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선교의 방향과 실천적 대안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이범성
I. 들이는 말
II. 본말 1. 한국교회 에큐메니칼한가?
III. 본말 2. 에큐메니칼 선교의 방향
IV. 본말 3. 실천적 대안을 위한 신학적 근거들
V. 내오는 말
I. 들이는 말
우리는 오늘 한국교회와 한국그리스도인들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점검하고(심포지엄 주제), 향후 에큐메니칼 선교의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실천적 대안을 논하고자 한다(주제 강연). 이 글의 주제 '에큐메니칼 선교의 방향과 실천적 대안'은 이미 '에큐메니칼 선교의 방향'이 '실천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서 도시, 농촌, 다문화사회 그리고 청소년에게 어떠한 에큐메니칼 목회를 할 수 있을지를 소개하기에까지(사례 발제) 탄탄한 구성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의 과제는 에큐메니칼 선교의 방향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실천적 대안을 위한 신학적 근거들을 제시하는 것이 되겠다. 우리는 이 글을 '한국교회 에큐메니칼한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에큐메니칼 선교의 방향을 역사적으로 관찰하고, 오늘의 에큐메니칼선교를 위한 실천적 대안을 만들 수 있는 신학적 근거를 제시해 보는 것으로 마치려한다.
II. 본말 1. 한국교회 에큐메니칼한가?
1) 한국교회에 분열을 가져온 일치 개념, 에큐메니칼
에큐메니칼이라는 말은 '교회일치'를 지지하는 예수님의 하나되라는 선교명령(요 17:1)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기독교세계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미 서구 기독교세계에서는 1900년에 뉴욕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에 에큐메니칼 모임이라는 말을 사용했으나, 한국기독교세계에 이 개념이 소개되고 알려진 것은 된 것은 1948년에 김관석 등의 한국대표가 세계교회협의회의 창립총회에 참석하고 난 이후부터였다. 그동안 에큐메니칼이라는 개념이 계속 사용되어 왔지만, 반세기를 넘어선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선교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한국교회는 에큐메니칼하지 못하다. 한국교회는 교회일치 관점에서 볼 때 과거보다 오히려 후퇴한 상태를 보여준다. 한국개신교는 이미 19세기 말엽에 한국에 상주해서 활동한 외국선교부들에 의해서, '선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교파간의 연합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했었다. 20세기 초에는 이미 장감 연합활동이 문서선교, 구락부활동, 선교지 분할 등으로 나타났고, 4개 장로교단은 연합하여 하나의 장로교회를 출범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에큐메니칼적 출발과는 다르게 50년대의 한국교회는 에큐메니칼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하는 문제로 대규모의 분열을 초래했던 것이다. 이 문제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여서 많은 교회들이 이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운동가들과 반대자들 중에 많은 수가 에큐메니칼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국교회에는 에큐메니칼 풍토가 왜곡되어서 조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에큐메니칼을 잘 알지 못하면서 에큐메니칼적이라든지, 반에큐메니칼이라든지 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에큐메니칼의 주제가 편협하게 정의되어 있다는 것이다. 두 나라를 비교하는 예를 들어보자. 한국에서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교회와 교인들을 에큐메니칼이라고 했고, 독일에서는 '신구교간의 화해'를 도모하는 교회와 교인들을 에큐메니칼이라 한다. 다들 각자의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히 인정해야 할 것이지만, 에큐메니칼의 드넓은 영역과 그 핵심이 단지 기독교인의 사회주의운동 정도로 취급 받는 현실은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에큐메니칼운동은 '교회일치'와 더불어 '사회일치'를 지향하는 선교운동이다. '에큐메니칼운동의 분수령'이라고 불리는 1910년의 제 8차 에든버러 세계선교사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 때에만 하더라도 에큐메니칼 선교란 '선교지에서의 효과적인 전도 사업을 위한 교회연합'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가 에반스톤에서 열리던 1954년에는 에큐메니칼 선교의 의미가 교회의 본질적인 속성인 '하나의 교회'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과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천하는 운동으로 질적, 양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의 구체적인 결실은 1982년 페루의 리마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 대회에서 채택된 BEM(세례, 성찬, 직제)문서 이며, 사회일치를 위한 노력의 결과로 나타난 것은 1952년 빌링엔 국제선교대회 이래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모든 교회의 선교개념으로서 자리를 잡은 일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선교의 이해지평이 개인적 사건, 영혼구원 그리고 교파교회개척의 차원으로부터 관계적 사건, 전인적 구원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실천 차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교회는 BEM문서를 통해 서로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으며, BEM문서를 기초로 만들어진 Lima예식서를 통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 문서가 만들어진 것은 교회일치에 관한한 기념비적인 사건이며, 한편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전 세계교회와 신학계를 계몽시킨 과정은 교회에 예속된 선교를 세상으로 뽑아내어, 세상을 위한 선교가 되게 함으로써 사회일치에 관한한 가장 의미있는 사건이 되었다. 세상은 더 이상 '거룩한' 교회가 기피해야하는 '속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실천되는 장소이며, 교회는 다만 세상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전혀 새로운 교회와 세상의 관계가 설정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요 3:16)] 그 대상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대한 공감대는 확대되어서, '교회는 자신의 멤버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한 기관'이라든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교했는데,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교회'라든지 하는 도전적 발언이 선교계에 나타나게 되었고,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교하는 대신 교회 자체를 성장시키는 일에 몰두해 왔다는 자아 반성적 인식이 에큐메니칼운동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것은 가톨릭신학자 베반스와 슈레더가 지적한대로, 교회는 그동안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기보다는 '예수에 관한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전념하였다는 선교적 반성과 같은 맥락이며, 루터교 신학자 칼 브라텐이 지적한것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 대신에 '기독교 왕국'을 세우는 것이 교회의 선교였다는 증언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2) 오늘날 한국교회의 비에큐메니칼 풍토
