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겉 표지. |
<본 얼티메이텀>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정보기관의 가공할 감시망은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현실세계에서 이뤄지는 정보기관의 도감청은 영화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이 같은 사실은 전직 미 국가안보국(NSA) 보안전문가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만천하에 알려졌다. 이제 소개할 글렌 그린월드의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원제: No Place to Hide)는 스노든이 폭로한 정보기관의 도감청 실태,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긴박했던 순간의 기록이다.
우선 구성을 살펴보자. 구성은 1장 - 접선 / 2장 - 홍콩에서의 10일 / 3장 - 전부 수집한다 / 4장 - 감시의 해악 / 5장 - 제4계급 / 에필로그 등 총 다섯 개 장이 전부다. 전반부는 저자인 글렌 그린월드가 스노든과 접촉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기사화했던 과정에 대한 서술이다. 후반부는 스노든이 폭로한 정보기관의 감청 실태, 그리고 언론의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다. 전체적인 흐름은 무척 자연스럽다. 또 치밀하고 세련된 문장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책에 적힌 글귀들을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다 보면 흡사 <본 얼티메이텀> 같은 첩보영화를 방불케 할 만치 긴장감이 넘친다. 또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는 마지막 장에서는 저자의 비판적 지성이 돋보인다. 저자는 스노든이 먼저 접촉해왔다고 밝혔다. 전체적인 짜임새와 문제의식, 문체 등등을 볼 때 스노든의 선택은 탁월했다.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볼 차례다. 이 책은 첫 장부터 흥미를 끌게 한다. 특히 스노든이 저자에게 접근한 과정이 그렇다.
“2012년 12월1일, 나는 처음으로 스노든의 연락을 받았다. 이 당시만 해도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몰랐다. 자신을 킨키나투스라고 한 누군가에게서 온 이메일이었다. 킨키나투스는 기원전 5세기 로마의 농부였던 루시우스 퀸티우스 킨키나투스에서 딴 이름이다. (중략) 이메일은 ‘제겐 통신 보안이 매우 중요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또한 내가 관심을 보일 것이 확실한 내용을 PGP 암호화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할 수 있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밝혔다. ‘매우 좋은 프라이버시(pretty good privacy)’를 뜻하는 PGP는 1991년에 개발되었고, 이메일을 비롯해서 온라인 통신을 감시와 해킹으로부터 막는 정교한 툴로 발전했다.” (본문 19쪽)
스노든은 저자와 접촉할 때 보안에 상당히 신경 썼다. 이 같은 행동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부의 치부를 폭로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먼저 정보기관의 그물망 같은 감시망을 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CNN,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같이 미국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언론이 많다. 실제 <워싱턴포스트>는 스노든이 NSA의 감청실태를 폭로할 것이란 첩보를 입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노든은 유력 언론사들을 마다하고 글렌 그린월드,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로라 포이트러스를 택했다. 왜 그랬을까?
“제보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로라가 NSA 문서 중 일부에 관해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바튼 겔먼과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이었다. 해당 문서는 프리즘(PRISM)이라는 프로그램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프리즘은 NSA가 페이스북, 구글, 야후, 스카이프를 비롯한 세계 최대 인터넷 회사들로부터 사용자의 사적인 통신을 수집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이야기를 신속하고 공격적으로 보도하는 대신 대규모 법률 팀을 꾸렸고, 해당 법률팀은 온갖 종류의 요구와 무시무시한 경고를 했다. 이런 행동은 제보자가 보기에, 언론으로서 전례 없는 기회로 생각되는 정보를 받은 <워싱턴포스트>가 확신과 결단이 아니라 두려움에 따라 움직인다는 신호였다. 또한 <워싱턴포스트>는 너무 많은 사람이 관여하게 해서 제보자 자신을 위험에 빠트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게 했다.” (본문 33~34쪽)
스노든은 <워싱턴포스트> 같은 유력 언론이 자신의 폭로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그의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왜 저자를 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 이쯤해서 글렌 그린월드가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린월드는 인권 변호사로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그곳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며 미국 정부의 비밀주의, 극단적 집행권 이론, 감시와 감금의 남용, 군국주의, 인권침해 행태를 고발했다. 스노든은 그가 쓴 글을 구독하며, 자신의 폭로를 세상에 알려줄 사람으로 선택한 것이다. 아래는 그린월드가 공개한 스노든과의 접선 내용이다.
“제보자가 말했다. ‘지금 진행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프리즘에 관한 보도를 하고 기자님은 더 폭넓은 자료, 특히 대규모 국내 감시에 집중하실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자님이 이 문제를 꼭 보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동안 쓰신 글을 읽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이 문제를 알려주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답했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할 일을 결정하시죠.’” (본문 34쪽)
가공할 실체 드러낸 NSA
스노든이 공개한 정보기관의 실태는 경악이라는 표현조차 초라하게 만들었다. NSA의 도·감청망이 전 세계에 뻗어 있으며, 미국 정부는 NSA가 빼낸 자료를 고유영역인 국가안보는 물론이고, 경제, 외교 등 전방위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이 스노든의 폭로로 드러났다. 더구나 NSA가 ‘프리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미국인들의 통화를 ‘전부’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의 강도를 더한다.
