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리뷰] 임오화변, 권력갈등이 불러온 참극

이준익 감독의 <사도>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스틸컷

살인은 인간관계를 끝내는 가장 비극적인 방식이다. 살인은 비단 ‘나’와 제3자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남편이 아내를,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죽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존속끼리의 살인행각은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고, 이를 추궁하는 여호와에게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거칠게 항변한다. 

이런 이유로,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임오화변은 비극이지만, 새삼스럽지는 않은 일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 사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궁정에서 횡행하는 권력투쟁 양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를 통해 사건을 현대로 불러낸다. 그런데 감독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을 가족사로 좁힌다. 
오프닝은 강렬하다. 사도세자(유아인)는 창경궁 수구를 따라 영조(송강호)가 머무는 경희궁으로 진격한다. 세자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다. 이를 안 영조는 대노한다. 날이 밝기 무섭게 세자를 불러 추궁한다. 그럼에도 분이 삭지 않았던지, 세자에게 자결을 명한다. 이를 거부하자 영조는 뒤주를 가져오라 명하고 세자를 감금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영조와 사도,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감정 동선을 파고 들어간다. 
영조와 사도세자가 처음부터 원수지간이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영조는 세자를 아꼈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세자로 책봉할 정도였으니까. 세자가 남달리 총명했다는 점도 영조를 흡족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영화에서는 세자가 자라면서 학문보다는 무예나 그림에 몰두하며 영조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으로 그린다. 즉, 영조가 다소 고루함을 고집하는 기성세대라면 세자는 톡톡 튀는 ‘끼’로 충만한 신세대인 셈이다. 영화는 이런 세대간 갈등이 임오화변이란 참극을 불러왔다는 암시를 던진다. 특히, 영화는 영조가 조선의 중흥기라는 영정시대를 활짝 연 성군이 아닐 수도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런 면이 아주 없지만은 않다. 역사 기록에서도 세대간 갈등 양상은 나타난다.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영조와 사도세자 두 사람 모두를 광인으로 보았고, 두 광인의 충돌이 참극을 불렀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세대간 갈등이 부자살인으로 귀결됐다는 해석은 지나친 비약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하루에도 몇 번씩 젊은 아들들이 아버지의 손에 죽어 나가는 살풍경이 펼쳐져야 한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스틸컷

