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추모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1일(토) 오후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는 시민 약 3만 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백남기농민 추모대회가 열렸다. 대회는 추모발언, 가족발언, 연대발언 순으로 이어졌다. 대회엔 더불어민주당(더민주) 표창원, 박주민, 이재정, 송영길, 정의당 이정미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과 세월호 유가족 등이 참여했다. 대회는 고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종로 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까지 행진과 헌화가 예정돼 있었다. 이에 주최측은 행진을 위해 대회 진행은 되도록 간소화했다.
행진은 순조로이 진행됐다.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은 "부검말고 특검 하라", "백남기를 살려내라",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고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몰아간 공권력을 규탄했다. 행진은 종로 2가 종각에서 멈췄다. 주최측은 그 자리에서 정리집회를 했다. 이어 고인이 쓰러진 르메이에르 타운으로 이동해 헌화할 것을 참여자들에게 주문했다. 그러나 경찰은 더 이상의 행진을 막았다. 이러자 시민과 경찰 사이에 대립상황이 펼쳐졌다.
몇몇 시민들은 경찰의 방패를 붙잡으며 길을 열라고 고함을 쳤다. 이에 맞서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해산하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대치 국면이 계속되자 백남기투쟁본부(투쟁본부)가 나섰다. 투쟁본부는 경찰을 향해 "300미터만 가면 백남기 농민이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곳이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 없다"며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곳으로 가서 헌화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르메이에르 타워 바로 직전에 차벽을 치고 더 이상의 행진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길거리에 분향소가 마련됐고, 시민들은 이곳에 헌화하고 자리를 떴다.
이날은 마침 세월호 참사 900일을 맞는 날이었다. 이에 집회는 백남기 농민 추모에 이어 광화문 세월호 광장으로 이어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종로 일대에서 벌어진 대치상황으로 인해 세월호 집회는 지연될 수 밖에 없었다. 백남기 농민 추모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손엔 고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국화 한송이, 그리고 공권력을 규탄하는 구호가 적힌 손팻말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경찰은 추모 행렬을 막아선 것이다.
경찰의 이 같은 행위는 낯설지 않다. 세월호 1주기였던 2015년 4월16일, 경찰은 시청과 광화문 사이에 차벽을 설치하고 시청광장에서 추모집회를 마친 뒤 광화문으로 가던 시민들의 행렬을 막은 바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은 기자에게 "백보양보해서 일선에 배치된 경찰들은 임무에 충실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꼭 이렇게 경찰력을 운용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백남기 추모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 대부분은 경찰의 봉쇄선을 우회해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집회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