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리뷰] 영화 ‘암살’ 신드롬 들여다 보기

최동훈 감독 <암살>

▲최동훈 감독의 <암살>의 한 장면. ⓒ스틸컷

2015년 여름 극장가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다. 지난 7월22일(수) 개봉한 <암살>은 개봉 2주를 넘긴 8월9일(일) 현재 858만 관객을 동원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헐리웃 블록버스터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438만), <미니언즈>(168만)의 배 가까운 흥행 성적이다. 이런 추세라면 역대 열두 번째 1천만 관객 동원도 무난해 보인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느낌은 다소 복합적이다. 단지 영화의 완성도로만 놓고 보자면 이 영화 <암살>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영화를 보다보면 사소한 그 무엇이 눈에 거슬릴 때가 있다. 그리고 한 번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면 작품 전반에 대한 인상도 좋지 않게 기억된다. <암살>이 이런 경우다. 극중에서 배우 이경영이 분한 친일파 강인국은 콧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화면상에서 콧수염을 붙인 티가 너무 역력히 드러났고, 이런 어설픈 분장은 계속해서 몰입을 방해했다. 또한 <미션 임파서블>을 방불케 하는 첩보활극임에도 이야기 전개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하와이 피스톨’역의 하정우를 제외하고 배우들의 액션연기는 어딘가 어설퍼 보인다. 
그러나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나 배우들의 어설픈 액션 연기를 문제 삼아 작품 전반을 폄하할 수만은 없다. 그 중요한 이유는 <암살>이 두 가지 아픈 과거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하나는 대한제국이 국권을 빼앗긴 역사고, 또 다른 역사는 일본 제국주의에 빌붙어 동족을 탄압했던 자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다. 
먼저 이야기의 대략적인 얼개를 살펴보자. 상해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은 백범 김구의 특명을 받아 한국 독립군 저격수인 육군상병 안옥윤(전지현),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을 경성으로 잠입시킨다. 이들에게 떨어진 임무는 조선주둔군 사령관인 일본 육군 가와구치 마모루 사령관과 친일파 강인국을 암살하는 것이다. 그러나 염석진은 이미 일본 밀정으로 암약하고 있었고, 이에 살인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을 고용해 암살단 제거를 명한다. 
▲최동훈 감독의 <암살>의 한 장면. ⓒ스틸컷

영화 <암살>의 등장인물이나 시나리오는 허구다. 그러나 ‘예술은 진실을 드러내는 거짓’(파블로 피카소)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본 제국주의 수괴들의 목숨을 노리다 장렬히 산화했다. 동시에 일제의 고문과 회유를 이기지 못하고 일제 앞잡이 노릇을 했던 부역자들 역시 존재했다. 영화에서 일제 앞잡이 염석진은 독립운동가들로부터 뒤늦게나마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역사는 그 반대였다. 일제 부역자들은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해방된 조국을 꿈꿨던 독립운동가들을 청산하는데 열을 올렸다. 일본의 야수적인 식민지배로 유린된 민족정기가 또 한 번 유린된 것이다. 영화 <암살>은 이렇게 밑바닥까지 훼손된 민족정기를 조금이나마 어루만져 준다. 사실 이 영화가 흥행가도를 질주하는 이유도 이런 ‘치유효과’ 때문일 것이다. 
<암살> VS <마이클 콜린스>  
영화를 보고 난 뒤, 차라리 액션 활극보다 진지한 역사 드라마로 접근해 보았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일랜드 출신 닐 조던 감독의 1996년작 <마이클 콜린스>는 좋은 비교 텍스트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마이클 콜린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로 타이틀 롤 마이클 콜린스 역은 <테이큰>의 ‘액션 대디’ 리엄 니슨이 맡았다. 
마이클 콜린스는 영국의 압제에 맞서 요인 암살, 테러 등 강경노선을 고수한다. 반면 동지이자 정적인 에이먼 드 발레라는 대미 외교에 우선순위를 둔다. 두 사람의 노선 대립은 흡사 백범 김구와 이승만의 갈등을 방불케 한다. 
영국은 아일랜드 독립운동가들의 계속되는 테러에 지쳤는지 협상을 제의한다. 이러자 발레라가 의장으로 있던 의회는 마이클을 협상 대표로 런던에 보낸다. 협상결과는 졸렬했다. 영국은 아일랜드의 자치를 허하되 벨파스트를 중심으로 하는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는다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북아일랜드를 영국령으로 남긴 이유는 그곳에 신교도가 많아서였다. 
사실 영국의 협상안은 고도의 정치적 책략이었다. 영국은 아일랜드 문제가 국제분쟁으로 비화되는 걸 꺼리면서도 지배권은 놓고 싶지 않았다. 영국이 북아일랜드를 양보하지 않은 배경이다. 마이클 콜린스는 의외로 협상안을 받아 들였다. 현재 아일랜드의 역량으로는 영국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발레라는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하원 탈퇴라는 강수를 뒀다. 사실 발레라도 마이클과 같은 입장이었다. 단, 영국의 협상안을 수용한데 따른 정치적 부담을 떠넘기려 정적인 마이클을 협상대표로 내세운 것이다. 
닐 조던은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난맥상, 그리고 마이클 콜린스와 에이먼 드 발레라의 갈등을 진지한 시각과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다. 마이클 콜린스 역의 리엄 니슨의 연기는 물론 발레라로 분한 알란 릭맨의 연기도 일품이었다. <암살>이 <마이클 콜린스>처럼 일제 식민지배 역사에 보다 진지하게 접근했다면 영화의 주제의식은 지금보다 훨씬 더 호소력이 강했으리라고 본다. 
영화 <암살>에 대한 반응은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 하다. 이런 신드롬은 2013년 12월 개봉한 <변호인>과 비슷한 양상이다. 두 영화 모두 아픈 과거사를 소재로 했다. 이뿐만 아니다. <변호인>이 다룬 1980년대 공안정국이나 <암살>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독립운동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최동훈 감독의 <암살>의 한 장면. ⓒ스틸컷

