 각각 자주외교를 표방하는 대통령(안성기)과 친일노선을 주장하는 국무총리(문성근) 역할을 맡아 대립적인 캐릭터의 갈등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박원상, 김지호, 이경영 등 조연들도 탄탄한 연기력으로 주연배우들을 뒷받침한다.
석궁테러 사건의 전말
재미도 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그러나 영화의 인기몰이를 설명하는 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관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가장 큰 요인은 부조리한 현실에 있었다. 
영화가 다루는 소재는 지난 2007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석궁테러사건’이다. 간략하게나마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자.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였던 김명호 교수는 입학 본고사에서 오류가 있었음을 발견하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김 교수를 임용에서 탈락시켰다. 이러자 김 교수는 “부당하게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며 복직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박홍우 부장판사)는 “재임용 탈락자체가 확실히 부당하다고 하기엔 부족하다”는 취지로 패소판결을 내렸다. 판결에 격분한 김 교수는 선고 3일 뒤 부장판사였던 박 판사를 찾아가 그에게 석궁을 들이댔다.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이른바 ‘석궁테러’ 사건이었다. 
석궁테러 사건은 김 교수가 박 판사를 겨누고 석궁을 발사했는지의 여부, 그리고 박 판사가 이로 인해 실제 상해를 입었는지의 여부가 핵심쟁점이었다. 당시 재판에서는 박 판사가 입었던 내의와 자켓엔 혈흔이 있었는데 와이셔츠엔 없었고, 이에 대해 재판부가 혈흔감정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게 재판인가? 개판이지!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스틸컷

영화는 석궁테러 사건을 사실에 충실하게, 동시에 아주 코믹하게 재구성한다. 연출자인 정지영 감독은 “르포 소설 『부러진 화살』과 공판 기록을 읽어보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영화는 사실과 다른 게 없다”고 밝혔다. 영화가 그리는 법정은 우스꽝스럽다. 사실을 그대로 재현했음에도 우스꽝스러운 이유는 사실 자체가 우스꽝스러워서였다.
재판부는 이미 개정 이전부터 사건을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규정해 놓고 있었다. 그래서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증거는 물론, 피의자가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마저 거부했다. 처음엔 언론도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 교수 사건은 언론에서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 힘이 개입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모든 상황이 불리해지자 김 교수는 기자들에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내뱉는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불행하게도 <부러진 화살>이 그린 법정의 부조리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판결결과에 격분해 판사에게 석궁을 들이댄 행위를 무조건 옳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분명 논란거리다. 법원이 김 교수가 석궁을 집어든 한 원인을 제공해 줬다고 볼 수도 있어서다. 더욱 근본적으로 사법부는 ‘권위’만을 내세워 김 교수를 마녀사냥 하듯 단죄했다. 한 개인의 법익을 박탈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다뤄져야 했다. 동시에 피고인의 법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고, 증거에 입각한 법리공방이 오갔어야 했다. 실제 김 교수가 박 부장판사를 향해 화살을 쏘았느냐는 재판의 쟁점이었다. 그러나 재판은 이런 기초적인 쟁점조차 다뤄지지 않고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스틸컷

이미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헌법기관에 대한 불신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이런 불신은 헌법기관이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한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사법정의는 파산을 선고해야 할 지경이다. 적어도 힘없는 일반 국민들은 법 앞에서 만큼은 평등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자의적 법집행, 지나치게 정치화된 검찰, 전관예우 관행 등등 사법부의 작동 방식은 국민적 염원을 무색케 한다. 
단순한 재미 때문에 대중들이 <부러진 화살>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언로(言路)가 막혔을 때, 풍자와 해학은 단순한 웃음유발의 차원을 넘어 억눌린 민초들의 울분을 해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부러진 화살>은 청량제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가 일으킨 반향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부디 법복을 근엄하게 차려 입고 계신 판·검사 나으리(?)들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재판 준비에 여념이 없으신 분들이라 영화 볼 시간이 많이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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