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일) 동성애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그 시각, 시청으로 몰려온 일부 기독교인들이 동성애 반대를 외치며 통성 기도를 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
6월28일(일) 퀴어 문화축제가 치러진 서울광장은 축제의 도가니였다. 특히 이날은 기독교계의 대규모 맞불집회가 예고돼 있어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이런 긴장감이 무색하게 축제는 성황리에 진행됐다.
이날 분위기는 퍼레이드에서 정점에 올랐다. 혹시나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이미 경찰은 대한문에서 맞불 집회를 하던 기독교인과 충돌이 없도록 적극 개입하고 있었다.
불상사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시청 광장을 출발한 행렬이 국가인권위원회를 거쳐 을지로로 향했고, 이 과정에서 사소한 마찰은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퍼레이드는 축제 분위기 가운데 이뤄졌다.
극력 저지하려던 퍼레이드가 성황리에 펼쳐져서 그랬을까? 일부 기독교인들은 시청으로 몰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자리를 잡고 앉아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했다. 몇몇은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이른바 방언 기도를 했다.
동성애 관련 행사가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를 향해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내는 건 분명 잘못이다. 현대 과학은 동성애 성향이 인간 본성에 깃든 여러 감정 가운데 하나임을 알려줬다.
그동안 세속 법률은 동성끼리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다가 요즘 들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난 5월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합법화시켰고, 미국 연방 대법원은 현지시간으로 6월26일(금)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무조건 반대를 외치기보다 성서가 동성애에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지, 그리고 21세기 상황에서 의미를 재조정할 필요가 없지는 않은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따져봐야 할 일이다.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하는 대목은, 성서가 동성애를 극한의 죄악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 26절과 27절에서 동성애를 “순리를 거스르는 부끄러운 일”로 완곡하게 기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저 무턱대고 집회를 반대하고, 집회 허가를 내준 지방자치단체장을 향해 독설을 퍼붓는 행위는 기독교 신앙을 떠나 인간으로서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저토록 힘차게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합당한 응답을 주실지, 고개가 내저어지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