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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석과불식(碩果不食)의 되새김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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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신영복 페이스북)
▲故 신영복 교수

'석과불식'이라는 말의 출처

지난 1월 15일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신영복교수를 추모하는 여러 글들과 행사가 진보진영의 언론매체와 크고 작은 모임에서 있었다. 그의 삶의 궤적에 붙어다는 '맑스-레닌 경제학자, 유신시절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20년동안 옥살이한 사람'등 한국 보수적 기독교계에선 껄끄러운 선입견 때문인지 기독교계 언론에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1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

본시 사회경제학자로서 시작했지만, 20년의 옥중생활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사회경제적 혁명을 통해서 금방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깊이 깨달았다. 그래서 동서고전과 깊은 인문사회학적 사색을 통해 신영복 교수는 우리시대 고민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스승이 되었던 분이다.

그가 강조하는 '숲처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문명'을 강조하여 큰 울림을 주었다. 신영복선생의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언론매체들은 아쉬움을 달래려는듯, 그 분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고 추모했는데 거듭 인용되는 말이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어려운 한자어구에 깃든 해석이었다.

'석과불식'이라는 어려운 한자어휘는 주역(周易)의 64괘중 '박괘'(剝卦)라고 이름붙여진 주역 괘(卦)의 맨 위에 놓여진 효(爻)에 대한 상징설명에서 유래한다. 주역(周易)하면 어렵게만 여겨지는데, 자연과 인간사회의 변화의 패러다임을 64종류로 상형화(象形化)하고, 그 상징적 의미를 태극기 둘레에 그려져있는 4개의 기본 4괘처럼 막대기로 표시한 상형(象形)에 해석(辭)을 붙인 것이다.

양효(ㅡ)와 음효(- -)가 어우러져 한 괘마다 6개의 효가 막대그림으로 표시된 것이다. '산지박'(山地剝) 괘라고 읽는 괘의 모습은 음효(- -)가 다섯 개 포개져 있고 맨 위에 양효(ㅡ)가 홀로 얹혀져 있는 형국이다. 신영복선생은 '석과불식'이라는 제목의 그림사색에서 한 늦가을 감나무 꼭대기에 외롭게 남겨져 있는 붉은 감 열매 한개를 그려 표현하기도 했다.

'석과불식'이라는 4글자의 의미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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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주역은 음양의 막대그림 6개단위의 효(爻)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견, 경고, 진실등 무엇을 의미하는가의 해석에 달려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글자는 '석과'라는 단어와 '불식'이라는 단어가 잇대어 있는데, '석'(碩)이라는 글자는 옥편을 찾아보면 '크다'는 뜻이 있고 동시에 '씨' 라는 뜻이 있다. '과'(果)는 과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석과'는 '큰과실' 이라는 뜻도 되고 큰 과실이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옹글진 큰 씨'를 암시한다.

'불식'(不食)은 '먹지 않는다'라고 해석하지만 '먹히지 않는다'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결국 '석과불식"에 대한 의미해석은 3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 사람들이 큰 과실은 먹지 않는다>. 둘째, <사람들에게 큰 과실은 쉽게 먹히지 않는다>. 셋째, <옹근 씨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새 생명을 싹틔운다>. 신영복 교수는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라고 번역했다. 참 농부는 아무리 배고파도 봄에 종자씨로 쓸 알곡을 먹지않고 귀중하게 지킨다는 의미와 통하는 해석인 셈이다.

문제는 '석과'가 진실로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다. 나는 신영복 선생의 해석에 동의하면서 기독교적 영성신학에서 말해본다면 위에서 내가 제시한 3가지 해석중에서 셋째해석을 강조하고 싶다. 농가집 앞뜰에 있는 커다란 감나무에 맨 꼭대기에 한 두 개 감을 남겨둔 것을 어린시절에 종종 볼 수 있었다. 어린시절 듣기로는 그 감은 '까치밥'으로 남겨둔 것이라고 들었다. 봄에 돋아나는 생순가지의 여린 잎새가 피어보지도 못하고 낫질에 잘려나가는 것을 아픈 맘으로 생각하면서 "생순가지는 함부로 꺽지말라!" 가르쳤던 동학 해월선생의 가르침도 생각난다. 흰 눈 내리는 겨울 날, 굶주리는 날짐승들을 연민의 맘으로 걱정해던 우리조상들의 착한 맘이 담겨진 것이 '까치밥'이라는 속설일 것이다..

'석과불식' 어휘의 기독교적 상징해석

'석과불식'이라는 그 말을 기독교적 영성의 시각으로 해석한다면, "참 사람, 옹글게 여무진 알이된 생명체는, 악한 자들이 죽일 수도 없고, 희생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육십배 백배 새 알곡을 맺는다"라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 문제는 진정한 <석과, 큰 과실, 옹근 씨알, 참 사람>이 되느냐 못되느냐 이다. 함석헌의 종교시중에서 <맘>이라는 시제(詩題)를 지닌 시구중에서 한구절이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맘은 씨알 / 꽃이 떨어져 여문 씨의 여무진 알 /

모든 자람의 끝이면서 / 또 온갖 형상의 어머니.

그렇다. '석과불식'의 옛글은 결국 사람다운 참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압살하는 패도시대(覇道時代)에, 귀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경고이다. 동시에 그러한 참혹한 시대일지라도 진정한 군자, 참 사람, 진정한 신앙인은 절망하거나 굳이 희생을 피하지 않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을 수 있다"는 각오와 믿음을 가지라는 격려이기도 하다.

한국 기독교계가 너무 소란하고, 소인배들이 지도자를 자처하고 권력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혀서 교회, 기독교기관, 신학교를 분탕질하고 있다. 희망이 무엇일까? 어디에서 부터 개혁을 시작할까? 길은 멀어도 왕도(王道)는 하나뿐이다. <제대로 된 사람, 석과>를 길러내는 일 뿐이다. 제대로 된 목사후보생을 해마다 10명씩만 길러낼 수 있다면, 아무리 현재의 기독교가 절망적일 지라도 염려할 것은 아니다. <석과불식> 가지고 세상사람들은 이런저런 해석을 하는동안 한신, 감신, 장신, 서울신대등 전국에 흩어져있는 개신교 성직자 양성의 배움터에서 '씨과일'이 제대로 영글어가고 있는지 오직 그 일만을 관심갖고 싶은 것은 은퇴교수 노병의 한갖 부질없는 망상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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