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마태복음 1:1-2
설교문
1. 마태복음 1장은 족보로 시작합니다. 최근에 새로 번역된 성경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번역을 했는데 이전의 개역판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세계'라고 의역을 했습니다. 의역이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표현이 더 멋집니다. 저는 이 계보를 읽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이런 거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계보는 빠짐없이 기록한 완벽한 계보라기보다는 기록자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계보가 오늘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즉 믿음의 세계로 초대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태기자가 오늘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2.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2절의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라는 구절에 상징적으로 나타나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라고 했는데 아브라함이 낳을 수 있었습니까? 그는 이삭을 낳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는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라 생산기능이 멈췄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하나님께서는 속으로 하는 사라의 말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2~14) 그런데 자기들도 믿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일 백세에 이삭을 낳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는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지는 그리스도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불가능한 일에 손을 댔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 계산상 가능해 보이는 일에 손을 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성공이 예측되는 일에만 손을 대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무모해 보이고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도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현실에 맞는 목표에만 만족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더 큰 일, 내 능력 밖의 일에 도전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4.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해서 일을 이루지 못한 곳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했을 때, '그것을 이루어주고 싶은데 능력이 부족하구나. 미안하다' 또는 "그것을 좀 하려면 나에게 시간이 필요하구나. 기다려줄 수 있겠니?"라고 말씀하신 곳이 한군데라도 있습니까? 아니, 그렇게 말씀하신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세계입니다. 우리 앞에 어떤 장애물이 있습니까? 어떤 불가능이 울타리를 치고 있습니까? 누가 여러분의 앞길을 가로 막고 더 이상 갈수 없다고 합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열어주시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5. 오늘 우리의 본문이 단 한마디로 짚고 넘어간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란 말에는 얼마나 큰 하나님의 경륜이 담겨있는 것입니까!! 불가능이 가능으로!! 막힘에서 열림으로!! 그렇습니다. 믿음의 세계는 하나님 안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체험하는 세계입니다. 참 믿음이란 현실적인 문제에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현실 위에서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갈릴리의 어부들이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오늘 우리는 현실의 문제에 얽매여 문제 위에 서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일은 없는지요? 아이를 낳는 일이 불가능했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을 낳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