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잊었던 꿈이 찾아와 나를 깨우다

김종문의 필그림소나타 3

필그림앙상블과 새로 시작한 음악생활은 그 전의 나의 음악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경험이었다. 사실 그동안 클래식 악기를 접할 기회가 없었기에, 클래식 연주를 가까이서 들은건 필그림앙상블이 처음이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이들의 연주 속에서 어느 소리가 바이올린이고 어느 소리가 첼로 소리인지조차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이렇게 문외한인 내가 이들과 함께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조차 조금은 무모해 보였다.

거기다가 대체 어떤 곳에서 우리 팀을 초청해 줄지 막막했다. 실제로 교회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출석하는 교회 담임 목사님뿐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여기 저기서 전화가 걸려오고 거의 매주 연주초청을 받아 이 곳 저 곳을 다니게 되었다. 팀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도 신기했다. ‘도대체 우리 팀을 어떻게 아셨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나?’

하나님께서는 일단 발걸음을 떼면 내가 곤란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매번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매주 연주를 다니며 팀의 연습이 더욱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단원들을 설득하여 매주 한 번씩 만나 연습하던 연습시간을 두 번으로 늘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의 막내들이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매일 연습실로 출근하여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훈련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제 사회인이 된 단원들에게 아무 보수도 주지 않고 매일 연습을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작지만 팀에서 일정한 금액의 보수를 지급하기로 하고 연습에만 매달려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팀의 수입이 거의 없었기에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살짝 대출도 받아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시작을 했지만 우리는 팀을 성장시키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작업들에 착수했다. 음향장비, 단체차량, 의상, 음반, 포스터, 홍보물 등등… 필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준비할 일들이 산더미 같았지만 즐겁게 일들을 해 나갔다. 내가 개인적으로 그 동안 경험했던 모든 음악적 경험을 모두 쏟아 부었다. 녹음 스튜디오를 운영했던 것이 경험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선 첫 음반이 필요했는데 다른 곳에 가서 녹음할 경제적 형편이 안되었으므로 당시에 개인 작업실로 사용하던 나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진행하였다.

그 스튜디오는 인천에 있는 작은 집을 억지로 스튜디오처럼 꾸며 놓은 정말이지 나의 개인 공간이었는데, 그나마도 필그림앙상블과 연습을 하기 위해 녹음과 외부의 일은 모두 접고 연습실 겸 필그림앙상블 사무실로 탈바꿈한 작고 초라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 작고 초라한 스튜디오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아시안게임 개막식과 월드컵전야제등 많은 음악을 만들어 내었기에 내게는 아주 소중한 곳이었다. 스튜디오에 피아노가 없어, 우리 팀의 피아니스트가 초등학교시절부터 연습용으로 사용하던 업라이트 피아노를 가지고 왔다. 건너 방에는 피아노가 놓이고 가운데 방에서는 바이올린 파트가…다른 건너 방에서는 첼로 파트가 자리 하고 중간 복도에 있는 나의 지휘에 맞추어 녹음을 하였다. 

참으로 초라한 모습인데 지금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렇게 필그림앙상블은 하나님 앞에 음악으로 매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음반을 만들고 처음으로 연주하러 간 곳은 장신대 대학원이었다. 학교 축제 때에 우리 팀이 초청을 받은 것이었다. 그 날을 위해 음반도 만들었고 포스터도 제작하고 음향장비도 큰 맘 먹고 장만하여 많은 준비를 하고 그 곳에 갔다. 우리는 많은 관객이 올 것으로 예상해 처음으로 게스트까지 초청했다. 연주를 1부와 2부로 나누고 의상도 갈아 입고 중간에 게스트가 다이나믹한 북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작전을 짰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무대에 올랐는데, 커다란 홀에는 겨우 일백여 명의 관객들이 듬성듬성 있었다. 연주를 하며 마음 속에 오히려 화가 났다. 이렇게 애쓰고 준비했는데 이게 뭐람…창피했다. 하지만 애써 침착하며 최선을 다 해 연주를 했고 모인 분들은 정말 진심으로 우리를 향해 박수와 환호를 보내 주었다.

이 날의 연주는 필그림앙상블로서는 처음으로 시도해 본 것이 많았다. 우선 음반이 첫 음반이었고 음향장비도 처음 산 것이었고 게스트도 처음 초청했으며 프로그램도 처음 선보인 것이고 의상도 처음 시도해보고 포스터도 처음 만든 것이었다. 이 모든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우리는 연주하였다. 그 날 관객은 우리가 실망할 만큼 적게 모였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그 것이 아니었나 보다.

연주가 끝나자 한 신사분이 내게 오셔서 좋은 연주 잘 보았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을 소개했다. 자신은 미군현역에 근무중인 박** 장로라고 하며 이 팀을 초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의정부에 있는 미군 제2사단에 찾아가 박 장로님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장로님께서는 한 달 후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기회를 만들어 필그림앙상블을 미국에 소개하고 싶다고 하시며 내년쯤에 미국에 연주하러 오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음악에 빠져 살면서 이 다음에 크면 미국에 가서 어떠 어떠한 음악을 해야지 하고 꿈꾸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그 꿈을 잊은 채 현실에만 매달려 살며 언감생심 음악 쪽으로는 감히 미국을 생각해 보지도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는 세계에서 실력 있는 음악인들이 너무도 많이 모여 있고 나 같은 사람은 생각지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경을 넓혀 주신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새삼 마음에 와 닿으며 미국 이야기를 꺼낸 그 순간부터 나는 마음에서 이미 준비를 시작하였다.

우리 팀은 열심히 연주를 다니며 다음 해에 가게 될 미국연주여행을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걱정 중의 하나는 미국비자였는데 6명중에 3명은 10년짜리 비자를 가지고 있었고 나를 포함한 3명은 비자가 없었다. 지금이라면 미국과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어 걱정 없겠지만 그 때는 비자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우리는 기도하며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해 나갔다. 비자 말고도 또 하나의 가장 큰 문제는 여행경비였다. 태국 연주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미국에서도 우리의 여행경비를 부담하겠다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필그림앙상블 홈페이지 : www.pilgrimensem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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