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리뷰] ‘내부고발’ 새지평 연 에드워드 스노든

스노든 폭로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시티즌 포>

▲스노든 폭로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시티즌 포> ⓒ스틸컷

“스노든의 내부고발은 단순히 사생활 침해의 문제점을 폭로한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의 민낯을 드러냈다.” 

올해 2월 치러진 제8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시티즌 포>(원제: Citizenfour)로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로라 포이트러스가 남긴 수상소감이다. 
솔직히 다른 영화들보다 이 영화를 가장 먼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보고 나니 살짝(?) 실망스럽다. 스노든의 폭로와 그 폭로가 가져온 충격파, 또 폭로 과정 등 긴박한 순간들은 로라와 함께 스노든을 취재했던 글렌 그린월드의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그리고 루크 하딩이 쓴 『스노든의 위험한 폭로』에 더 자세히 나와 있다. 두 권의 책을 읽고 나서인지 몰라도 영화의 흐름은 다소 지루했다.  
그럼에도 영화엔 놓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바로 스노든의 인간미다. 로라는 카메라 심도 조절을 통해 스노든의 내면에서 이는 감정을 쫓아간다. 카메라 앞에서 선 스노든은 시종 차분하고 냉정한 모습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힘센 정부의 치부를 들춰냈고, 이로 인해 1급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그러나 카메라에 비친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침착했고, 때때론 어린 아이 같은 순진함마저 내보인다.  
놓치지 말아야 할 스노든의 ‘인간미’  
그 이전에도 온 세상을 발칵 뒤집었던 폭로는 있었다. 미국의 베트남전 확전 음모가 담긴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대니얼 엘스버그,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워싱턴포스트>지에 흘린 ‘딥 스로트’ 마크 펠트 FBI부국장, 미군 관련 기밀문서를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제공한 챌시 매닝 일병 등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스노든이 폭로한 기밀문건은 시의성과 중량감에서 이전의 것과는 도저히 비교불가다. ‘펜타곤 페이퍼’는 베트남전이 악화일로로 치닫던 와중에 세상에 알려졌다. 그럼에도 파장은 커서 베트남전은 마침내 끝나기에 이른다. 전쟁이 끝난 후 대니얼 엘스버그는 아래와 같은 심경을 남겼다.  
▲스노든 폭로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시티즌 포> 포스터.

“수만 명의 미국 군인과 수백만의 베트남 사람들이 침묵 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저는 좀 더 빨리 펜타곤 기밀문서를 폭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제 자신을 질책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매닝 일병이 <위키리크스>에 건넨 문건은 어떨까? 루크 하딩은 『스노든의 위험한 폭로』에서 이렇게 적었다.
“2010년 런던에서 <가디언>이 보도한 위키리크스 폭로 문건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빼낸 미국 외교 전보문건과 전시 군수기록으로 미육군 일병 첼시 매닝이 유출한 것이었다. 이 중, 단 6퍼센트만이 비교적 중간등급인 ‘극비’로 취급되는 문서였다. 스노든 파일은 수준이 달랐다. ‘일급비밀’ 또는 그 이상이었다. 예전에 케임브리지에서 교육받은 스파이 버지스, 매클린, 필비가 변절해 소련 모스크바로 망명한 멜로드라마 같은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 아찔한 수준의 대량문서 누출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이전의 폭로자들은 여론의 지지를 얻는데 애를 먹었다. 대니얼 엘스버그는 정신과 치료 전력이 있었고, 마크 펠트는 닉슨의 FBI 장악음모를 저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내부 고발자 역을 맡았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샌지는 변덕스러운 기질로 여론의 비방을 사기 일쑤였다.  
이 대목에서 오해는 말아주기 바란다. 흠결 있는 사람이 내부고발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정부는 내부고발이 일으킨 충격파를 흡수하기 위해 폭로자의 약점을 집중 부각시킨다. 닉슨은 대니얼 엘스버그의 신뢰도에 흠집을 내기 위해 정신과 치료 전력을 들춰내려 했다. 줄리안 어샌지는 두 명의 스웨덴 여성과 성관계를 갖는 도중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아무리 시시한 약자라도 정의로운 행동을 했다면 여론은 당연히 이 ‘시시한’ 약자를 지지하고 지켜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여론은 시시한 약자의 시시콜콜한 흠결에 쉽게 분노하고, 가릴 것이 많은 정부는 이 점을 악착같이 물고 늘어진다.  
스노든은 차원이 달랐다. 이력을 들추니 9.11테러 이후 애국심에 불타 이라크전에 자원입대할 정도로 애국심이 강했다. 물론 정신과 치료 전력 따위는 없었다. 그의 최종학력은 ‘고작’ 고졸이다. 그러나 그는 컴퓨터에 남다른 재능을 과시했고,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은 그의 재능을 높이 샀다. 
그의 인간미는 기밀 문건을 세상에 알리는 과정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자신의 고발을 기사화해줄 언론인을 직접 골랐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이들이 연출자 로라 포이트러스와 인권변호사이자 프리랜서 언론인 글랜 그린월드였다. 그는 로라와 글렌에게 각각 ‘시티즌 포’와 ‘킨키나투스’라는 아이디로 접근해왔다. 글렌 그린월드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에서 스노든이 접촉한 과정에 대해 아래와 같이 회고했다.   
▲스노든 폭로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시티즌 포> ⓒ스틸컷

