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1월3일(화) 역사 국정화 방침을 고시했다. 찬성보다는 반대가 많았고, 국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정부는 이 모든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 이에 대해 나성향린교회 곽건용 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무엘·열왕기와 역대기의 기록을 들어 정부의 국정화 시도를 비판했다. 특히 곽 목사는 국정화에 찬성하는 기독교인들의 행태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곽 목사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다윗은 구약성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유대인들에겐 모세와 더불어 가장 의미 깊은 인물이 바로 다윗이다. 오죽하면 국기에 다윗의 별이 들어있겠나.
기독교인들에게 그가 유명한 까닭은 그가 많은 시편들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시편 51편이 특히 유명하다. “하느님, 어지신 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죄를 없애주소서, 정화수를 내게 뿌리소서, 이 몸이 깨끗해지리이다”로 이어지는 바로 그 시편 말이다.
이 시편에는 ‘다윗이 바세바와 정을 통한 다음 예언자 나단이 찾아왔을 때 지은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그러니까 바세바와 불륜을 저지른 후 나단에게서 엄중한 비난을 받은 다음에 지은 시란 얘기가 되겠다. 시편들에 붙어 있는 표제가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시의 내용에 맞는 역사적 정황을 상상해서 붙였다는 다소 ‘김빠지는’ 해설은 논외로 하자.
문제는 다윗과 바세바의 불륜사건이다. 나단은 이 사건을 알게 되자 다윗에게 달려가서 우화 하나를 얘기한다. 우양을 많이 갖고 있는 부자가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대접하려고 양 한 마리밖에 갖고 있지 않은 가난한 사람에게서 그 양을 빼앗았다는 우화가 그것이다.
다윗은 이 얘길 듣고 자기 얘긴지도 모르고(다윗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정말?) 불같이 화를 내더란다. 그런 놈은 당장 쳐 죽여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단은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고 말하고서 다윗과 그의 집을 저주했다. 그의 집안에 칼부림이 끊이지 않을 터이고 다윗의 여자들이 백주에 능욕을 당할 거란 게 저주의 내용이다. 이에 다윗은 “내가 야훼께 죄를 지었소”라며 회개했단다. 그러자 나단은 야훼가 다윗의 죄를 용서해줘서 그는 죽지 않겠지만 불륜으로 태어날 아기는 죽을 거라고 예언했다.
아마 다윗에 대한 얘기들 중에 제일 널리 알려져 있는 얘기가 바로 이것일 터이다. 이 사건은 매우 수치스런 얘기지만 회개해서 용서받은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윗과 그의 집안의 입장에서 보면 할 수만 있으면 지워버리고 싶었을, 매우 수치스런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역대기 기자들의 어리석음, 지금 한반도에서 되풀이
그래서 그런지 역대기 기자는 이 얘기를 통째로 들어냈다. 사무엘서를 안 읽고 역대기만 읽으면 다윗이 바세바와 정을 통한 사실을 알 수 없다. 거긴 그런 얘기가 아예 안 나온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 일으킨 얘기도 없다. 역대기 기자는 다윗에게 불리한 얘기들은 아예 기록하지 않았던 거다.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그로부터 3천 년 정도가 지난 오늘날 한반도에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역대기 기자가 했던 짓을 하려는 자들이 있는 거다. 역대기는 오늘날 이 정권이 만들려는 국정교과서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지우고 싶은 건 지우고 부풀리고 싶은 건 부풀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구약성서의 최종 편집자는 두 가지 역사기록을 다 남겨 놨다. 사무엘·열왕기와 역대기가 나란히 존재하게 했던 거다. 왜 그랬을까? 서로 일치하지 않은 점이 많은데, 심지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기록도 있는데 왜 둘을 나란히 놔뒀을까? 둘 다 읽고 평가하란 뜻이 아니면 뭐였겠는가. 그때도 지금처럼 뜨겁게 논쟁했을까? 역대기 사가 편을 든 사람들이 사무엘·열왕기 사가 편을 가리켜 좌파니 종북이니 하는 딱지를 붙여가면서 이념논쟁으로 끌고 가려고 난리를 쳤을까?
오늘날 구약성서의 두 가지 역사 중에 어느 편이 더 널리 읽히는지 아는가? 사무엘·열왕기일까, 아니면 역대기일까? 전자가 훨씬 더 많이 읽힌다. 둘 중 어느 편이 더 비판을 받을까? 사무엘-열왕기 사가일까, 아니면 역대기 사가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무엘·열왕기를 읽으면서는 수치스런 역사도 감추지 않고 기록한 역사라고 부르고 역대기를 읽으면서는 다윗의 치부를 감추기에 급급한 왜곡된 역사라고 부른다. 학자들의 연구의 양과 질로 봐도 전자가 훨씬 더 관심을 받고 있다. 나는 구약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역대기라는 책을 ‘부끄러운 책’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치 않는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거다.
지금 이와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 일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구약성서를 알겠는가? 그건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소위 기독교인이라는 자들이, 구약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자들이, 사무엘·열왕기와 역대기가 어떻게 다른지, 왜 두 가지 역사가 전해지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역대기 사가가 했던 짓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