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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로 드리는 제사(시 50:23)

2015년 10월 25일 높은뜻 씨앗이되어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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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지유석 기자)
▲김동호 목사

성경본문

(시 50: 23)

설교문

21살 밖에 안 된 한국 청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쇼팽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을 하였습니다. 온 국민들이 환호하고 sns에는 그의 연주실황이 올라오고 삽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습니다. 우리들의 기쁨이 이 정돈데 정작 본인의 기쁨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자기 인생 최고의 희열과 기쁨을 맛 보았을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그가 한 말이 무엇이었을까요? 힌트를 드리자면 넌센스 퀴즈는 아닌데 넌센스 같아 보이는 답입니다. 그 답은 '감사합니다.'입니다.

인생 최고의 순간에 세계 모든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은 '감사합니다'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감사가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행복하면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하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큰 아들이 작년 5월에 공부를 마쳤습니다. 힘든 과정을 마치면서 쓴 논문을 자기 엄마에게 헌정하였습니다. 논문 서문에 '가정과 가족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하신 어머니에게 이 논문을 헌정한다'는 글귀를 써 넣었습니다.

아내는 학교 교사였습니다. 교사를 시작하면서 교장에 대한 꿈을 가지고 처음부터 철저히 준비를 해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그냥 하게 했을 터인데 그 때는 교회 문화도 그랬고, 또 내 개인의 생각도 그래서 교사를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습니다. 자신의 꿈과 삶을 다 포기하는 일이었을 터인데 아내는 포기하고 저와 결혼해 주었습니다.

평생 살면서 단 한 번도 그에 대하여 원망스러운 이야기를 저와 가족들 앞에서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큰 아이가 자기 엄마의 희생을 기억하고 학위 논문 서문에 그와 같은 헌정사를 써넣은 것이었습니다. 자기 엄마에 대한 감사를 표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헌정사를 읽으며 오늘의 시편 본문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감사는 자기 자신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 감사의 대상에게 큰 행복을 줍니다. 감사로 드리는 제사가 얼마나 기쁘시면 하나님은 그 제사가 자신을 기쁘게 한다라고 표현하지 않으시고 영화롭게 한다고 표현하셨겠습니까?

감사하면 자신도 행복하고 더더욱 하나님을 영화롭게까지 할 수 있는데 감사는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냥 입에 붙은 말로 감사하다는 말은 할 수 있지만 진심이 담긴 감사는 생각처럼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왜 사람들은 감사하며 살지를 못하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답을 찾아내었습니다. 그 답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동상이몽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과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받고 싶어하는 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이 늘 행복하기를 원하셔서 믿는 모든 자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런데 정작 그 복을 받아든 우리 인간들은 복 받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복을 받지 못했음으로 복 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감사할 수 없습니다. 쉽게 정리하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하시는 복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바라는 복은 '세상 나라'입니다.

큰 아들이 자기 페이스 북에 사진 하나를 올렸습니다. 사진을 보면 세희가 세상을 다 잃은 사람처럼 서글프게 울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우리 세희가 그렇게 우는 까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초록색 젤리 하나가 땅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사진을 보며 우리가 바로 저 세희같은 모습이고 수준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젤리를 봉투째 들고 있는 민희는 행복하고 겨우 하나 얻은 젤리를 땅에 떨어트린 세희는 불행합니다. 그래서 저렇게 아프게 그리고 슬프게 울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비해 제법 큰 우리 세희는 이젠 그까짓 젤리 한 조각 때문에 그렇게 슬피 울지는 않습니다. 그 때에 비해 제법 커진 우리 민희도 그깟 젤리 한 봉지가지고 행복해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솔직히. 공부 잘하여 인정 받고, 출세하고, 돈 잘 벌고, 유명해 지는거 아닐까요? 좋은 차타고, 좋은 집 사고, 이곳 저곳 여행다니고, 남들 쉽게 사지 못하는 명품 척척사며 은근 그것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같은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기 백성에게 그것을 복으로 주시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와 목적으로 그것을 주시기는 합니다. 다시 말해 그것을 수단으로 주시기는 하지만 목적으로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이용하고 사용하여 사람과 세상을 섬기며 이런 저런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주십니다. 그러나 꼭 그것이 있어야만 사람과 세상을 섬기며 이런 저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그와 같은 수단을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님으로 그것을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고 복인 줄 알고 깔고 앉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귀와 영화와 쾌락을 누리는 일에 전무후무한 삶을 살았던 솔로몬의 마지막 고백은 허무했습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든 강물은 연하여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는도다."