세대간 갈등으로만 볼 수 없는 임오화변 
초입에서 언급했듯, 사도세자의 죽음은 궁정 내 권력투쟁이 일으킨 비극이다. 영조는 세자를 애지중지 키웠다. 이어 세자가 장성하자 자신은 2선으로 물러나고 세자에게 실질적인 통치를 맡기는 ‘대리청정’을 단행한다. 사실 비극은 여기서 싹텄다. 대리청정 기간 동안 세자는 일련의 개혁조치를 단행하려 했다. 영화도 이 점을 짚고 넘어간다. 특히, 세자가 국방개혁을 추진하는 장면은 무척 현대적이다. 중신들이 서민들에게 군포 부담을 늘리려 하자 세자는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리며 제동을 건다. 
“조선은 선비의 국가다. 선비가 어찌 평민들에게만 국방의 의무를 떠넘기려 한단 말인가?”
세자가 개혁을 밀어 붙이자 조정은 술렁인다. 특히, 영조의 세력기반이었던 노론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영조 역시 탕평책으로 애써 구축해놓은 권력기반을 뒤흔든다며 세자를 심하게 질책한다. 이때부터 영조는 세자의 정책에 사사건건 개입한다. 세자가 자문을 구하지 않으면 구하지 않았다고 야단치고, 자문을 구하고자 하면 그것하나 처리하지 못해 자신에게 가져오느냐고 호통을 친다. 대리청정 기간이 14년이었으니까 사도세자가 느꼈을 심리적 압박이 어느 정도인지 어렵지 않게 상상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사도세자가 살인마였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영화에서도 세자가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내관 김한채의 목을 자르는 장면이 나온다. 서울대 국문학과 정병설 교수는 그의 책 『권력과 인간』에서 “사도세자가 죽인 무고한 사람이 100여 명 정도 된다”고 적었다. 세자의 지위로 미루어 볼 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비록 세자가 부왕으로부터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하나 그는 엄연히 왕족이다. 그렇기에 내관의 목을 베든, 궁녀를 겁탈하든 면책될 위치인 것이다. 
세자가 내관을 참수한 일은 영조의 귀에까지 들어가기에 이른다. 영조는 세자를 불러 진상을 캐묻는다. 정 교수는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영조: “어찌 그러하니?”
사도세자: “마음이 상하여 그러하나이다.”
영조: “어찌하여 상하였니?”
사도세자: “사랑치 않으시니 서럽고 꾸중하시기에 무서워 화가 되어 그러하오이다.”
영조: “내 이제는 그리 않으리라.”
영조의 약속에도 세자의 광기는 갈수록 극에 달한다. 그의 주변엔 기녀와 괴승들이 출입하기 시작한다. 아들의 탈선을 마음 편히 지켜볼 아버지는 없다. 그렇다고 탈선을 이유로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이지는 않는다. 근본적으로 영조는 권력자였고, 그에겐 종묘사직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런 그가 학문을 소홀히 하고, 탈선을 일삼는 세자에게 권력을 물려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살해동기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다시 권력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조의 재위기간은 52년으로 조선 역대 임금 중 가장 길다. 그 사이 영조는 손자를 얻었다. 그 세손이 바로 정조다.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달리 영조의 기대에 부응했다. 영조의 뜻을 받들어 반듯이 학문에 정진했으며, 총명함도 아버지에 뒤지지 않았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만약 영조가 단명했다면 사도세자의 죽음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몰랐다. 그러나 영조는 이례적으로 장수했고, 보다 중요하게는 세손인 정조가 자라는 모습을 목격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영조로서는 왕위를 계승할 유력한 대안이 확보된 상황에서, 왕위계승에 걸림돌이 될지 모를 사도를 제거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런 입장은 세자에게 자결을 명하는 영조의 명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스틸컷

“내가 죽으면 300년 종묘사직이 망한다. 네가 죽으면 종사는 보존할 수 있으니 네가 죽어야 한다. 내가 너 하나를 베지 않고 종묘사직을 망하게 해야 하느냐?”
사도세자로서는 아버지의 완고함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버지를 향해 칼부림을 할 수도 있었다. 또 실제로 칼부림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세자의 아버지는 평범한 아버지가 아니라 조선의 최고 권력자였다. 그런 아버지에게 칼을 들이 밀었으니, 권력자 아버지로서는 아들을 죽이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권력으로 얽히면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구약성서 사무엘기를 보라.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게 반기를 들고 궁정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로 인해 다윗은 하루하루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으로 내몰린다. 반면 러시아의 계몽군주인 표트르 대제는 아들을 죽인다. 아들인 알렉세이 황태자는 아버지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모의했다 발각되자 이탈리아의 나폴리로 망명했다. 이에 표트르 대제는 비밀경찰을 동원해 알렉세이 황태자를 체포해 가혹하게 고문한 뒤 끝내 죽였다. 
영화의 백미는 영조가 죽음을 앞둔 사도세자와 가상의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다. 9분 동안 이어지는 장면에서 영조와 사도세자는 비로소 화해를 한다. 그러나 그건 감독의 희망사항일 뿐, 영조와 사도세자는 일찌감치 화해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고, 임오화변이라는 참극으로 막을 내렸다. 말하자면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에 궁정 내의 권력암투가 뒤섞여 벌어진 정치적 사건이라는 말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그러나 지난 과거를 지금 불러내려면 과거의 시선으로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부자갈등의 가족사로만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에 접근해 나가는 건 지나치게 지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준익 감독이 나름 ‘팩트’에 근거해 재구성했다고 하지만, 세대간 갈등에 상당한 비중을 둔 건 분명 오류다. <변호인> 이후 2년 만에 은막에 모습을 드러낸 송강호와 <베테랑>으로 천만관객 배우로 등극한 유아인의 연기가 빛이 바래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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