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디제잉워십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지난 7월14일에 열린 IVF 전국리더대회 개막식 공연 영상이 공개되면서 SNS상에서 문화적 혹은 신학적 논박이 이어진 것이다. 전자무도음악(EDM)이 기저를 이루고 디제이가 주도하는 찬양이 예배인지에 관한 논란의 중심에 디제이 한진호 씨(토탈 파티 솔루션 Stomp 대표)가 있다. 본지는 기독교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는 DJ Jinho를 그의 합정동 작업장 근처에서 만났다.
▲디제잉워십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전자무도음악(EDM)이 기저를 이루고 디제이가 주도하는 찬양이 예배인지에 관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DJ 한진호를 마포구 합정동 그의 작업장 근처에서 만났다. ⓒ베리타스 |
이인기(문): 디제잉워십에 관하여 여러 군데서 인터뷰를 하셨는데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것이겠지요?
한진호(한): 네, 오늘도 몇 군데에서 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꽤 있는데 그 중에는 비판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못 보던 방식이다 보니 개혁주의 신학자들이나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우려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문: 예배음악을 새로 소개하신 것인데, 이것은 예배음악의 장르를 개발하신 것인지 예배문화를 바꾼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저 새로운 하나의 장르를 소개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예전에는 예배 음악이 주로 클래식이었다가 요즘은 우리나라의 대세가 밴드음악입니다. 클래식에서 밴드음악으로 바뀌었다고 하여 예배의 내용이나 방식이 바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하는 디제잉워십도 기존 예배와 마찬가지로 메시지나 방식은 같고 장르만 바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르는 EDM이고 장비는 디제이장비만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방식이 다르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문: 새로운 형식이나 장르의 발견이 혹시 기존의 방식에 대한 비판인가요?
한: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게 된 계기가 기존의 것이 잘못되었으므로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잘 하는 것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시도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아니라 다양성의 한 측면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문: 그렇다면 특별한 신학적인 배경, 예를 들면, ‘예배는 축제이다’라는 식의 신학적인 견해를 반영하는 것인가요?
한: 저는 예배가 축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배에 대한 관점은 지극히 전통적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형식만 보고 저것이 예배냐라고 반발하기도 하는데 저는 주로 찬양만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보수적인 예배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 주로 어떤 곡을 선정하나요?
한: 한국에서 누구나 아는 찬송가를 선택합니다. 찬송가 가사를 스크린에 띄우지 않아도 다 아는 찬송가를 부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찬양 인도하듯이 합니다. 장비와 장르만 다를 뿐 전통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문: 영상을 보니 사이키델릭 조명도 이용하던데, 사이키델릭 조명이 디제잉워십의 핵심 도구인가요? 그 조명 때문에 괜히 오해를 받기도 하는 것 같아서 물어 보는 것입니다.
한: 디제잉워십에 사이키델릭 조명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번 공연에 사이키델릭 조명이 준비되어 있어서 사용한 것입니다. 이질적인 도구를 이용하는 것 때문에 오해를 하시는 분이 많은데 저는 전통적인 예배 메시지와 내용을 추구합니다. 기존의 익숙한 기독교 문화적 토대에서 보면 저의 방식이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신학적인 반발이나 반작용이 절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양한 방식 중의 하나로 보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문: 이러한 시도는 언제부터 하셨나요?
▲DJ 진호는 디제잉 워십을 "(예배음악의)다양성 차원에서 봐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베리타스 |
한: 2013년부터 시작하여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 기독교계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앨범도 나오기 전에 뜨겁게 논의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문: 예배를 찬양이나 메시지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의 적용까지 포괄하는 영역이라고 볼 때, 디제잉워십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는지요?
한: 저의 영역은 일반 예배의 찬양인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성도들이 찬양을 통해 은혜를 받고 삶의 변화를 경험하시듯이, 그런 분들이 저의 디제잉워십을 통해 은혜를 받고 삶이 변한다면 그런 차원에서 기여를 하는 것이지요. 어떤 분들은 디제잉워십이 대세가 되면 교회가 비용의 차원에서 더 부담이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저는 이것이 하나의 장르일 뿐 대세가 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것이 새로운 예배다 혹은 진짜 예배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예배도 가능하다는 차원에서 접근하시면 됩니다.
문: 새로운 예배의 시도 근저에 어떠한 신학적 근거가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특별히 소개하실 만한 배경이 있으신가요?
한: 제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새로운 장르를 개발한 것이 아니므로 굳이 소개할 만한 신학적인 배경도 없습니다. 제가 계속 말씀드리지만, 저의 디제잉워십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므로 색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독특한 신학적 배경을 묻는 질문은 제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제게 특별한 의도나 배경을 묻는 그 이면에는 오히려 EDM에 대한 편견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 생각일 수도 있는데요, EDM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자꾸 문제 삼는 것은 EDM은 클럽음악이고, 클럽음악은 더러운 것이라는 편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제가 해명을 해야 되기는 할 부분입니다.
문: 그렇다면 어떤 세속 문화이든 신앙과 접목될 수 있다는 생각이신지요? 신앙인들은 세속적인 문화가 신앙의 옷을 입은 것인지 신앙이 세속의 옷을 입은 것인지 분별하고 싶어 하는데 어떤가요?