“2012년 12월1일, 나는 처음으로 스노든의 연락을 받았다. 이 당시만 해도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몰랐다. 자신을 킨키나투스라고 한 누군가에게서 온 이메일이었다. 킨키나투스는 기원전 5세기 로마의 농부였던 루시우스 퀸티우스 킨키나투스에서 딴 이름이다. (중략) 이메일은 ‘제겐 통신 보안이 매우 중요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개할 비밀문건을 취사선택하는 작업마저 언론인들에게 맡겼다. 보도 과정에 세세히 개입하면서 비밀문건이 사회에 미칠 파장에 대해 숙고해줄 것을 당부했다. 즉, 그는 무차별적인 폭로보다 사회의 존재를 위협하는 비밀이 담긴 문서만 세상에 알려지기 바랬던 것이다.   
일파만파 파문을 일으킨 스노든 폭로  
그의 폭로가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났다. 무엇보다 ‘그런 기관은 없다(No Such Agency)’며 존재 자체가 부정됐던 NSA의 정체가 드러났다.  
“NSA는 공식적으로 국가 기관이지만 민간 기업과 수입이 중첩되는 제휴를 하고, 여러 핵심 기능을 외부에 위탁한다. 약 3만 명의 자체 요원 외에도 민간 기업의 고용인 약 6만 명과 계약을 맺고 있으며, 이들은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를 수시로 제공한다.” (글랜 그린월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전임자인 부시와 차별화를 꾀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직격탄을 맞았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은 스노든이 폭로를 결심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장본인이었다. 스노든은 글렌 그린월드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권력 남용의 관행을 유지할 뿐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례에서 점점 더 확대시키고 있다는 게 분명해졌어요. 한 지도자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세계 각국에 주재하는 외교관이나 정보요원들의 소통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들은 민감한 주제를 논의해야 할 때마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주재국 정보기관의 감청을 피하기 위해 생겨난 새로운 풍속도다. 
스노든은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내고 있다. 처음 폭로했을 때보다 눈에 띄게 야윈 모습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정부 당국이 내부고발자를 어떻게 다뤄왔던가? 챌시 매닝은 35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고, 줄리안 어샌지는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사실상 억류된 상태다. 대니얼 엘스버그 역시 닉슨의 음모에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본다. 우리 사회는 내부고발자를 어떻게 다뤄왔는가?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그동안 몸담아왔던 조직의 비리를 세상에 알린 내부고발자들은 하루하루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반면 조직의 비리에 침묵하고, 조직의 부당한 지시에 순응한 자들은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스노든은 새로운 지평을 연 개척자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힘센 정부의 치부를 들춰냈고, 그로 인해 아무런 보복을 당하지 않았다. 그는 차후 더 많은 내부고발자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스노든 같은 내부고발자가 나올 수 있을까? 오히려 고졸 주제에 ‘나댄다’고 손가락질 하지 않을까? 스노든은 다시 한 번 우리 사회를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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