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다."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1886~1968)가 남긴 소신이다. 풀이하면 신학의 역할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하고 성례전을 바로 집행하는 가를 감시, 감독하는 데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신학교는 신학의 역할이 이뤄지는 장이다. 그런데 이 같은 정의가 무색하게 최근 몇 년 사이 이 나라 신학교에서 인사전횡이 횡행하고 있다.
먼저 총신대학교 강호숙 박사는 학부와 평생교육원에서 각각 '현대사회와 여성', '한국사회와 여성문제'를 강의해 왔다. 그런데 지난 해 2월 학교 측은 돌연 강 박사에 대해 강의개설 유보 및 폐지 조치를 취했다. 여성동문회에서 여성 안수 기도를 했다는 게 이유였다.
지난 17일 서울기독대학교는 이 학교 신학대학원 손원영 교수를 파면했다. 손 교수가 기독교인으로서 지어서는 안되는 ‘우상숭배' 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지난 해 1월 경북 김천 개운사에서 60대 개신교인 남성이 훼불사건을 저지른 일을 언론을 통해 접했다. 이후 손 교수는 자신이 운영하는 페이스북에 사과글을 올리고 불당회복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였다. 학교 측은 손 교수의 신학적 정체성이 설립 교단인 그리스도의교회 협의회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누가, 그리고 무엇이 교회와 신앙을 위태롭게 하는가?
두 사례 모두 이유가 석연치 않다. 세상의 상식에 비추어 보자. 앞서 든 강호숙 박사는 학교 측의 처사에 불복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이에 대해 지노위는 부당해고가 맞다며 강 박사의 손을 들어줬다. 학교 측은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지노위의 판단은 뒤집히지 않았다.
국가인권위 역시 총신대 측의 처사가 "헌법 제32조 제4항이 특별히 규정하고 있는 근로영역에서의 여성차별금지를 위반했다고 볼 소지가 있다"며 여성차별 관행 개선을 권고했다. 결국 총신대 측은 더 이상의 행정소송은 벌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 박사에게 전해왔다. 이는 강 박사에 취한 조치가 세상의 상식과 맞지 않는 부당한 것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손 교수의 사례 역시 세상의 상식을 기준으로 서울기독대의 조치가 타당했는지 분명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미 동료 목회자와 성직자, 신학자들은 서울기독대의 처사에 반발하고 나서는 양상이다. 대한성공회 서울 주교좌교회 주낙현 신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누가, 그리고 무엇이 교회와 신앙을 위태롭게 하는가? 근본주의 개신교 신자가 사찰에 들어가 불상을 훼손하는 일인가? 아니면, 그 일을 벌인 처사가 안타까워 신학교 교수이고 목사님인 분이 나서서 사과하고 보상 모금 운동을 벌이는 일인가? (중략) 다른 곳도 아닌 기독교 학교, 그것도 목회자를 양성하는 학교가 이런 행패를 부리는 현실 안에서, 우리는 일부 '한국적' 개신교의 민낯을 본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배척과 횡포가 지금 우리 사회를 여전히 좀 먹는다."
일단 손 교수는 학교 측에 파면조치 철회를 요구한 상태다. 학교 측이 끝내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법적 절차를 강구할 방침을 갖고 있다. 법적, 행정적 절차는 당사자를 무척 힘들게 만든다. 그러나 이번 일은 꼭 세상의 상식에 따라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상식과 동떨어진 인사전횡 혹은 학교 고위 임원의 비리는 신학교육 자체를 병들게 만든다. 목회자 후보생들이 제대로 신학 교육을 못받고 목회현장에 나가는 건, 지휘관이 사관학교에서 충분히 군사적 지식을 쌓지 못하고 전쟁에 나가는 일 만큼이나 위험하다. 그래서 신학교 안에서 학교 고위 임원이 공공연히 자행하는 인사전횡이나 개인 비리에 대해선 단호히 제동을 걸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신학교가 갈 길을 잃으면 그 뒷감당은 한국 교회 전체의 몫으로 남는다. 우선 서울기독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만에 하나, 이 일이 세상의 심판정으로 넘어갔을 때 공평무사한 판단이 이뤄지기를 또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