'하나님의 선교'적 각성을 통한 계몽이 한국교회에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 '공공의 적'이 되는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그러한 통에 작금의 교회는 ‘위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교회가 느끼는 위기인가? 초대교회의 위기는 외부로부터의 박해와 내부로부터의 이단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시대교회의 위기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마찬가지로 외부와 내부로부터 온다. 오늘날 외부로부터의 위기는 교회에 대해 가해지는 박해 아닌 박해이다. 언론과 대중매체가 교회에 가하는 폭력이 정도를 넘어섰다. 어두움은 빛을 미워하는 것이 성경이 알려주는 안티 기독교의 본성이지만 오늘날의 그 것은 성질이 다르다. 우리시대의 안티기독교 성향은 단지 비 기독교인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초대교회의 안티기독교 세력은 기독교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오해했거니와 오늘날의 안티기독교 세력은 오랜 기독교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 교회가 적어도 어떠해야한다는 기독교상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가 그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빛’이기를 표방하는 교회가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세상의 소금’이어야 할 교회가 사회에 아무 쓸모없어 밖에 버려져 귀찮은 존재로 밟혀지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스(Tönnies)는 이 땅위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조직 형태를 둘로 구분하여 공동사회(Gemeinschaft)와 이익사회(Gesellschaft)로 나눈바 있다. 이 분류에서 교회(Gemeinde)는 당연히 자연집단이요 공익집단인 공동사회에 속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교회를 사사로운 이익집단(Gesellschaft)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교회의 공공성을 파괴했는지 ‘이 시대의 자녀들’은 다 알고 있는 바이다. 우리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기까지 하신’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박해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이 시대에, 더구나 이 사회의 기득권을 획득한 기독교에게 있어서 더 이상 초대교회처럼 외부로부터 초래된 것이 아니다. 우리시대에도 박해는 있으되 그 외부로부터 오는 박해는 교회가 초래한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내부 위기 또한 매우 심각하다. 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한 몸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된 지체끼리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형교회는 버스를 돌려 손님을 싹쓸이하고 소형교회는 구멍가게 유지에 안간힘을 쓰다가 지쳐서 체념 단계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 실의에 빠진 수없이 많은 미자립교회가 한국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교회를 유지할 수 없는 목회자들이 개인 신분으로 택시운전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숫자가 적지 않다. 오늘날 '세상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는 대형교회의 단독 선교과제가 되었는가? [저희가 하나가 되어 세상이 하나님 아버지를 믿게 될(요17:21)] 그 날이 과연 오기는 올 것인가? 많은 교회에서 장로와 목사가 대립하는 현상은 목회자가 군림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장로가 당회를 기업의 이사회처럼 운영하여 목사를 월급사장으로 채용한다. 교단과 신학교가 무더기로 무책임하게 배출한 목회 후보생들은 소명을 자랑스러워 할 단 한 번의 기회도 부여받지 못한 채, ‘청빙’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수 십대 일의 경쟁을 뚫고 심사에서 합격되기 위해 자신의 기능을 선전해야 하는 신분이 되었다. 교회는 사람을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세상을 좇아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한지 오래며 생존을 위해 무정해진 교회의 지형도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오늘날 교회의 내적위기에 초대교회처럼 교리적 이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그보다는 교회의 모습을 왜곡하는 수많은 비기독교적 요소들이 세상으로부터 흘러들어와 교회를 잠식하고 썩히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내부의 위기인 이단의 역할은 교회의 본질과 본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과주의적 열심만 있는 기성교회가 자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 기독교의 위기는 교회가 자초한 것이다. 그리고 그 위기는 매우 심각하다. 그렇다면 그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 교회는 신학적 과제를 갖는다. 다른 학문적 접근은 주변적인 도움만을 줄 수 있을 뿐이지, 교회의 위기에 대한 원인과 방책은 신학이 제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세계교회의 위기와 연관되어있다. 그것은 단기적으로 보면 노치준이 그의 ‘개신교사회학’에서 밝혀낸 것처럼, 산업화와 근대화의 시기에 수입된 기독교가 한국사회에서 서구문명의 전초기지 역할을 감당했던 것과 반대로 후현대기(postmodern)에는 기독교가 산업화와 근대화의 부작용과 폐단을 가져온 서구문명과 한 배를 타고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세계교회의 왜곡된 역사를 한국교회가 좇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장구한 서구교회의 오류를 단기간 만들어진 한국교회가 무비판적으로 모방하고 있는 오늘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 오류의 정체는 서구의 ‘기독교왕국’이다. 앞서 에큐메니칼한 선교 인식은 하나님의 나라를 피조세계 전체로 인식하고 있지, 교회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교’는 교회 자체가 아니라 세상에 근본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교회에 대해서라면 교회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며 어떤 자격을 취할 것인가에 대한 ‘교회의 대 사회적 존재양식’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서구교회는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 자체를 위한 관심에 몰두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대신에 ‘기독교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다가 교회의 권위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 이성이 지배하는 '세속화된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19세기에도 계몽주의를 피해낸 기독교가 전 세계의 복음화를 통해 '기독교왕국'을 건설해보려는 또 한 번의 시도를 하였지만 그 꿈은 세계양차대전으로 인해 좌절되었고, 이제 서구교회는 과거의 반성이 가져온 중압감에 못 이겨 선교를 포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서구교회의 전철을 한국교회가 즐겨, 기꺼이, 전력을 기울여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뒤따라가는 자는 앞서가는 자의 성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지만 서구교회와 한국교회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칼 브라텐이 다행스럽다고 말하는 서구교회가 벗어던진 ‘기독교왕국의 유산’을 왜 한국교회가 집어 들고 그 허물을 뒤집어쓰려고 하는가? 한국교회는 서구교회의 선교신학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선교’ 신학을 주창한 에큐메니칼운동에 앞으로의 역사를 접목해야만 한다. 한국교회가 서구교회와 다른 것은 한국교회는 고난의 영성을 소유한 교회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독교왕국’과 달라서 고난과 자기 포기와 종으로서의 섬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기득권을 확보하고 세력을 확장하며 섬김을 받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종교인들의 ‘기독교왕국’일 뿐이다. 한국교회는 스스로 ‘기독교왕국’의 역사를 경험해 본적이 없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장점이다. 세속화의 문제, 타종교와의 대화도 사실 우리 한국교회의 사안이 아니다. 기독교 모노시대를 살아온 서구에게는 세속화의 의미가 뚜렷하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전통 종교들의 틈바구니에서 변증과 공존의 시대를 경험했다. 정하상과 같은 학자는 ‘상제상서’를 통해 기독교가 유교적 세계관에서 인정되기를 겸손히 갈망했고, 일반 가정집의 아낙네는 자신의 헌신적인 삶을 통해 기독교의 진수인 하나님의 사랑이 식구들에게 경험되기를 가슴으로 기도하며 소망했을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서구의 ‘기독교왕국’처럼 폭력으로 선교하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기독교왕국'과 무관하기 때문에 미래의 선교를 선도할 수 있는 것이다.
