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리뷰] 평범한 삶이야말로 최고의 전리품

제니퍼 로렌스 주연 <헝거게임> 4부작 되짚어 보기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헝거게임>의 한 장면. ⓒ스틸컷

<헝거게임> 4부작은 제니퍼 로렌스를 빼놓고 입에 올릴 수 없는 작품이다. 원래 원작은 <판엠의 불꽃>, <캐칭 파이어>, <모킹 제이> 이렇게 3부로 나뉘어 있는데, 영화는 <모킹 제이>를 둘로 쪼갠다. 굳이 4부작으로 만들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서사구조는 지루하고 결말은 엉성하다. 그러나 제작진들은 제니퍼가 내뿜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믿은 듯하다. 놀랍게도 그녀는 제작진들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한다. 

그녀는 이 작품 이전 <윈터스 본>의 리 돌리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실 그녀가 <헝거게임>에서 연기한 캣니스 애버딘은 리 돌리를 쏙 빼다 박았다. 열일곱의 리 돌리가 험한 세상과 맞서 가정을 지키는 소녀 가장이라면, 캣니스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무자비한 생존게임(헝거게임)에 뛰어드는 가녀린 여전사다. 
캣니스는 오롯이 용기 하나 만으로 쟁쟁한 실력자들을 물리치고 헝거게임의 승자로 등극한다. 특히 기지를 발휘해 파트너인 피타 멜라크(조쉬 허치슨)를 구해내기도 한다. 이로 인해 지배체제 ‘캐피톨’의 최고 지도자 스노우 대통령(도널드 서덜랜드)에게 노여움을 사지만 말이다. 
얼핏 유약해보이면서도 강인하고, 또 아무 이유 없이 죽어간 동료들을 위해 슬퍼하는 캣니스는 오로지 제니퍼 로렌스를 위한 캐릭터다. <윈터스 본>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헝거게임>의 캣니스 역에 제니퍼가 안성맞춤이라는 데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다. 원작자 수잔 콜린스도 “제니퍼는 캣니스 역에 필요한 모든 필수 자질을 다 갖추고 있다. 강인하면서도 여리고 아름다우며, 단호하고도 용감하다. 이 역할에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녀의 놀라운 연기가 하루 빨리 관객들을 만났으면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캣니스를 연기한 제니퍼 로렌스의 심경은 어떨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캣니스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고 멋진 여자다. 캣니스는 사냥을 하는 평범한 소녀였지만, 스스로 옳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게 되면서 영웅이 되요. 전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캣니스라면 이럴거야’라고 제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연기했다.”
그녀는 <헝거게임> 4부작으로 확실하게 자신만의 연기세계를 구축했다. 그뿐만 아니다.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에 미스틱을 연기했고, 이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비버>, <아메리칸 허슬>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뽐냈다. 그녀의 나이(1990년생)를 감안해 볼 때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헝거게임>의 한 장면. ⓒ스틸컷

헝거게임, 판타지 아닌 현실 
<헝거게임>은 비록 제니퍼 로렌스라는 걸출한 배우 한 사람에게 의지해 시리즈를 풀어왔지만, 그럼에도 되짚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캣니스는 ‘캐피톨’과 ‘12구역’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활약한다. 그런데 이 가상공간은 묘하게 현실을 닮았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이란 1%의 특권 계급이 99%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현대세계를 뜻한다. 
캐피톨은 피지배층을 12개 구역으로 나눈다. 그 다음 매년 각 구역에서 아이들 2명을 차출해 헝거게임을 시킨다. 소름끼치는 건, 지배체제가 아이들을 극한의 생존 게임에 내던지고 그것도 모자라 이를 TV 생중계로 지켜본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야만적인 일이 그저 환상에 불과할까? 캐피톨의 신흥 부유층들은 로마 귀족을 연상시킨다. 캐피톨은 로마세계의 미래 버전이라고해도 좋을 것이다. 검투사들의 목숨을 건 사투는 헝거게임의 로마식 버전 아니었던가? 지금이라고 사정이 다를까? 부의 편중은 점점 심각해지고, 이 와중에 없는 사람들끼리 증오를 퍼붓고 서로 싸우며 부자들은 이 광경을 안락한 소파에 앉아 TV 생중계를 통해 즐긴다. 
캣니스는 예외적인 존재다. 출신은 변변치 않다. 원래 헝거게임엔 동생 프림(윌로우 쉴즈)가 나가기로 됐었다. 동생이 끔찍한 싸움에 내몰리는 걸 참지 못해 본인이 스스로 나선 것이다. 아무도 그녀의 우승을 점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하게 우승했다. 이를 지켜본 12개 구역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이러자 캐피톨은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그녀를 헝거게임으로 불러낸다. 그녀는 캐피톨의 음모를 알았다. 그럼에도 경기에 임한다. 아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2차 헝거게임에서 놀라운 일을 벌인다. 경기장을 부수고 탈출한 것이다. 조력자인 헤이미치(우디 해럴슨)와 이중첩자 플루타크(필립 시무어 호프만)은 그녀를 구출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다. 
무엇보다 캣니스가 헝거게임의 뼈대(알고리즘)를 알아내, 아예 경기장을 박살내는 대목은 무척 시사적이다. 앞서 지적했듯 현대 세계는 부와 권력을 다 가진 1%가 99%의 게임룰을 정한다. 99%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에 급급하다. 온 세상이 헝거게임이나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경기장을 박살낸 캣니스의 지혜와 용기는 무척 시사적이다. 
결말 역시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무엇보다 ‘선’과 ‘악’이 대결하고, 치열한 투쟁 끝에 ‘선’이 승리한다는 고전적인 도식을 훌륭하게 비켜간다. 반란군 한 명 한 명은 캐피톨의 전횡에 치를 떤다. 그러나 반란군 지도자 코인 대통령(줄리안 무어)은 그렇지 않다. 스노우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데만 관심 있을 뿐이다. 어디에도 선과 악의 대결은 없다. 그저 악한 체제(캐피톨과 스노우 대통령)와 이 체제에 ‘악’을 덧씌워 정치적 이해를 추구하는 세력(코인 대통령)이 있을 뿐이다. 
캣니스는 스노우와 코인이 벌이는 권력투쟁의 졸로 전락하고야 만다. 반군은 캐피톨을 무너뜨리기 위해 전면전을 벌인다. 그러나 전쟁은 ‘진짜’ 전쟁이 아니다. 전쟁은 캣니스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려는 반군과 그녀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캐피톨 사이의 선전전 양상을 띤다. 이 과정에서 전쟁의 본질, 즉 스노우와 코인의 힘겨루기는 완벽하게 가려진다. 둘의 싸움에서 캣니스는 자신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동생 프림을 눈앞에서 잃는다. 캣니스에게 아픔을 안겨준 장본인은 놀랍게도 코인이었다. 
캣니스는 <판엠의 불꽃>에 이어 마지막 <파이널>에서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내몰린다. 그러나 그녀는 코인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보다 그녀는 권력투쟁의 틈바구니에서 옳은 선택을 했다. 남은 자들은 그녀에게 평범한 삶을 허락한다. 
평범한 삶 – 목숨 걸고 ‘헝거게임’에 뛰어든데 따른 대가치고는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평범한 삶이야말로 승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전리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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