“예컨대 2013년 3월8일부터 한 달간 NSA 조직 중 한 곳인 글로벌 접근운용 부서는 미국 통신 시스템을 통과한 30억 건 이상의 전화통화와 이메일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런 수치는 러시아, 멕시코, 그리고 사실상 유럽 국가 전체에서 수집한 양을 초과하고, 중국에서 수집한 양과 거의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이 시스템은 단 30일간 전 세계에서 이메일 970억 건과 전화 통화 1,240억 건 이상을 수집했다. 또 다른 국경 없는 정보원 문서는 30일간 독일에서 5억 건, 브라질에서 23억 건, 인도에서 135억 건을 수집한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한 각국 정보와 협조해서 수집한 메타데이터 수치도 제시했는데, 프랑스가 7,000만 건, 스페인이 6,000만 건, 이탈리아가 4,700만 건, 네덜란드가 180만 건, 노르웨이기 3,300만 건, 덴마크가 2,300만 건에 달했다. NSA는 법이 규정한 외국 정보 수집에 초점을 맞췄지만, 문서는 미국인도 똑같이 비밀 감시의 주요 목표였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본문 143~144쪽)
NSA는 1952년 창설 후 지금까지 비밀에 가려져 있었다. 미 고위 관리들은 ‘그런 기관은 없다(No Such Agency)’며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스노든의 폭로가 몰고 온 가장 강력한 파장 가운데 하나는 NSA의 일단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NSA는 공식적으로 국가 기관이지만 민간 기업과 수입이 중첩되는 제휴를 하고, 여러 핵심 기능을 외부에 위탁한다. 약 3만 명의 자체 요원 외에도 민간 기업의 고용인 약 6만 명과 계약을 맺고 있으며, 이들은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를 수시로 제공한다.” (본문 153쪽)
파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노든은 오바마 대통령을 정조준 했다. 그는 한 때 잘 나가던 CIA 요원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정부의 권력 남용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오바마의 집권은 한 가닥 희망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고, 결국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그린월드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권력 남용의 관행을 유지할 뿐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례에서 점점 더 확대시키고 있다는 게 분명해졌어요. 한 지도자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본문 70쪽)
치부가 드러나자 미국 정부는 즉각 보복에 나섰다. 스노든의 여권을 말소시키는가 하면, 제3국으로 망명하지 못하도록 각국에 압력을 넣었다. NSA의 문서를 보도한 그린월드에게도 공격이 가해졌다. <뉴욕타임스>, <페이스 더 네이션> 등 미국의 주류 언론들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왜 언론이 정부의 역할을 대신할까? 이에 대해 그린월드는 미국 언론이 정치권력과 한 몸이 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 같은 진단은 스노든이 주류 언론을 마다했던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미국 주류 저널리즘은 아웃사이더가 결코 아니다. 국가의 지배적인 정치권력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다.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한 몸이고 같은 존재다. 부유하고 유명한 내부인인 저널리스트는 아낌없이 보상해주는 현 체제를 전복시키기를 원하지 않는다. 모든 과거의 신하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체제를 변호하려 하고, 체제에 도전하는 사람은 누구든 경멸한다.” (본문 306~307쪽)
스노든은 현재 러시아에 망명 중이다. 그는 지난 3월 ‘합법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전제로 미국 귀환의사를 밝혔다. 그린월드는 그가 “자신의 폭로에 사람들이 무관심하고 냉담하게 반응하는 상황”을 가장 염려했다고 전했다. 목숨을 건 폭로는 헛되지 않았다. 그가 미국 귀환의사를 밝힌 이유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자신감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추측해 본다.
“사실, 현재진행형인 이번 사태의 효과는 사람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크고 오래가고 더 폭넓었다. 전방위적인 국가 감시와 만연한 비밀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에 초점이 맞춰졌다. 디지털 시대에 개인 프라이버시의 가치에 관한 전 세계적인 논쟁에 처음으로 불을 댕겼고, 인터넷에 대한 미국의 지배적인 통제에 대한 도전도 촉발시켰다. 전 세계인이 미국 관리가 한 발언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방식을 바꿔놓았고, 국제 관계도 탈바꿈시켰다. 정부 권력에 관한 저널리즘의 적절한 역할에 대한 태도도 급격하게 바꿔놓았다. 또한 감시국가의 의미 있는 개혁을 지속적으로 요구함으로써 미국 내에서 사상적으로 다양하고, 당파를 초월한 연합을 만들어냈다.” (글렌 그린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