3) 에큐메니칼에 대한 오용과 오해
한국교회에는 에큐메니칼을 자처하는 비 에큐메니칼 인사들이 많이 있다. 교황의 비성서적 위치를 공박하고 나선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라는 정체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교회의 작은 교황이 되기를 경주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군상이 형성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 어떤 이들은 에큐메니칼 기관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하며 에큐메니칼 인사인양 행동하고 있다. 에큐메니칼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에큐메니칼 기관에 관여하며,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에큐메니칼을 모르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발판 삼아 국제적 신임을 얻고자 노력한다. 어느 때부터인지 팽배해져 있는 사고, 즉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한국교회가 선두지휘해야한다는 한국교회의 오만한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한국교회가 에큐메니칼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아는 마당에 무엇으로 세계에큐메니칼을 주도하겠다는 것인가?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그 힘이라는 것은 비에큐메니칼적인, 그래서 선교지 교회로부터 비난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아직도 제련되지 못한 선교적 열정과 중대형교회들의 일회성 모금조달 능력이 아닐까? 왜 한국교회에는 비에큐메니칼적인 인사들이 회심 없이 에큐메니칼운동을 대표하겠다고 나서는 일들이 발생하는가? 필자는 요즈음 에큐메니칼의 총산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차기 총회를 대형교회의 힘을 동원해서 한국에 유치하려는 비에큐메니칼적인 태도를 반대한다. 또한 필자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협의회의 차기 사무총장을 꼭 배출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몇몇 특출한 에큐메니칼 인사가 한국교회에 혹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교회는 에큐메니칼 세계의 헤게모니를 잡는 일에 혈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애써온 서구교회의 노력들을 제 3세계를 동원하여 흠잡거나 폄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에큐메니칼운동이 지향하는 이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보여주는 이상이다. 기독교왕국을 달성하려고 부심했던 자들이 지녔던 이상과 그들이 취했던 방법은 여기에 섞지 말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막 2:22)]
또한 에큐메니칼을 비주류의 저항정신 정도로 인식하는 오해도 그 폐해는 만만치 않다. 전통교회의 일반적인 흐름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각종 권위에 대항하는 것을 에큐메니칼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에큐메니칼은 좌파적 성향이요, 신복음주의는 우파적 성향이라는 것은 너무 단순한 도식으로서 오해의 소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다. 또는 에큐메니칼은 전통에 반하는 흐름이요, 신복음주의는 전통의 보존이라는 이해도 마찬가지로 잘 못된 것이다. 본래 에큐메니칼은 복음주의와 같은 하나의 줄기에 연이어 있으며, 이 줄기의 흐름에 대한 반동이 소위 신복음주의 운동인 것이다. 그래서 신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볼 때, 복음주의가 아니며 제 2바티간공의회 이전의 로마가톨릭교회나 개신교의 정통주의에 속하는 보수, 반동적 성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에큐메니칼과 마찬가지로 복음주의는 개혁적인 것이다. 먼저 종교개혁자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던 evangelical은 현재 에큐메니칼운동에 반대하는 반에큐메니칼운동 그룹이 사용하는 evangelical과 역사적으로 전혀 다른 맥락에 있다. 그래서 필자는 복음주의와 신복음주의를 구분해서 사용할 것을 신학자와 교회에 당부한다. 좀 더 설명하자면, 16세기까지 사용되던 ‘evangelical’은 ‘protestant'와 꼭 같은 개념으로서, 개신교 이외의 다른 뜻이 아니기 때문에 그 당시의 evangelical은 ‘개신교’라는 말로 번역되는 것이 옳다. 종교개혁기 이후에 루터파와 칼빈파에게 붙여진 통칭으로서의 ‘evangelical'은 여전히 개신교를 의미하는 용어였고, 이 용어는 18세기 중반에 가서야 웨슬리의 대각성운동을 회심, 복음화, 각성을 의미하는 ’evangelical 각성'이라는 용어와 혼용함으로써, 그리고 이후 1846년에 ’Evangelikal Allience'가 런던에서 결성되면서, 하나의 장르를 마련하였다. 여기까지 우리는 일차적으로 복음주의의 흐름을 정리하였다.
여기서 계속해서 정리해야 할 사항은 18세기 중엽의 영국 복음주의가 18세기 초엽의 독일 경건주의와 마찬가지로 화석화되고, 사변화되고, 기성화된 정통주의 기독교신앙에 대한 개혁의 의지로서 등장한 것처럼, 에큐메니칼운동 또한 이 복음주의의 연속선상에 놓인 세계복음주의운동의 기류 속에서 교파의 연합으로 시작해서 교회의 일치로 , 교회중심의 양적팽창에서 하나님나라를 세상에서 실천하는 운동으로 발전해 간 것이다.