우리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들은 대개 우리 세희 어렸을 적의 초록색 젤리 한 조각 같은 것입니다. 있어서 나쁠 것은 없지만 그것이 있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잃어버렸다고 그렇게 불행해 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욕심부리고 다투고 싸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모르는 세상과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살아야 할 우리도 그와 똑같이 산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슬픈일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느 교단의 총회장으로 출마하셨던 목사님이 총회 전 투표꾼 목사 장로들로부터 표를 몰아주는 댓가로 거액을 요구하였던 내용을 구체적으로 폭로하여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그와 같은 일은 그 교단에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교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행이 이번 총회때에 후보로 출마하신 목사님들이 단호하게 그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부끄럼 없는 깨끗한 총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노회와 총회 그리고 교회 안에 그런 부끄러운 일들이 다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어느 교단의 교단 총무까지 지냈던 어느 목사가 자기에게 불리한 자료를 유포하였다고 교회로 찾아가 칼로 찔러 하마터면 그 목사를 죽일 뻔 한 사건이 지난 주에 일어났습니다. 칼에 찔린 목사는 9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겨우 생명을 건졌답니다.

저도 자유롭지 못합니다만 큰 교회의 목사들이 누리는 호사스러움이 도를 넘었습니다. 교회를 은퇴하며 받고 챙기는 퇴직금과 전별금이 상식을 넘어섰습니다. 은퇴 후에도 시무 당시 누리던 호사를 계속하려 이런저런 핑계로 교회에 발을 디디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기 아들에게 세습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몇몇 교단에서 세습 방지법을 만들었지만 이런저런 편법으로 피해가는데 그것을 일일히 쫓아 다니며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세상과 달랐던 교회와 교인들이 세상과 같아 지더니 이젠 오히려 세상보다 더 심해졌습니다. 교회는 모습과 무늬만 교회지 전혀 교회다워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배라고 드리지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세상적인 욕심을 더 채우기 위하여 인위적인 부흥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와 같은 인위적인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영적사기들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되고, 성공하고, 형통하게 된다고 공공연히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미신종교화 되기 시작하였고 목사들은 무당을 닮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믿을 수록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셨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5)

우리 한국 교회와 교인들은 거듭나야만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면 세상 나라가 한 순간에 유치해 보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면 세상 나라에 대한 욕심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세상 나라 때문에 다투지 않습니다. 세상 나라 때문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게 됩니다. 내 것 네 것의 경계도 무너집니다. 우리 민희, 세희처럼 젤리 하나 가지고 다투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그러면 정말 기쁘고 감사한 생활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유치한 삶으로부터 거듭날 수 있습니다. 유명한 하박국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

구태어 꼭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구태어 꼭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야만 경건하고, 그래야만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설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닙니다. 성경적인 건강한 입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없다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주어지면 그것을 이용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를 위하여 쓸 수 있습니다.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화과 나무의 무성함이 기독교의 궁극적인 복은 아닙니다. 포도나무의 열매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을 욕심내고, 그 욕심 때문에 추태를 부리고, 세상 사람들도 안 짓는 죄까지 지으면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 교우 여러분.

이와 예수를 믿기로 하였으면 예수를 한 번 진짜로, 제대로, 잘 믿어 보십시다. 정말 물과 성령으로 한 번 거듭난 삶을 살아 보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복으로 주실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다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를 믿는다고 다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도 아니지만,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다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가 열립니다. 보입니다.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면,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있거나 없거나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 나라의 형편과 여건은 감사와 행복의 까닭이 될 수 없습니다.

있어도 감사하고 없어도 감사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기쁘고 범사가 감사한 신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속아 살았던 유치한 젤리 같은 세상 욕심 하나씩 내려 놓고,

그 동안 그 욕심 때문에 보지 못했던 하나님 나라, 누리지 못했던 하나님 나라를 보고 누리며 살고 싶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 때문에 감격하고, 벅차하고, 행복해 하고, 감사하며 하루 하루 그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우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 살다가 하나님께 가고 싶습니다. 감사로 드리는 제사가 끊이지 않은 우리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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