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들이여, 선거 때마다 안보장사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는가. 70년째다. 이제 국민들도 속지 않는다. 정치 때문에 한국사회가 지옥(헬조선)으로 변한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미래방향을 제시하기에도 시간이 짧은데, 이런 안보 장사하는 정치가들을 볼 때마다 구토가 난다. 솔직히 말해서, 대통령이 되면 특권층이요 기득권층인데 안보를 소홀히 할 사람이 있겠는가? 극우 세력의 지나친 시각을 바로 안내해야 할 보수 정치가들이 진보를 빨갱이로 낙인찍는 극우세력의 부역노릇도 이제 중단하라. 빨갱이로 낙인찍힌 김대중이 대통령이었을 때, 그가 한국을 북한에 넘겼단 말인가. 아니면 그가 한국의 경제를 침몰시키면서 북한만을 위한 경제발전을 시도했단 말인가. 오히려 IMF 극복을 이끈 주역이 국민과 함께 김대중 아닌가. 민주화를 향한 파란만장한 그의 고난의 삶에 대한 세계정상들의 존경심이 IMF 극복에 큰 지렛대가 되었다.
안보의 가장 큰 위기는 국가 위기가 발생됐을 때 국민간의 적대감이다. 총구를 적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국 내 원한 관계에 있는 자에게 향한다면 그게 진정한 안보일까. 충청도 지방에서 북쪽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자가 북한쪽이 아니라 서울을 향해 발사한다면, 그것은 대재앙이다. 네 편, 내 편으로 나누는 것이 패거리요 이것이 국민간의 내분이다. 블랙리스트는 이 패거리의 전형이다.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내 편이 아닌 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야말로 안보를 위협하는 자다. 사실 차별사회를 막지 않고 오히려 부채질하고 있는 집단이 정치권 아니었나. 선거에서 이기면 자기편 사람에게 온갖 특혜를 준 것이 정치의 이력이다. 4대강 사업이니 꿈의 직장 낙하산 취직이니, 산업은행 대출 불가 중소기업에게 자기편 사람이라는 이유로 1100억 원을 대출해 주고 200억 원만 회수되어 900억 원은 국민세금으로 메꾸는 그런 황당한 차별사건들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같은 한국인인데 차별에 의해 1등 국민이 있고 2등 국민이 있다면, 이는 사회 분열의 뇌관이다. 이런 내분을 자극한 이들이 정치권이다.
국민간의 적대감은 위기 시 국가의 위협요소라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두 번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페르시아 제국은 몰락했고, 세 번의 전투에서 패한 로마 제국이 몰락하지 않은 이유는 제국 내 적대감 제거 여부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끈 삼만 육천 명의 군인이 백만 명이 넘는 페르시아 대군을 어떻게 이겼을까?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는 알렉산더에게 기원전 333년 11월 이수스(Issus) 전투와 기원전 331년 10월 오늘날 이라크 모술 근처의 가우가멜라(Gaugamela) 전투에서 패한 후, 페르시아 속주 총독들은 다리우스를 따르지 않았고 페르시아는 몰락했다. 그러나 로마는 기원전 218년 트레비아(Trebia) 전투, 트라시메노(Tresimeno) 전투, 특히 칸나에(Canne) 전투에서 로마의 최정예 군단 8만 명이 카르타고 한니발의 5만에게 거의 전멸 당했다. 로마의 위기였지만, 속주들은 목숨을 걸고 로마를 위해 싸웠다. 그 이유는 속주민을 2등 국민으로 차별하는 페르시아와 로마는 달랐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은 안보의 토대인 사회통합의 중요성을 읽어야 한다. 동독이 서독에 의해 흡수 통일된 나라가 독일이다. 인구수도 보나 경제력으로 보나 독일 수상은 서독 정치가의 몫 아닌가. 그러나 2005년부터 2017년까지 독일총리는 동독 여성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이다. 한국인의 시각에서 서독인은 동독인을 북한처럼 2등 국민으로 여길 수 있지만 독일은 사회통합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또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제44대 미국대통령은 흑인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Jr.)다. 과거 노예였던 흑인이 오늘날 대통령이 된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의 최고 가치는 안보가 아니라 사회통합임을 읽을 수 있다. 1776년 미국 탄생이후 흑인이야말로 2등 국민으로 온갖 냉대를 받았던 인종 아닌가. 그러나 미국은 사회통합 속에 안보가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국민은 19대 대선에서 안보의 위협인 적대감, 지옥사회를 혁신하라고 촉구하는데, 정치인은 여전히 안보장사를 하고 있다. 이번 대선은 안보의 토대가 되는 사회통합을 이끌 지도자에게 투표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