이 흐름에 대해 1974년에 발표된 로잔 언약으로 대표되는 반에큐메니칼 그룹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복음주의라는 이름을 자취하게 되었으니 이로 인해 '복음주의' 용어의 혼동이 초래된 것이다. 1942년에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가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of Christ’에 대항해서 사용한 경우는 바로 이 로잔언약에 해당하는 용어사용이다. 이 혼동을 피하기 위해 필자는 이 복음주의 운동 계열에 속하는 에큐메니칼운동에 반대한 운동을 ‘신복음주의’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이 신복음주의라는 반에큐메니칼운동이 영적구원을 중요시하고 육적구원을 이차적인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나라의 실천보다 교회의 이식과 확장을 선교의 핵심과제로 삼는 이상, 이러한 에큐메니칼에 대한 반동은 기득권 수호를 위한 정통주의의 계열에 속해 있는 입장으로서 결코 복음주의라고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교회의 선교운동을 정적인 것과 운동적인 것으로 구분해 볼 때, 경건주의나 복음주의, 그리고 에큐메니칼운동은 운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서 종교개혁의 정신에 잇닿은 것이다. 따라서 에큐메니칼운동은 개신교에서 좌파로 치부되거나 비주류로 취급될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개신교의 정신이 그대로 유지된 전통의 핵심에 에큐메니칼 신학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여 세계복음화운동의 외형적 측면인 “우리 세대에 이 세계의 복음화”를 전통으로 주장하는 신복음주의는 그 주소를 가톨릭교회에서, 이제는 떠나버린 제2바티간공의회 이전의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수소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에큐메니칼 정신의 근원인 이 개혁정신의 뿌리는 종교개혁을 거슬러 올라가서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에서부터 흘러나온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선교했고 당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회복될 나라를 기다렸다. 그 양상은 기독교 이천년 역사의 대부분이 하나님나라 대신 기독교왕국을 선교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기독교 이천년의 선교역사를 하나님의 나라를 선교하는 에큐메니칼 입장에서, 예수와 초대교회 그리고 고대교회 이전까지를 1기로, 콘스탄틴 이후 기독교 왕국을 쫓았던 중세와, 이에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던 개신교의 역사 대부분을 2기로, 그리고 에큐메니칼운동이 일어난 20세기 이후부터를 3기로 구분한다. 기독교의 확장사를 쓴 라투렛은 19세기 세계복음화운동의 성과를 가리켜 ‘위대한 세기’라고 불렀거니와, 필자는 에큐메니칼운동이 하나님의 선교개념을 동반하여 일어난 20세기를 기독교사에서 ‘가장 의미있는 세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에큐메니칼운동은 종교개혁운동이나 복음주의의 연속선상에 있으나 종교개혁운동이나 복음주의의 선교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하나님의 선교'신학을 제시한다. 우리가 진정한 에큐메니칼을 논하고자 한다면, 우리 사고의 출발점이 에큐메니칼운동과 신복음주의의 절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에큐메니칼은 신복음주의와 전혀 다른 신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III. 본말 2. 에큐메니칼 선교의 방향
에큐메니칼이란 '오이쿠메네'라는 헬라 개념에서 유래하며 그 원 뜻은 ‘사람들이 사는 모든 곳’을 나타냄으로써, 에큐메니칼 선교라는 것은 과거의 교회중심적 선교로부터 '사람들이 사는 모든 곳'인 세상중심적 선교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으로 하여금 교회의 선교 의제들을 말하게 하라"는 1968년 유럽교회협의회의 보고서가 바로 에큐메니칼 선교의 특징을 분명하게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유럽교회협의회가 1968년 제 4차 세계교회협의회 웁살라대회에 제출한 보고서, ‘타자를 위한 교회’(Kirche fuer die andere)는 그동안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도식을 ‘하나님-교회-세상’으로부터 ‘하나님-세상-교회’로 바꾸어 놓았다.
성서시대에 비신학적 일반 개념으로 사용되어오던 에큐메니칼 단어는 고대의 교회가 세계 전역에 흩어져있는 기독교회의 전체 모임을 위한 이름으로 사용함으로서 교회의 용어가 되었고, 1054년 동서교회가 분리되면서 사장되었다가 20세기 초에 ‘교회의 일치’와 ‘교회의 사회참여’가 주축이 된 세계교회의 운동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부활되었다. 교회일치와 사회참여라고 하는 이 두 주제는 결국 에큐메니칼 운동 이후시대의 선교 내용을 말해주는 핵심 개념인데, 이 개념은 교회의 본질과 존재목적을 드러내는 또 다른 하나의 신학개념, 즉 ‘하나님의 선교’ 개념으로부터 뒷받침 되고 있다.
1928년에 ‘칼 바르트의 신학이 선교에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저서를 발표한 칼 하르텐슈타인은 바르트로부터 ‘회개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교회의 ‘겸손한 선교’를 주장하였고 선교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 자신이라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기본 틀을 마련하였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지방주교(Praelat)였던 그는 1952년에 열린 빌링엔의 국제선교대회에서 ‘교회는 세계 속에 살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인간과 완전히 하나가 되셨기 때문에 교회의 길도 그와 같다’고 언급함으로서 선교의 주제가 세상의 사안으로 열려있어야 한다는 선교의 미래를 전망하였다. 1958년에 ‘하나님의 선교’라는 이름으로 ‘선교신학 입문서’를 저술한 게오르그 피체돔은 그의 저술 동기가 ‘세계에서 교회의 설 자리가 없어져가는 오늘의 긴박한 상황이 이 책의 출판을 더 이상 지연시킬 수 없어서’라고 밝히며 ‘성서 전체의 목적이 인류를 구원하려는 선교활동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오직 그럴 때에만 신학사상이나 여러 형태의 교회활동이 제 길을 찾게 되는 것’이라고 위기의 해법인 선교를 논하였다. 그에 따르면 ‘교회는 그 자신이 선교를 수행하려고 하는지 않는지를 결정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자신이 교회가 되려고 하는지 하지 않는지 만을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책 ‘하나님의 선교’는 칼 하르텐슈타인이 처음으로 제시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 세계 교회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이어 1968년 제 4차 세계교회협의회 웁살라대회 보고서에서 J. C. 호켄다이크가 ‘하나님의 선교’의 최종목적을 ‘인간화’라고 규정함으로써 ‘하나님의 선교’개념을 급진적 신학의 대명사로 인식시키게 된 것이다. 그는 '교회를 제도적으로 이식'해 나가는 것을 선교의 목적으로 보는 그동안의 전도 성격을 비판하고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에 참예'하려는 기독교인의 소망이 우리의 전도 성격을 결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교회중심에서 하나님나라 중심으로의 선교 목적의 변화는 곧 선교를 정적인 성격에서 동적인 성격으로 바꾸어 줄 것을 요구하는 선교신학적 도전이 되었다.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하르텐슈타인으로부터 주창되어, 피체돔에 의해서는 온건하게 그리고 호켄다이크에 의해서는 급진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이며 일관적인 ‘하나님의 선교’ 사상은 선교의 중심축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 이 세상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자신의 자유로운 활동이라는 것이며, 선교의 내용들도 교회를 위한 무엇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1기와,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등장한 이후인 2기와, 선교가 지구환경을 포함한 만물의 회복을 목적하는 3기로 구분 될 수 있다.