올해는 해방 70주년이다. 그러나 과연 대한민국이 일본 식민지배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문창극 전 총리후보자는 온누리교회 강연에서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여론의 공분을 샀다.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근령 씨는 최근 일본 인터넷 포털 ‘니코니코’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문제를 가지고 자꾸 갈등을 빚는 건 국가적으로 창피한 노릇”이라고 했다. 사실 문 전 후보자나 박 씨의 발언은 문제가 많지만, 이들이 실재 권력을 갖고 있지는 않기에 지나가는 말로 치부해도 좋다. 
문제는 일본에 저자세를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다. 일본은 지난 7월 나가사키의 ‘군함도’를 유네스코(UNESCO)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했다. 군함도는 일제 말기 조선인 수만 명이 강제로 끌려가 노예노동을 하던 곳이다. 한일 양국은 UNESCO 등재에 앞서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해 ‘forced to work’라는 문구를 넣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등재 결정이 나자마자 일본은 “강제노동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며 말을 바꿨고, 이에 대해 정부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혹시 한국 정부가 군함도의 유네스코 등재를 이면에서 지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뿐만 아니다. 집단자위권, 한반도 유사시 미일 공동행동 등을 명시한 ‘미-일 방위협력지침’에 대해선 일본과 “일본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한국 정부의 요청과 동의가 필요하다는 원칙에 합의했다”는 원론적인 조치만 취했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군사패권 강화는 한반도에 대한 침략으로 이어졌다. 이런 과거사에 비추어 볼 때 정부의 합의가 얼마만큼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변호인>은 1,100만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전히 정부는 국면전환을 위해 애꿎은 국민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언론은 정부 정책을 미화하기 급급하다. 영화 <암살>은 어떨까? 이 영화는 약산 김원봉을 재발견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기자는 김원봉에 대해서는 무지했다가 영화를 통해 그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의 족적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겹침에도 말이다. 그가 남긴 발자취가 보다 활발히 재조명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영화 한 편 갖고 너무 큰 기대를 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올리버 스톤의 는 베일에만 가려져왔던 케네디 암살 의혹을 전면 재조명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 영화가 개봉되자 케네디가 암살된 텍사스주 댈러스시 당국은 1992년 1월 시 경찰국이 봉인해 관리해 온 2,500건의 수사 자료를 공개했다. 제럴드 포드 前 대통령도 케네디 관련 비밀자료의 기밀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부디 영화를 통해 감정을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용케 역사의 심판을 면했던 친일파의 존재를 보다 명확히 드러내고 청산해서 두 번 다시 민족정기가 훼손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이런 움직임이 없다면 <암살>이 일으키고 있는 신드롬은 그저 신드롬으로만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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