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신경숙 작가의 표절로 문단이 떠들썩하다. 표절로 말하자면 기독교 출판계도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와중에 활발히 표절문제를 제기해 왔던 이성하 목사가 돌연 활동을 중단했다. 이른바 ‘출판권력’의 벽 앞에 막힌 것이다. 이에 대해 제자도연구소 황정현 목사는 <어느 내부고발자의 죽음>을 통해 이 목사의 활동중단에 유감을 표시한다. 그러면서 내부고발자를 죽이는 교회의 살풍경을 꼬집는다. 황 목사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는다.
어느 내부고발자의 죽음
▲제자도연구소 황정현 목사 ⓒ사진=페이스북 |
또 한명의 내부고발자가 죽었다. 사회적 학살이다. 홀로, 아무 배경 없이 기독교 출판계에 만연한 표절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분연히 저항하다 결국 그들의 더러운 패악질에 사회적 죽음에 이르렀다.
이성하 목사는 교계의 메이저 출판사와 거물급 교수까지 손을 댔고, 결국 그들의 수작에 의해 그동안 운영하던 페이스북 그룹 <표절반대>를 폐쇄하고, 본인의 개인계정도 차단한 채 칩거 중이다.
김지찬, 송병현, 이필찬, 이한수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이들이 표절 시비에 걸렸다. 이목사가 제시하는 자료는 삼척동자가 봐도 알만한 명백한 표절이었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빠져나갈 수 없는 받아쓰기 수준의 조악한 표절이었다. 허나 <국제제자훈련원>, <생명의말씀사> 등의 메이저 출판사가 개입되어 있는 현실 앞에 쉽게 더 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않았다. 부역자들의 물타기도 계속 되었다.
결국 어느 날 이 목사는 돌연 자신의 개인사정으로 모든 작업을 중단하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그룹을 폐쇄했다.
사회가 성숙되기 위해서는 ‘내부고발자’ 문제에 대한 바른 인식과 태도가 필요하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식의 논리로는 안 된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주장이 객관적 사실에 근거했는가를 따져 묻고 그 내용이 옳다면 적잖은 희생을 치르더라고 사회의 부패를 도려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사회는 소위 ‘갑의 논리’에 휘둘려 그들이 던져주는 ‘프레임’에 갇혀 내부고발자를 판단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는 것이다. 늘 그래왔다. 언제나 피해자의 고통에서 비롯된 원망과 하소연은 가해자의 갑질로 둔갑되어 있었다.
“왜, 내부고발이 불가피했겠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자정능력이 사라진 내부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무지한 외부로서는 알 수 없는 경우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폭로’뿐이다. 내부의 사정을 아는 이가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허나, 그 폭로 자체를 불의한 것으로 몰아가는 자들에 의해 결국 내부고발자는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이성하 목사. 한 개인으로 너무 많은 것을 해냈다. 원문 자료를 찾아 일일이 대조하고, 물 타는 이들과 싸워가며 여기까지 왔다. 이 정도 표절의 정황이 드러난 상황에도 변화가 없다는 것이 한국교회의 부패 정도를 보여준다. 참람할 수준이다. 성완종의 죽음과 명백한 불법의 정황에서 정치권이 침묵을 지키는 카르텔을 이곳에서도 목격한다.
충분히 수고했다.
이제는 안식하시라. 우리 모두의 영웅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