1) 에큐메니칼 1기의 선교방향(개인구원을 목적하는 교회의 연합)
에큐메니칼운동은 대체로 세계선교운동의 결과이다. 복음이 최대로 확장되던 '위대한 세기'(라투렛, 기독교 확장사)인 19세기에 수많은 교파들이 전례 없는 연합운동을 펼쳤다. 이 세계선교운동은 거슬러 올라가면 18세기에 시작된 부흥운동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 부흥운동의 시작에는 경건주의운동과 복음주의적 각성이 있다. 이 세계선교운동은 교회들로 하여금 신학전통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점보다는 더 많은 공통점을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초창기의 교회연합운동은 교단의 연합이기보다는 개인과 선교회의 연합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들의 연합활동 영역은 주로 선교지였으며, 무엇보다 선교지에서 경쟁적 선교를 피할 것을 목적으로 협정과 협력을 모색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중요한 에큐메니칼적 결단은 "일단 기정사실화된 교파적 충성의 맥락에서 벗어나자"는 것과 "교파분열이란 복음신앙에 대한 거부라고 믿게 되었다"(에큐메니칼운동사, 104)는 것이었다.
20세기의 전반부에서 우리는 고전적 의미의 선교 개념 가운데 있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만난다. 1910년에 에든버러에서 개최된 세계선교대회(The World Missionary Conference)는 현대에큐메니칼운동의 탄생지로서 평가받고 있다. 이 대회의 주제는 “이 세대 안에 세계 복음화”(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John R. Mott 1865-1955)였으며 이에 따라 대회의 관심사는 이 세대 안에 세계를 복음화하기 위해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How Mission)에 집중 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선교회의 선교’로부터 ‘교회의 선교’로의 전향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선교의 책임은 원칙적으로 선교지 교회가 스스로 감당해야한다고 강조되었다. 선교지교회의 자립이 화두로 등장함에 따라 이 대회에서는 선교지 교회와 피선교지 양쪽으로부터 ‘선교사는 피선교지의 교회와 지도력을 동료로서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비판 또한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당시의 선교는 식민지팽창과 더불어 일어났기 때문에 선교지에서 선교하는 국가들의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이 속출하였고, 이것은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교파들 간의 경쟁은 선교중복 등을 통한 자원을 낭비하게 만들어 교파간의 협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도의 선교사 윌리엄 케리는 이미 1792년에 초교파적 선교대회를 1810년에 개최 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당시의 에큐메니칼은 교회간의 ‘일치’보다는 ‘연합’을 그 목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에든버러대회의 문제점은 교회들 간의 연합에 부적절한 구조, 즉 교회보다는 선교회 중심의 대회였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과 영미국가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대회를 계기로 1921년 뉴욕에서 국제선교협의회(IMC)가 창설되어 피선교지교회의 주도적 선교가 논의되었고, 1928년 예루살렘 IMC에서는 선교지에서의 사회 선교의 중요성과 선교지에서 전통종교와의 대화(William Hocking vs. Hendrik Kraemer)의 필요성이 논의되었으며 선교에 관한 통제와 권한이 선교회로부터 교회로 이양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정리되었다. 에든버러에서 대두된 이 주제들은 계속해서 1938년 탐바람(인도 마드라스) IMC에서 더욱 심도 있게 논의되어 신생교회가 처한 사회적 고난에의 동참, 신생교회와의 선교, 복음과 비기독교의 연속성 문제 그리고 종말론에 대한 선교적 이해 등을 활발하게 토론하였다.
당시의 선교대상자는 '주정뱅이와 회의주의자'였다. 이에 맞는 선교는 전자에게는 도덕적으로, 후자에게는 호교론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당시의 교회이식유형으로 이해된 선교는 교회가 세워짐에 따라 완성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호켄다이크는 전도와 교회화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 참예하려는 기독교인의 소망이 참으로 우리의 전도의 성격을 결정해야만 할 때, 교회의 이식을 전도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전적 선교개념을 가지고, 효과적 선교를 위한 방편으로서, 교파간의 협동을 위해 추진된 에든버러대회였지만, 이러한 에큐메니칼 선교의 출발은 적어도 에큐메니칼 선교운동이 경건주의적, 복음주의적 선교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2) 에큐메니칼 2기의 선교방향(사회구원을 목적하는 교회의 일치)
1947년 휘트비(캐나다) IMC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인한 폐허와 분열 속에 있는 세계에 대한 선교적 사명을 인종, 국가, 문화 그리고 경제 차이를 화해시켜주는 친교와 봉사로서 이해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신생교회나 서구교회나 그리스도의 선교 명령 앞에서 구별 없는 동등한 파트너십을 갖는다는 당연성이 강조되었고, 선교단체들과 교파교회선교들(missions)의 시대는 갔고 한 주님 아래 순종하는 선교(mission)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다. 1968년 웁살라에서 열린 제 4차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선교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며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로서 부름 받은 교회는 선교의 주체가 아니라 도구에 불과하다는 세계중심의 선교론을 펼친 호켄다이크는 그의 ‘사도의 신학’, 즉 선교학을 논하는 가운데, ‘교회론은 기독론에서 다만 몇 구절로 언급 될 수 있는 정도’라는 말로 교회의 존재 이유를 선교에 집중시켰고, 선교가 교회의 한 기능이 아니라 교회가 선교의 한 기능이라는 '사고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논조를 분명히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선교의 목표는 메시야사상의 완성인 하나님나라의 실현이었으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 샬롬이 이루어지는 “인간화”였다. 그는 샬롬의 실제적 표현을 선포(Kerygma), 친교(Koinonia) 그리고 봉사(Diakonia)의 통합이라고 보았다.
이미 1952년에 빌링엔에서 열린 제 14차 국제선교대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nference) 이후에 선교의 주체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며 교회는 그 도구에 불과하다는 에큐메니칼인식이 세계교회에 확산되고 있었다. 빌링엔 대회의 주제강연 “대 위임과 오늘의 교회”(The great Commission and the Church today)를 지지하며 하르텐슈타인(Karl Hartenstein)은 그의 글 ‘선교의 재고’(Theologische Besinnung)에서 “선교란 구원 받은 전 피조물 위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세우려는 포괄적인 목표를 가지고 아들의 보내심 곧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참여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함으로써 개인의 영혼구원과 교회 중심적이었던 지금까지의 선교개념을 완전히 극복하고 있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신학위원으로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교회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인간과 완전히 하나’가 되셨기 때문에 ‘교회의 길도 그와 같다’는 논지를 분명히 하였다. 그는 동시대의 동지인 칼 바르트의 ’위기의 신학‘, 즉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에 기본적으로 전적 동의를 보내면서도 종말론의 이해에 있어서는 다른 강조점을 견지하는데, 바르트는 현재적-초월적 종말론에 치우쳐 있었고 하르텐슈타인은 미래적-구원사적 종말론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빌링엔대회 이후 세계의 거의 모든 개신교들은 이 ‘하나님의 선교’신학을 받아들였고 그리스정교회도 이 신학에 본래적인 동의를 표명하였으며 로마 가톨릭교회도 제2바티칸공의회(1962-1965)에서 이 신학을 대폭적으로 수용하였다. ‘하나님의 선교’신학은 실로 전 세계의 기독교회가 공감한 에큐메니칼을 위한 개신교 선교신학의 쾌거였던 것이다. 종교개혁의 신학적 완성이 바로 이 개념과 함께 완성된 것이 아닐까?
