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은 하느님의 언어가 아닙니다. 혐오로 담합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7일 오전 열린 예장합동의 임보라 목사 이단성 심사 규탄 기자회견에서 나온 메시지다. 예장합동 교단은 지난 달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가 퀴어성서 주석 번역본 발간에 참여한 점을 문제 삼아 이단성 심사에 나서겠다고 했다. 이어 기독교대한감리회, 예장통합 등 8개 교단이 공조에 나섰다.
이에 향린공동체(강남향린교회, 들꽃향린교회, 섬돌향린교회, 향린교회)는 이날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예장합동 교단 및 8개 교단의 행태를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들꽃향린교회 김경호 목사는 "교회의 가르침, 예수의 가르침을 떠나 사람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맹목으로 치닫는 집단, 잘못된 신앙을 전파하는 집단이 이단"이라면서 "차별에 맞서고 인권을 옹호하며 울고 있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손을 맞잡은 임 목사는 이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길을 보여준 목회자"라고 했다.
감리교 퀴어함께 소속 상야 목사는 예장합동의 이단성 심사가 중세 가톨릭 교회가 지동설을 주장한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한 일에 빗댔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 지동설을 말하거나 지지했다는 이유로 여러 사람들이 교회로부터 이단 취급받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교회는 천동설을 가르쳤으며 천동설의 근거는 성경이었다. (중략) 이와 똑같은 일이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다. 반지성주의와 혐오에 매몰된 이들이 동성애는 죄악이며 이에 동조하는 이들을 이단이라고 하고 있다. 성경을 근거로 말이다. 도대체 500년 전 지동설을 주장하던 이들을 이단이라고 몰아붙인 이들의 행태와 무엇이 다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어찌 사람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으며, 개인의 성적지향에 찬반이 있을 수 있는가?"
상야 목사는 그러면서 예장합동과 8개 교단의 이단심사 공조는 "검토와 논쟁을 통해 무엇이 ‘정통'인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토론과 논쟁의여지를 정치적 판단에 근거해 봉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한국교회
로뎀그늘나무교회 박진영 목사는 임 목사의 사역에 대해 "한국 기독교안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성소수자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그분들의 힘든 삶에 공감하며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보수 기독교계가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성소수자를 공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 목사의 말이다.
"성소수자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만나보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그들이 부당한 편견 때문에 얼마나 힘들고 불편한 삶을 사는지 알지 못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지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정죄하는 기독교인들은 과연 예수의 정신을 살아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임보라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예장합동 총회는 예수를 정죄했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닮아있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하느님 앞에서 겸허하게 쓰지 않고, 자기 입맛대로 휘두르고, 교회 안에서 신음하고 고통받고 있는 많은 약자들과 소수자들을 돕는 이를 정죄하는 모습이 오히려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섬돌향린교회는 이번 회견에서 예장합동의 이단성 심사에 강력히 대응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 교회 서병서 목회운영위원장은 "아전인수식 해석을 중단하고 작은 이웃사랑부터 실천하기를 당부한다"며 "이번 이단시비를 그냥 바라보고 있지 않겠다. 이번 기자회견은 시작일 뿐"이라고 선언했다.
서 위원장은 향후 대응과 관련해선 "법적 대응, 1인 시위 등의 방법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기장 교단 차원의 대응에 대해 김경호 목사는 "일단 목사는 노회에 속해 있어 노회에서 다루기로 했다. 그리고 처음엔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신학적 입장과 관련된 문제여서 총회에서 따로 기구를 만들어 대응해 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기자회견을 주최한 향린공동체는 성명을 내고 "교회내의 수많은 문제들을 썩도록 내버려둔 채 시선을 외부로 돌리지 말라. 사랑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드러내야 할 교회가 앞장서서 차별을 옹호하고 편협한 신학적 논리로 하느님의 사역을 실천하는 동료목회자를 심판해 이단으로 낙인찍으려는 행태를 즉각 멈추라"며 예장합동을 규탄했다.