한: 이 둘이 구분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신앙이 세속의 옷을 입든 세속이 신앙의 옷을 입든 중요한 것은 신앙이 있는지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이 있다면 그 신앙이 어떤 형식으로 드러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형식이 과격하고 생소하다고 하여 신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취향에 맞는, 본인이 은혜를 받는 형식만 신앙이고 본인에게 은혜를 주지 못하는 형식은 신앙이 아니라고 한다면, 형식이 결국 우상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 우상이라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수련목을 해보셔서 알겠지만, 사역자들은 성도들을 계도할 책임감을 느끼지 않습니까? 이런 형식을 접하면 성도들이 충격을 받게 되고 사역자는 이것에 대해 신앙적인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 어려움을 느낄 것 같습니다.
한: 저는 단순한 이질감을 배타적으로 취급하면 자칫 형식이 우상으로 된다고 봅니다. 자신에게 은혜를 주지 못하는 형식을 배타적으로 비판하다 보면 자신에게 은혜를 미치는 그 형식을 고수하는 단계를 넘어 우상시한다는 것입니다. EDM이라는 형식을 통해 은혜를 받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는데 EDM이 기존의 문화적인 틀에서 볼 때 이질적이어서 은혜가 전혀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EDM은 예배가 아니다라고 한다면, 그 때 EDM이 아닌 기존의 문화적인 형식이 예배의 본질로서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우상시된다는 것이지요.
사실 제가 답답하게 느끼는 부분이 무엇이냐 하면, 비판자들이 그냥 솔직하게 제 취향이 아니네요라고 말하면 되는데 그것을 우회적으로 신학의 틀에 맞추어 분석하고 설명하려고 하시는 부분입니다. 그저 제 취향이 아닙니다라고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EDM을 통해 찬양을 하는 것은 그만큼 제게도 신앙이 있고 제가 잘하는 도구를 이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전하고 싶은 열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를 비판하시는 분들은 저의 신앙을 보려고 하지 않고 잠시 동영상으로 형식만 보고서 자신의 취향이 아니니깐 신앙도 없이 이루어진 일이라고 성급하게 판단을 하시는데 이것이 안타깝습니다. 어떤 분은 신학 서적들을 추천하고, 기도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지옥간다고도 말씀하십니다.
문: 성도들이 세속의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우려하는 사역자들의 고민이지 않을까요?
한: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게 일정한 형식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역자들은 공개서신까지 보내면서 정죄하다시피 접근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하여 잠잠히 있습니다. 심지어는 저의 EDM 예배를 마지막 시대에 예배를 방해하는 사탄의 계략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제가 사람들의 감정을 조정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진짜 과대평가입니다.
문: EDM 예배를 접한 기독교인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IVF의 성명에서는 학생들의 60% 정도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하고 있더군요.
▲DJ 진호는 예배음악의 지나친 형식주의가 자칫 우상숭배의 길로 빠져들게 할 수 있다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신앙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베리타스 |
한: 어떤 예배 음악이든 모든 연령층을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EDM 예배를 보고 실족하는 분 있으면 어떡하냐고 하는데 그것은 지금 대형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연식 예배에 참석하시면서 실족하는 장로님이나 권사님들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DM, 락, 클래식 어떤 형식이든 다양한 수용층에 따라 수용하는 정도나 범위도 다른데 왜 EDM만 유독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문: EDM을 그냥 예배형식의 하나라고만 이해하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한: 네. 저는 신학적인 변혁이나 신앙의 새로운 차원을 모색하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순전히 하나의 장르일 뿐입니다.
문: 그렇다면 리차드 니버 식의 ‘문화 위의 그리스도’ 신학을 옹호하는 것입니까?
한: 저는 ‘문화 위의 그리스도’ 혹은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모델을 신학적 기반으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화와 그리스도’라는 식의 이분법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리차드 니버의 모델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복음주의적 모델의 신학자들은 사탄에게 빼앗긴 세상의 음악을 하나님의 것으로 변혁시켜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입장은 아닙니다. 기독교와 문화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발전한다고 봅니다. 그리스도가 문화를 변혁하는 시기도 있지만 문화가 그리스도를 변혁한 시기도 있습니다. 서로 역동적으로 발전한다고 봅니다. 문화가 그리스도를 변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문: 이 생각은 어떤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까?
한: 이런 방식을 생각하게 된 특별한 계기를 끄집어내기는 어렵지만 현대라는 콘텍스트에서 문화와 어떻게 조응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라고 봅니다. 선교적으로도 EDM을 선택하면 오히려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즐기고 소비하는 음악을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어떤 분들은 은혜가 되냐고 하는데 제게는 충분히 은혜가 된다고 봅니다.
문: 이 형식이 어떻게 확산되기를 원하는지요?
한: 저는 큰 기대는 안합니다. 앨범이 나오면 얼마나 공격을 많이 받을지 걱정됩니다. 심지어는 음모론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에는 이런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면 잘 이해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형식의 확산을 위해 집약된 노력을 하겠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만, 이 일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앨범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문: 그러면 디제잉워십이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는데 있어 어떤 기여를 하기를 원하는가요?
한: 안타깝게도 이 형식을 시도하는 사람이 저 말고는 없어서 사실 외로운 길입니다. 저와 같은 생각으로 동역할 수 있는 분이 있으면 덜 외롭겠습니다. 일선 교회 현장에서 디제잉워십을 시도하는 곳도 있습니다. 교회에 장비가 구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가 필요한 장비를 가지고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직 초기여서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은혜를 받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솔직한 심정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