1958년에 ‘하나님의 선교’라는 제목의 저술을 발표한 피체돔(G. Vicedom)은 하르텐슈타인의 하나님의 선교를 그의 책을 통해 널리 알리는 공헌과 함께 Missio Dei의 가장 중요한 수행자로서의 교회의 역할과 과제를 강조함으로써 선교의 수직적인 면을 강조하는 신학자로 분류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선교’를 선교의 수평적의미에서 강조한 사람은 호켄다이크였다. 호켄다이크는 하르텐슈타인이 말한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서있는 현재 중간시대의 결정적인 예표로서 선교를 현재적 종말론적 시각에서 더욱 전개시켜 나갔다. 하르텐슈타인이 오는 나라이며 아직 숨어있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강조함으로써 ‘아직 아니’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호켄다이크는 이 땅위에 펼쳐지고 있는 세계역사를 역사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활동과 직접적인 상관관계에서 파악함으로써 ‘이미 벌써’의 경향을 나타내었다. 호켄다이크는 또한 휘체돔처럼 아들의 파송이나 교회의 파송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파송이 강조됨으로 세계 속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출애굽의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분리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관점을 통해 격변하는 세계와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의식이 강화되었고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에서 폭 넓은 선교의 영역과 과제를 획득할 수 있었으며, 그의 선교신학으로부터 자극을 받은 세계교회협의회는 사회참여를 활발히 전개하였다.
3) 에큐메니칼 3기의 선교방향(만유구원을 목적하는 교회의 친교)
에큐메니칼 3기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필자의 무모한 시도일 수 있다. 이미 하나님의 선교개념이 시작된 2기에 '온 피조물의 구원'을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태계에 대한 관심과 친교로서의 선교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의 선교'의 개념을 질적, 양적으로 확대하는 새로운 차원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창조세계의 보존”문제가 에큐메니칼 선교의 내용이 된 것은 1975년에 열린 나이로비 5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의 기조연설 “기도에로의 초대”에서 환경파괴로 인한 인간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 다음과 같이 기도된 이후부터였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우리는 서로 간에 소외되었고, 창조세계로부터 소외되었으며 당신이 생명을 부여하신 생명체들을 마치 죽은 것들인 양 착취하고 있음을 고백.”하였던 것이다. 이 총회 한해 전에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인간의 발전을 위한 과학과 기술에 관한 세계대회”라는 주제로 열린 ‘교회와 사회’대회는 “지탱될 만한 사회”라는 말을 처음 사용함과 동시에 “정의롭고, 참여적이며 , 지속 가능한 사회(A Just, Participatory, Sustainable Society=JPSS)”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는데 이 “지탱될 가능성”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의 생명, 미래 세대들의 생명, 모든 생물들, 그리고 자연을 위협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들(환경 악화: 물, 공기, 땅의 오염: 원시림의 제거와 사막화: 기름과 광물질 등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고갈; 생태계의 변화, 대기의 변화와 오존층의 파괴 등)에 직접 관련되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의 구조가 바로 이러한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의 출처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지속 가능성“의 개념은 제한성장과 제한개발과 맞물리게 되었다. 1983년 밴쿠버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제 6차 총회는 JPSS를 이어받아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존(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JPIC)”을 출범시켰다. 1990년에 열린 서울 JPIC는 생명의 신학의 강령 10개를 제시하였는데, 그중 특기할만한 것은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이라는 것과 인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 강령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의 내용 중에는 정의로운 경제 질서와 외채로부터의 해방, 지구환경의 보전 등이 들어있다.
1991년에 캔버라에서 열린 WCC 제 7차 총회는 “세계적인 사회정의의 위기”와 “세계적인 생태학적, 환경적 위기”가 맞물려있다고 보고 “지탱될 만하고, 지탱하는 환경은 보다 더 큰 사회정의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교회는 정의롭고, 지탱될 만한 사회적, 경제적 질서를 탐구하고, 이러한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상황에 걸맞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고 하였다. 1998년에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열린 WCC 제 8차 총회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희년정신에 입각한 ‘회개’를 촉구하였다. 이 회개는 개인의 회심을 넘어서 공동체의 회심이 되어야 할 것이 주장되었는데 구체적으로 구약의 희년정신에 맞추어 경제정의를 실현하자고 제안하였고 그 일환으로 아프리카의 부채탕감을 강도 높게 주장하였다. 구약의 희년은 “사회적, 경제적 구조악의 결과로 일어나는 부정의, 소외, 속박이 주기적으로 교정되는” 제도적 장치라는 것이 이 대회에서 부각되었던 것이다.
이 8차대회의 공식문서로서 채택된 “세계교회협의회의 공동 이해와 비전(A Common Understanding and Vision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은 WCC를 선교적, 봉사적, 도덕적 공동체라고 정의하면서 경제적 관심으로 진행되는 ‘지구화’를 교회의 지구화운동, 즉 에큐메니칼운동과 대립되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 대회는 지난 수 십 년의 세월동안 금융과 경제가 다국적 구조 와 세계적 구조를 갖추게 됨에 따라 만들어진 이 “특이한 지구적 차원의 일치”는 지구 사회를 점점 더 분열(fragmentation) 시키고 인류가족의 더 많은 부분들을 생산과 소비의 지구화로부터 소외 또는 제외시키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칼적 일치와는 정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중심주의가 새로운 통신체제와 더불어 만들어 내고 있는 이 ‘지구화’는 소비지향적 단일문화를 세계에 확산시키고 지구 사회에 무한진보의 꿈을 약속하며 일괄적 가치관을 강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서 냉전 이데올로기가 붕괴된 이후 시대에 그 어떤 지구적 대응세력으로부터 방해 받지 않고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폭로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힘과 부의 고르지 못한 분배와 가난과 소외의 현실은 정확히 지구촌의 특징인 공동체 의식과 상호책임의식을 결여하고 있다. 세계화를 통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 지고 있다. 이제 에큐메니칼 선교는 만물의 친교가 불가능해진 세상으로부터 만물의 친교가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의 축제에 모두를 초대하는 일이 되었다.
IV. 본말 3. 실천적 대안을 위한 신학적 근거들
1) 교회일치를 위한 실천, Missio
교단 간의 협력은 '삶과 봉사 위원회(Life and Work)'가 결성되던 1925년 스톡홀름에서 독일 프로이센교회의 지도자 케플러가 말한 '교리는 분열시키고 봉사는 일치시킨다'는 주장처럼 세상을 섬기는 봉사를 위해 연합하는 에큐메니칼을 통해 발전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초교파적인 연합사업을 전개해 왔으며, 최근에는 전적인 사회봉사를 위해 출범한 여러 개신교 연합봉사단체들이 발족되기에 이르렀다. 한국교회는 디아코니아를 사회사업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그 이론적 체계가 약한 약점을 안고 있다. 봉사가 선교 자체로서 인정되는 에큐메니칼적 디아코니아 인식이 없이는 봉사는 선교를 위한 방편 전도로 취급될 수밖에 없으며, 기껏해야, 성화과정에서 덕을 쌓는 일 정도의 인정을 받는 것에 만족하게 된다. 신복음주의 운동의 가장 에큐메니칼적 선언이라고 볼 수 있는 두 개의 문서, 로잔언약(1974)과 마닐라선언(1983)은 사회봉사를 교회의 선교라고 천명하기까지 놀라운 선교개념의 발전을 가져왔으나, 이 선교문서들이 전체 신복음주의 운동가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여기에서도 여전히 전도가 우선되고 봉사는 이차적인 선교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에큐메니칼 선교는 봉사를 전도와 마찬가지로 선교의 본질적 요소로서 인정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그 신학적 기반을 정초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교는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을 세상에 보내신 성육신 사건과, 성자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전 인류와 전 피조물의 회복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과, 성령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선교하는 교회를 세우시고 이끌어 가시는 모든 역사를 구체적인 하나님의 봉사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렇듯 봉사에 대한 분명한 신학이 없이는 교회의 사회봉사는 언제까지고 이차적 사업 내지는 전도를 위한 방편에 머물러서 전인적인 구원을 요청하시는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디아코니아 신학이 하루 빨리 신학교와 교회에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일치의 문제가 봉사의 차원에서만 언급될 문제는 아니다. 교회는 그동안 BEM문서와 이 문서를 기초로 작성된 Lima성찬예배 예식서를 통해 하나의 교회를 가시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비록 세계교회협의회의 회원은 아니지만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서는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초창기부터 세계교회협의회의 정회원으로서 회원교인 수의 과반수이상을 차지하는 정교회, 그리고 다양한 개신교 교단들의 참여로 50년간의 노력 끝에 맺은 결실인 리마 BEM문서와 리마 예식서를 개 교회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전체 교회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매우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어디까지 상호 인정이 가능하며, 어디부터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인지를 알게 해주는 이러한 훌륭한 신학적 업적들을 우리 한국교회는 얼마나 잘 이용하고 있는가? 또한 '세계여성기도일'이라고 하는 세계교회의 축제가 매년 실시되고 있다. 세계교회가 세계교회를 경험하고 기도하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이다. 이 행사는 일제강점기에도 '만국부인회기도일사건'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어서, 한국의 정치, 사회적 문제를 국제사회에 폭로하고 기도의 제목으로 세계에 공급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우리 교회들은 세계교회를 사귀며 친교할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가? 교단 총회는 얼마나 이 일을 열심히 홍보하고 부지런히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지, 혹은 어떤 다른 일에 그렇게 바쁜지 교회와 교단은 과제의 중요성을 에큐메니칼 선교정신으로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로마가톨릭교회의 단일성이 만드는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서 감탄만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세계의 교회는 더 큰 의미에서 하나라고 하는 에큐메니칼 통일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개 교회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능력을 통해서 사회성을 인정받을 것이 아니라, 경쟁사회의 낙오자들 곁에 함께 있음으로써 그 사회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큰 교회가 유세를 하고 작은 교회는 비굴하게 우러러보는 교회로서는 그 사회의 지도적 위치를 얻어내지 못한다. 교회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세상의 정서에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십자가의 능력은 약한 자의 능력이라는 기독교의 기본을 한국교회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내고 있다. 큰 교회의 목사가 호위대를 거느리고 행차하는 차량부대는 사라져야 한다. 그 재원을 분산해서 봉고차 한 대가 아쉬운 작은 교회에 기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가능한대로 목회자의 생활비를 평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초대교회를 부러워하면서 초대교회의 생활양식은 전혀 받아들일 용의가 없으니, 초대교회를 부르짖는 교회가 부러워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지난달에 있었던 김수환추기경의 죽음은 대중언론매체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가톨릭신부로서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살았던 그의 죽음을 온 국민이 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계의 인사들은 앞을 다투어 그의 빈소를 방문하고 마치 자신들이 고인과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종교계의 인사들도 주저하거나 마다하지 않고 그의 주검 앞에서 종교의 소속감을 초월하는 자신의 도량과 연대감을 열심히 표현하였다. 거기에는 이제까지 가톨릭을 이단이라고 주장해온 보수 종교인들도 함께 있었다. 혹자는 이 사회가 어려운 때를 만나 고인의 '남을 위한 사람' 이야기가 필요한 때문이라고 이 쇄도하는 조문행렬을 이해하였다. 그 말에서 한국사회에 정서적인 청량제가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고인에게서 알려진 그 '이웃과 함께하는 삶'에 동참하게 되는지 주목해 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어디 '이웃을 위해, 이웃과 함께, 이웃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그 뿐이겠는가? 왜 그 사람만 성인이 되는가? 왜 '더불어 섬기는 삶'을 살아온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가? 왜 화려하지 않은 섬김은 무시를 당하고 있는가? 추기경처럼, 아니 추기경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우리들 가운데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성도라고 불린다. 유리 진열장에 안치된 고인을 의지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이미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그 유업을 받을 자들이다. 성직자의 중재를 거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고 이웃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개신교인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거룩한 제사장'들이다. 이미 양심의 자유인들이며 타인의 자유를 위해 자발적인 종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개신교인들이다. 교회는 베드로라는 인물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그가 고백한 신앙 위에 세워졌다. 같은 신앙을 고백한 우리들 위에 세워진 것이다. 베드로는 다만 우리들 중의 하나이다. 우리들처럼 신앙고백 이후에 '사탄아 물러가라!'고 예수님의 책망을 받아야했던 인물이 베드로였다.
누군가를 성인으로 만드는 일보다 자신을 성도로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동안 개신교회는 교회의 공동체성에 대해 이해가 늘 부족했었다. 나가는 선교만 생각했지, 삶을 영위해가는 세상 속의 한 존재로서 '산 위의 동네'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등불을 등경 위에 올려놓아야 빛이 비추인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적영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우리 개신교에 희망이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만인제사장'이라는 확신이다. 이제 우리에게서 교회의 공동체성만 회복되면 된다.
2) 사회일치를 위한 실천, Diakonia
하르텐슈타인은 "선교란 구원 받은 전 피조물 위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세우려는 포괄적인 목표를 가지고 아들을 보내심, 곧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널리 유포한 독일인 피체돔은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를 하나님께 속한 활동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나님만이 선교에 있어서 친히 행동하는 주역(das handelnde Subjekt)이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선교의 목표를 인간들을 하나님나라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저들에게 그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은사들을 전해 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명확히 표현해 낸 것은 네덜란드의 신학자 호켄다이크(Hoekendijk)의 공헌이다. 그는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냉정하게 볼 때, 교회의 영향력을 다시금 획득하려는 시도이며, 이것을 성서적으로 위장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기존의 교회가 행해온 선교를 혹평하였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조차도 기성의 기독교세계의 존재를 전제하고 하나님의 나라 대신에 교회중심의 신학에 종사했다고 보았다. 그가 본 종교개혁자들의 문제는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한 새로운 공동체를 창설하는 일에 관심하지 않았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부분적으로 개혁해보자고 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실천하는 선교가 아니라 교회자체를 유지하는 일에 몰두한 그들의 한계를 지적한 말이다. 교황과 황제의 자리에 개신교 주교와 성주들을 옮겨 놓았을 뿐이니, 선교적 의미에서 개신교는 가톨릭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교회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활동의 한 부분으로서 사용하게 되는 범위 안에서만 참으로 교회가 된다. 이 세상은 이미 화해된 세계요(고후 5:19),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계요(요3:16), 하나님나라의 씨가 심겨진 밭이다(마 13:38). 에큐메니칼 선교 이해에 따라서, 선교의 범위는 분명히 세상과 세상의 각 영역으로 구체화되었다. 호켄다이크는 교회가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려 할 때에만 '복음에 동참할 수 있다고 보았고, 교회가 정말 사도적 사명을 가졌는지의 여부는 언제나 교회의 봉사, 즉 종의 모습에서 밝혀지게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를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 개 교회의 구조는 선교적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교회가 '교회울타리'를 넘어서 하나님의 관심인 이 세상에서 그 선교를 감당하려면, 그의 말대로, 장원제 농경사회에 유용하게 조직된 것이었던 과거의 교구제도는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현대의 교회가 몸담고 있는 산업사회에서는 일주일 중에 6일을 소일하고 있는 이들의 일터가 목양지가 되어야 하며, 현대인의 여가생활 공간이 목양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목양지는 동시에 선교지가 되며 교회의 찬송가에는 더 이상 씨를 뿌리는 비유의 가사만이 아니라, 공장, 노임, 사회정의 등을 노래하는 가사가 수록되어야 한다고 호켄다이크는 말한다. 근자에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섬김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 섬김에 대한 강조는 서비스를 강조하는 기업들이 최근에 앞서 내세웠던 부분이다. 한국의 많은 교회들은 사회 발전의 분위기를 감지하는 가운데 교회의 사회봉사적 기능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동안 미진했던 봉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이미지 쇄신의 효과만이 아니라 교회의 생존에도 도움을 준다. 국가가 사회봉사에 뒤늦은 열심을 보여줌으로써 교회는 국고의 보조를 받아 사회봉사를 대행하며 교회의 재정적 어려움을 완화시키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그러나 봉사는 교회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방법론이나 재정난 극복을 위한 방법론적 자구책이 아니다. 봉사가 방법적인 수준에 머무를 때 교회는 탈진하고 만다. 그리고 봉사는 교회의 항구적인 일로 정착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봉사는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고 원론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서 ‘기독교왕국’과 ‘하나님나라’를 대비하여 설명하였거니와 교회는 세상을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예수를 따르는 집단으로서 어느 교회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나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십자가는 믿는 자들에게 가볍고 메기 쉬운 것이 된다. 하나님나라의 일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사람들에게 역사를 종말론적으로 희망하는 기다림이 있다. 이 희망이 십자가를 가볍게 한다. 봉사의 실천은 하나님나라의 현존하는 경험이 된다. 그의 십자가는 섬기는 자의 존재양식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났고 나타난다. 그 분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러 온 것이다. 그 분을 따르는 우리의 존재양식도 섬기는 봉사 외에 다른 기득권 주장이 있을 수 없다. 교회는 정말 ‘섬겨야 한다.’ 섬김은 실로 교회의 총체적 문제에 대한 해법이다. 다만 그것이 방법론이 아니라 원론이라는 점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나라’에 관한 것이지, 교회에 관한 것이 아니다. 교회는 이 하나님나라를 위한 선교를 목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선교해야한다. 하나님나라를 선교하는 방법은 복음을 증언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도와 봉사로 나타난다. 전도는 증언으로서 봉사를 통해 증거되어야하고 봉사는 증거로서 전도를 통해 증언되어야 한다. 전도와 봉사는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선교개념을 완성한다. 초월해 계신 하나님이 인간의 삶에 참여하신 사건이 복음이라면 복음은 진정 말씀과 삶의 복합체임이 분명하다. 남아공의 선교학자 데이비드 보쉬는 타 문화권에서의 증언과 증거를 선교라고 이름하는 것과 동일문화권에서의 증언과 증거를 전도라고 이름하는 지리적 기준에 따른 개념사용에 문제점을 제기한 바 있다. 하나님의 선교가 증언하고 증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섬김이라고 요약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며, 가난한 자의 것이며, 심신의 장애를 가진 자의 것이며, 볼품없고 눈에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